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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九州)의 나가사키(長崎)·데지마(出島) 무역창고의 여러 전시물을 보다가 '화려하게 꽃핀 사탕문화'라는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자료의 사진 속에는 포르투갈에서 전래된 400년 전통의 나가사키 카스텔라가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일본 특유의 '일본화' 과정을 거쳐 맛이 개량되어 온 카스텔라. 나는 나가사키에서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아이콘, 카스텔라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포르투갈로부터 전래된 설탕은 카스텔라의 주원료가 되었다.
▲ 사탕문화 포르투갈로부터 전래된 설탕은 카스텔라의 주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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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카스텔라를 취급하지 않는 빵집이 많아졌지만 나 어릴 적에는 빵집마다 카스텔라가 인기 품목이었다. 나는 이곳 나가사키에서 동양에 전래된 카스텔라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나는 구라바엔(グラバ-園)의 정문에서 노면전차 역까지 이어지는 상점가를 찾았다. 수많은 여중생과 여행자들이 수없이 이어지는 카스텔라 가게에서 기념품으로 카스텔라를 사고 있었다.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념품으로 카스텔라를 산다.
▲ 카스텔라 기념품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념품으로 카스텔라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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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라 가게들 사이에 아예 '카스텔라 신사(カステラ 神社)'가 있다. 자신이 아끼는 모든 만물을 신으로 만들고 신사를 만들어 숭상하는 신사의 나라답게 카스텔라도 신사가 만들어져 있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작은 신사 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노란 카스텔라 모형이 나무 모형의 지붕을 익살스럽게 들고 있다. 만화의 나라답게 눈과 입이 모두 만화로 그려진 카스텔라 신은 귀엽게 웃고 있고, 그 앞에는 길흉을 점치기 위해 매달아 놓은 종이인 오미쿠지(おみくじ)가 잔뜩 걸려 있다. 신사 옆은 카스텔라 기념품 가게이고 다양한 카스텔라 캐릭터 제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신사의 나라 일본에는 카스텔라 신사마저 있다.
▲ 카스텔라 신사 신사의 나라 일본에는 카스텔라 신사마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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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는 각자 독특한 전통을 자랑하는 카스텔라 전문 가게 여러 곳이 성업 중이다. 나가사키의 기념품 가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바로 카스텔라 가게이다. 구라바엔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카스텔라 가게 중에는 중국식당과 함께 영업 중인 이즈미야(和泉屋)도 있고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나가사끼도(長崎堂)도 있고 주변에 많은 카스텔라 가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왕이면 더 유명한 카스텔라 가게까지 찾아가기로 했다. 후쿠사야(福砂屋), 쇼오켄(松翁軒), 분메이도(文明堂)가 이곳 나가사키의 3대 카스텔라 가게이기 때문이다.

나가사키 3대 카스텔라 가게 중의 하나로서 카스텔라 맛이 깊은 전통의 가게이다.
▲ 쇼오켄 나가사키 3대 카스텔라 가게 중의 하나로서 카스텔라 맛이 깊은 전통의 가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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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오켄(松翁軒) 카스텔라 가게는 1681년에 창업했다. 쇼오켄 카스텔라는 맛이 깊고 카스텔라 안에 점점이 박힌 설탕이 달기로 유명하다. 지금은 스페인에 있는 카스티야(Castilla)에서도 이곳에 와서 카스텔라 만드는 비법을 배워갈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나는 아내와 구라바엔(グラバー園)을 떠나면서 오우라텐슈도시타(大浦天主堂下) 노면전차 역 앞에서 쇼오켄 가게를 발견했지만 이 가게에서 카스텔라를 사지는 않았다. 나는 쇼오켄보다 역사가 더 오랜 후쿠사야를 찾아가기로 했다.

나는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 신치 주카가이(新地 中華街)에 갔다가 한 무리의 중학생들이 모두 카스텔라가 담긴 기념품 종이백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종이백에는 카스텔라 전통의 명가인 후쿠사야의 박쥐 모양 브랜드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검정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카스텔라를 어디에서 샀느냐고 물어보기로 했다. 여러 명이 모여 있는 중학생들은 불량해 보이지 않고 모두 착해 보였다. 

"이 후쿠사야 카스텔라, 어디서?"
"나가사키 에끼(長崎駅, 나가사키역). 나가사키 에끼."

나의 짧은 일본어 물음에 이 학생은 두 번이나 확인하듯이 친절하게 카스텔라 산 곳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곳은 아침에 열차를 타고 도착했던 나가사키역이었다. 나가사키의 카스텔라 3대 브랜드 중 나의 눈길을 끌었던 박쥐 문양을 찾아 나는 나가사키 역으로 향했다.

최근에 가장 인기 있는 카스텔라 가게 중의 한 곳이다.
▲ 분메이도 최근에 가장 인기 있는 카스텔라 가게 중의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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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역 앞에 도착하니 역 바로 맞은편에 있는 분메이도(文明堂) 본점이 자리잡고 있는게 보인다. 분메이도는 획기적인 광고전략으로 카스텔라가 나가사키의 명물임을 일본 전국에 널리 알린 곳이다. 이 분메이도 카스텔라가 가장 맛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카스텔라를 물어보면 대부분 후쿠사야를 말한다. 후쿠사야는 1624년에 창업되어 가장 오래된 카스텔라 전문점이기 때문이다. 오랜 전통의 가게를 인정해주는 일본에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카스텔라 가게가 인기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후쿠사야에는 포르투갈인이 직접 전수한 카스텔라 비법이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1570년대에 포르투갈 선교사를 통해 나가사키에 전해진 비법이다. 당시 비법이 전해진 곳이 포르투갈 영토였던 카스티야 왕국이었기 때문에 이 빵의 이름이 포르투갈어 말인 '카스텔라'라고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카스텔라가 일본에 제일 먼저 상륙한 곳이 나가사키이며, 그 카스텔라 비법을 가장 먼저 전수받은 곳이 후쿠사야이다.

행운을 상징하는 박쥐는 가장 오랜 전통의 카스텔라 가게를 상징한다.
▲ 후쿠사야 박쥐 행운을 상징하는 박쥐는 가장 오랜 전통의 카스텔라 가게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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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사야 매장은 나가사키 역의 플라자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후쿠사야 가게는 박쥐 모양의 브랜드 로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색의 가게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검은 박쥐는 양 날개를 한껏 펼쳐서 거의 원 모양의 로고를 만들고 있었다. 후쿠사야의 상징인 박쥐는 박쥐가 행운을 상징하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후쿠사야는 놀랍게도 17세기 초에 설립된 가게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후쿠사야가 15대에 걸쳐서 나가사키의 카스텔라만을 만드는 전통을 이어온 가게라는 점이다. 가게가 대를 이어 15대 동안 전수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울 뿐 아니라 다른 데에는 한눈 팔지 않고 카스텔라만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이 정녕 놀랍다.

나가사키 카스텔라의 원조이며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카스텔라 가게이다.
▲ 후쿠사야 나가사키 카스텔라의 원조이며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카스텔라 가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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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카스텔라는 다양한 식재료 첨가물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게마다 맛과 종류가 다양하다. 후쿠사야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공정마다 장인 한 사람이 전담하는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달걀 깨기, 달걀에 거품 내기, 거품을 낸 달걀에 설탕과 물엿 넣기, 카스텔라 구워내기 등 카스텔라를 만든 각 공정을 각각 누가 담당할지 정해져 있다. 각 기법마다 전문가 1명씩이 배치되어 숙련된 기술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박쥐 문양이 자랑스럽게 그려진 후쿠사야 앞에 섰다. 가게 위에 걸린 흰 차양 에도 검은 색 박쥐 문양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유리 진열대 뒤편의 직원들 데스크 위에는 후쿠사야 특유의 노란 포장지로 포장된 카스텔라가 정갈하게 쌓여 있다. 포장된 카스텔라 제품도 어떤 재료가 첨가되었느냐에 따라서 포장지 색상과 모양이 달랐다. 

전통의 노란색 종이박스 안에 든 카스텔라는 전형적인 형태와 맛을 자랑하는 카스텔라이고, 짙은 토마토 색의 종이 박스 안에 든 카스텔라는 '홀랜더 케이크(Hollander Cake, オラソダケ-キ)'라고 하는 초콜릿 맛 나는 카스텔라이다. 아내에게 어떤 카스텔라를 살지 물었더니 역시 아내의 대답은 2개 다 사자는 것이었다.

다양한 카스텔라의 맛을 볼 수 있도록 결합세트도 판매한다.
▲ 카스텔라 세트 다양한 카스텔라의 맛을 볼 수 있도록 결합세트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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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여자 점원에게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아내가 다가갔다. 아내는 외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을 때에도 누구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물건을 사면서 말 걸기에 주저함이 없다. 아내는 몸짓으로 두 종류의 카스텔라를 모두 사겠다고 했으나 점원은 아내의 의향을 잘 알아내지 못했다. 아내는 두 종류의 카스텔라를 하나씩 사겠다고 각각 카스텔라를 가리켰지만 그래도 점원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점포 내의 카스텔라를 둘러보던 아내가 유리 진열장에서 카스텔라와 홀란더 케이크가 1개씩 함께 포장된 '결합세트'를 발견했다. 여점원은 드디어 알아들었다는 듯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카스텔라를 포장해주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카스텔라를 정성스럽게 덮고 있는 노란 포장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포장지에는 가게의 역사를 자랑하는 포르투갈 범선, 박쥐 로고, '후쿠사야', '카스텔라' 문양이 아기자기하게 박혀 있다. 포장지를 뜯어보았다. 포장지 안에는 후쿠사야 가게 안에서 보았던 노란색과 토마토 색의 긴 종이상자가 2개의 카스텔라를 감싸 안고 있다. 포장지의 색상과 디자인도 오랜 역사만큼이나 세련되어 있다.

입안에서 씹히는 우박같은 설탕의 맛이 일품이다.
▲ 후쿠사야 카스텔라 입안에서 씹히는 우박같은 설탕의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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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상자를 열어보니 고급스럽게 잘 접은 편지 같은 종이가 나온다. 종이에는 후쿠사야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는 글이 가득 적혀 있다. 그리고 카스텔라 위에도 카스텔라 그림과 함께 묘사된 카스텔라 설명서가 놓여 있다. 하나의 카스텔라에 얹힌 정성과 함께 가게의 고집,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전통이 느껴진다.

카스텔라는 친절하게도 먹기 좋게 10등분으로 잘려있다. 세심한 일본인들의 특성이 오랜 역사의 카스텔라 안에도 녹아 있다. 나는 카스텔라의 역사를 읽으면서 카스텔라를 맛보았다. 사람이 직접 반죽하는 카스텔라여서 그런지 맛이 쫀득하면서도 부드럽다. 맛은 많이 먹어본 카스텔라 맛인데 입속에서 신선함이 느껴지고 달달하면서 달콤하다.

우리나라 카스텔라와 다른 점은 카스텔라 바닥 부분에 우박같이 생긴 굵은 설탕이 곳곳에 가득 박혀있다는 점이다. 마치 빵의 바닥에 새하얀 우박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이 굵은 설탕들 때문에 카스텔라를 먹을 때마다 입 속에서는 바삭거리는 소리가 난다. 씹히는 설탕의 맛은 독특하면서도 달콤한 맛인데 카스텔라 빵의 맛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함께 먹으면 맛있다는 우유와 함께 먹으니 달콤함이 더 하다.

초콜릿의 맛이 첨가된 달달한 카스텔라이다.
▲ 홀랜더 케이크 초콜릿의 맛이 첨가된 달달한 카스텔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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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먹거리 전통은 유별나지만 빵 하나에도 담긴 유별난 전통이 부럽다. 우리나라 명품 빵집에서 먹는 맛난 카스텔라의 맛과 후쿠사야의 카스텔라 맛은 별반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400년 전통의 스토리텔링을 듣고 있으면 당연히 한번 사서 먹어봐야 할 것 같고 맛도 무언가 더 맛있는 것 같다.

나는 빵 한 조각을 먹으며 무역항 나가사키의 역사까지 음미했다. 카스텔라의 역사를 가진 나가사키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나가사키는 전쟁의 비운을 가진 도시이지만 역사적으로 풍성한 도시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규슈, #나가사키, #후쿠사야, #카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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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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