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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밥'이라고도 불리는 쇠뜨기의 계절이다.
▲ 쇠뜨기 '뱀밥'이라고도 불리는 쇠뜨기의 계절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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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엔 우중충한 기운이 남아있고 서울 근교임에도 검단산 높은 곳에는 꽃눈이 핀 나무들이 아침햇살에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저 풍경은 올해로 마지막일 터이다.
다시 겨울이 그리워질 즈음에 저런 풍광을 보여줄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쇠뜨기, 지난 주 출근길 공원 절개지에서 몇 개체를 만났다.
이렇게 또 봄이 왔구나 싶었지만 출근길 바쁜 걸음이라 눈길만 주고는 그냥 잊혀졌다.

옹기종기 모여 피어난 쇠뜨기,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쇠뜨기 최고의 군락을 만났다.
▲ 쇠뜨기 옹기종기 모여 피어난 쇠뜨기,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쇠뜨기 최고의 군락을 만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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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에 잠시 나갔다 돌아오는 길, 무덤가에 옹기종기 뭔가가 피어있다.
가까이 가보니 쇠뜨기군락지다. 그동안 쇠뜨기를 봐왔지만 이렇게 많은 쇠뜨기가 한꺼번에 피어난 모습은 처음 보는 듯하다.

아마도 처음에 무던히도 쇠뜨기를 없애보려고 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한 해 두해 보내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더 넓혀갔을 터이다.

그 뿌리가 깊어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뽑으려고 하면 툭툭 끊어지는 가냘픈 마디줄기 때문에 한 번 자라기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없앨 수 없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비온 쑥쑥 올라온 쇠뜨기, 그 신비한 생명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 쇠뜨기 비온 쑥쑥 올라온 쇠뜨기, 그 신비한 생명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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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뱀머리를 닮았다.
소가 잘 뜯어 먹는다고 하여 쇠뜨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모양새로 인해 뱀밥이라는 이름도 얻었단다.

텅빈 줄기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쓰러지고 부러진다.
그래도 그들은 상관이 없는 듯하다. 꽃이 피다 말라버려도 포자를 날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꺾여진 채로 마라버려도 제 할일을 다 할 수 있는가 보다.

작은 풀들과 어울려 피어난 쇠뜨기
▲ 쇠뜨기 작은 풀들과 어울려 피어난 쇠뜨기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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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애착, 끈질김.
쇠뜨기를 보면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고 내 삶에 대한 애착도 더 많이 생기고, 살되 저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반성을 하게 된다.

게다가 줄기는 텅 비어 있으니, '텅 빈 충만'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줄기가 비었으니 얼마나 가벼운지, 무거운 짐 훌훌 털어버린 가벼운 삶을 염원하게 된다.

들꽃이나 들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을 통해서 얻는 다양한 생각들이 세파에 시달린 마음을 위로해 준다. 삶이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너무 슬퍼할 필요도 힘들어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냥, 하루하루 주어지는 삶에 충실하고, 좋은 날은 좋은 날대로, 궂은 날은 궂은 날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듣는다.

무덤가에 피어난 쇠뜨기와 꽃다지, 그들이 있어 무덤 속의 망자는 쓸쓸하지 않을 듯하다.
▲ 쇠뜨기 무덤가에 피어난 쇠뜨기와 꽃다지, 그들이 있어 무덤 속의 망자는 쓸쓸하지 않을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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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함께 꽃다지가 경쟁하듯 피어있다.
무덤가라는 것이 쓸쓸하기 마련인데 그들이 있어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저 쇠뜨기의 뿌리가 망자의 몸을 간질이고 있을 터이니 무덤 속 망자는 쓸쓸하지 않겠다.

무덤 속 망자는 그들을 통해서 자신이 살던 세상의 기운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쇠뜨기의 깊은 뿌리가 감싼 모든 것들은 따스한 봄날의 햇살, 그 기운을 가느다란 줄기를 통해 온전히 느낄 것이다.

키겨루기를 하는 듯 옹기종기 피어난 쇠뜨기
▲ 쇠뜨기 키겨루기를 하는 듯 옹기종기 피어난 쇠뜨기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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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와 쇠뜨기, 누가누가 잘 퍼지나 시합을 하는듯하다.
▲ 쇠뜨기 꽃다지와 쇠뜨기, 누가누가 잘 퍼지나 시합을 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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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걸어도 발에 짓밟혀 꺾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꺾여도 다시 일어서고, 그래도 무성하게 퍼져가리라는 것은 믿음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필이면 꺾여야 하는 것이 나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쇠뜨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래, 하필이면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 일 조차도 덤덤하게 받아들이자.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으며, 그 원하지 않는 일이 내 삶을 좌지우지 하지 못하게 하려면 덤덤하게 맞이할 줄 알아야 한다.

쇠뜨기 밭이 된 무덤가, 잡초가 우거져 슬픈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아름다웠다.
봄날의 따스함이 몸 안으로도 들어온 탓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태그:#쇠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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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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