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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것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지렛대원리를 이용한 도르래를 만드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것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지렛대원리를 이용한 도르래를 만드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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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기억,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괴롭히거나 놀렸던 여자 동창이 한명쯤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무줄놀이를 하면 고무줄을 끊고, 공기놀이를 하면 공깃돌을 빼앗고, 다른 남학생이랑 이야기라도 하면 알나리깔나리 하며 유독 놀렸던 여자 동창생이 한 명쯤은 있었을 거다.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는 전형적인 악동, 심술이고 괴롭힘이다. 학교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눈높이로 보면 혼나고 꾸중 들어야 할 못된 짓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또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사랑이 흥청거리는 시대다. 새로 나오는 노랫말 치고 '사랑'이란 말이 빠진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메마른 시대라고 한다. 장마철에 마실 물을 걱정하듯이 사랑이 흥청거리는 세상에서 사랑에 갈증을 느끼고 있으니 뭔가가 잘 못돼도 한참 잘못된 세상이다. 왜 그럴까?

여러 종의 나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 숲을 생각해 보자. 취나물, 곤드레, 도라지, 잔대, 다래, 산마늘, 두릅, 고사리, 더덕, 돌나물, 미나리 심지어 산삼까지…. 먹을 수 있는 나물이나 약초가 이렇게 수두룩하게 자라고 있다. 하지만 미나리나 돌나물 정도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겐 산삼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숲일지라도 미나리와 돌나물이 많지 않으면 그 숲에서는 산나물을 찾기 힘든 고단함 뿐이다.  

알나리깔나리, '루두스'라고 하는 사랑이었다

대개의 요즘사람들이 떠올리는 사랑은 '에로스'나 ''아가페'정도이다. 도덕이나 윤리시간에 배운 게 그 정도이니 알고 있는 것도 그 정도이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에는 에로스나 아가페 말고도 다양한 사랑, 필리아, 루두스, 프라그마, 필라우티아, 메따 등으로 분류되는 사랑도 있었다. 

에로스나 아가페만이 아니라 필리아, 루두스, 프라그마, 필라우티아, 메따 등도 자각하고 있는 그리스시대 사람과 에로스나 아가페 정도만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 중 어느 누구의 삶이 사랑이 풍요로운 인생이 될까? 물어보나 마나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나리와 돌나물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산삼과 같은 진귀한 약초(나물)들이 제아무리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텅 빈 나물바구니를 메고 다녀야 하는 가난한 심마니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랑도 그렇다. 에로스나 아가페 정도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여타의 사랑이 제아무리 주변에 널려있어도 여타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니 사랑에 목말라하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심마니로 돌아가 보자. 지혜로운 심마니라면 늙은 심마니를 뒷방노인으로만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늙은 심마니가 산속을 헤매며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잘 배우고 익혀서 더 좋고 많은 약초나 산나물을 채취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심마니로 자랄 것이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것은 산나물이나 사랑만이 아니다. 가족, 공감, 일, 시간, 돈, 감각, 여행, 자연, 신념, 창조성, 죽음 방식 등이 인생살이에 있어 필수아미노산 같은 주제들이다.         

이런 주제들이 인생살이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주제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을 보다 꼼꼼하고 넉넉하고 괜찮게 챙길 수 있는 경이로운 노-하우를 가르쳐줄 사람은 흔하지 않다.

여기에 그 보물창고 같은 노-하우가 있다. 자칫 뒷방늙은이처럼 취급되고 있었을지도 모를 역사, 많은 경험과 검증, 다양한 지식과 지혜를 갖고 있지만 지나간 역사가 되고,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한걸음 뒤로 밀려나 있는 늙은 심마니처럼 취급되고 있을지도 모를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기하고 경이로운 역사를 담고 있는 <원더박스>

<원더박스> 표지
 <원더박스> 표지
ⓒ 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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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원더박스(Wonderbox)>는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분더캄머(Wunderkammer)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분더캄머는,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진기하고 매혹적인 수집품들로 채운 장식이나 전시실을 가리킨다고 한다.

르네상스시대 분더캄머가 진기하고 매혹적인 장식품들로 가득채운 전시실이었다면 이 책,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강혜정 옮김, 원더박스 출판의 <원더박스>은 어떤 경이로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기에 제목을 <원더박스>로 했을까?

<원더박스>에는 그 어떤 것보다 진기하고 경이로운 역사가 담겨있다.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남편의 역사,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눈 시계발명이 낳은 부작용, 시가지 한가운데 있었던 무덤의 역사 등 정말 놀랄 만큼 경이로운 역사가 12가지(사랑, 가족, 공감, 일, 시간, 돈, 감각, 여행, 자연, 신념, 창조성, 죽음 방식) 주제로 나뉘어 똬리를 틀고 있다.

역사에는 세상사는 방법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우리의 위치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고, 선택 기준이 바뀌고,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이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때가 바로 산업혁명 시기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 시간, 가정, 사랑에 대한 생각이 격변이라 해도 좋을 만큼 크나큰 변화를 겼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그런 변화의 순간을 겪고 있다. -<원더박스> 351쪽-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던 지렛대와 도르래

어려서 살던 집 광(창고) 한쪽에 아주 가끔 사용하는 물건이 둘 있었다. 하나는 큼지막한 어른 손으로 움켜잡아도 남을 만큼 굵고 어른 키 보다 조금 긴 육각형 쇠막대였다. 어른들은 그걸 데꼬(지렛대)라고 불렀다. 다른 하나는 도르래에 쇠사슬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체인블록(chain block)이라고 하는 물건이었다.

평소에는 방치되듯이 광에 처박아 두는 물건들이었지만 아주 가끔, 사람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커다란 돌을 들어내거나 옮길 때면 더 없이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그 지렛대와 체인블록이 없었다면 그렇게 크고 엄청난 무게의 돌을 움직이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난공불락이었을 게 분명하다.

학교를 다니며 지렛대법칙이라는 것을 배우고, 지렛대법칙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 도르래라는 것을 배우고 나서야 그 무겁고 엄청났던 바윗돌을 움직이던 쇠막대와 체인블록이 갖고 있던 경이로운 비밀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무겁고 엄청났던 바윗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결국 지렛대법칙과 지렛대법칙을 이용한 도르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렛대와 도르래를 복합적으로 사용해 물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수상 자전거.
 지렛대와 도르래를 복합적으로 사용해 물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수상 자전거.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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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가족·공감·일·시간·돈·감각·여행·자연·신념·창조성·죽음 방식…. 이런 것들도 때로는 천근의 무게, 태산 같은 크기로 인생을 고통스럽게 하고 삶을 힘들게 한다. 근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런 것들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하고, 고통 받고, 힘들어 하고 심지어 끔찍한 선택까지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번 이긴다고 했다. 아는 게 힘이라고 해도 좋다. 사랑이나 가족이 적이 될 리는 없지만 사랑과 가족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하면 갈등의 요소가 되고 고통의 발원지가 된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이길 확률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열 명의 재판관 중에는 교황의 동생과 조카도 포함되어 있었다. 2회에 걸쳐 고문으로 위협을 당한 다음 갈릴레오는 굴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태양이 세상의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지구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움직인다는 잘못된 주장"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원더박스> 389쪽-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당연한 사실,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역사의 뒤안길에서는 고문으로 위협당할 만큼 상식과 시대를 거스르는 주장이었다. 인생사에서 맞닥뜨려 들어내거나 치워야 하는 건 커다란 바윗덩어리만이 아니다. 천근의 무게, 태산 같은 바위 크기보다 더 무겁고 크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게 수두룩하다.

지렛대 같은 <원더박스>, 도르래로 활용하는 건 독자 몫

살다보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인생사 바윗덩어리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지렛대 같고 도르래 같은 지혜가 담긴 책이 <원더박스>가 아닐까 생각된다. <원더박스>에서 소개하고 있는 12 주제의 역사는 분명 12개의 지렛대이다. 그 지렛대를 이용해 만능 도르래로 꾸미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초고층아파트를 건설하는데 필수적인 타워크레인도 결국 오래된 원리, 지렛대와 도르래가 그 배경이다.
 초고층아파트를 건설하는데 필수적인 타워크레인도 결국 오래된 원리, 지렛대와 도르래가 그 배경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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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몫이라고 하니 어떤 부담감을 갖을지도 모르지만, 부담이라고 해봐야 읽고 새김으로 챙길 수 있는 12가지 인생의 기술(Art of Living)을 챙기는 수고로움이다. 낮선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좀 더 괜찮은 삶의 12가지 방식을 내 것으로 챙기는 지혜로운 인생의 기술(Art of Living)이다.  

12가지 방식의 지렛대를 이용해 만능으로 작동되는 도르래를 만들어 내는 독자라면 현실적으로 커다란 바윗돌처럼 굴러들어 올수 있는 이런 갈등 저런 문제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극복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주인공, 보다 괜찮은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르네상스 시대 분더캄머는 집안의 유물이었지만 역사는 인류가 공유하는 유산으로써 훨씬 많은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다. 말하자면 역사는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마음대로 선택에서 숙고하여 교훈을 뽑아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유산이다. -<원더박스> 09쪽, 프롤로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원더박스>┃지은이 로먼 크르즈나릭┃옮긴이 강혜정┃펴낸곳 원더박스┃2013.4.1┃값 2만원



원더박스 - 낯선 역사에서 발견한 좀 더 괜찮은 삶의 12가지 방식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강혜정 옮김, 원더박스(2013)


태그:#원더박스, #강혜정, #분더캄머, #에로스, #아가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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