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돌고 돌아 7년만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성매매경험 당사자 조직인 '뭉치'는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성착취임을 드러내고 성매매를 조장하는 세력에 대한 강력한 법적 처벌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성매매여성의 비범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대구여성인권센터가 주최하고 성매매 당사자 네트워크인 '뭉치'회원들이 당사자의 이름으로 성매매를 말하는 '무한발설 집담회'가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관계자, 관심있는 시민 등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9일 오후 국채보상기념회관에서 열렸다.
뭉치는 성매매 당사자들이 속마음을 나누고자 모여 자신의 경험을 말하다가 "뭉쳐서 안되는 게 어딨겠니"라며 당사자 자조모임을 만들고 자조모임이 뭉쳐 2006년 현장활동가 워크숍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날 행사는 1부 푸는마당에서 뭉치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을 시작으로 성매매 당사자들이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2부 까는마당, 질의응답 시간인 3부 썰썰마당의 순서로 3시간동안 계속됐다.
까는마당은 신박진영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의 사회로 성매매 당사자인 마루, 바다, 심통씨가 '자발, 비자발 따위는 필요없다', 성폭력과 성매매의 애매한 경계인 '너 맞았니, 돈 받았니?', 성매매라 쓰고 성착취라고 읽는다 '상상도 하지마!', 낙인에 잡아먹히지 않아야 할 이유 '밝히거나 더럽거나 불쌍하거나'의 주제로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냈다.
마루씨는 '자발, 비자발 따위는 필요없다'는 발설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이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어떻게 피해를 당했고 고통은 얼마나 큰지에 따라 자발과 비자발로 구분하고 비자발 여성이라면 구해줘야 하고 자발적이라고 하면 처벌을 해야 한다는 사회인식을 비판했다.
처음 업소에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막상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강압적으로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걸 자발로 볼 것인가 비자발로 볼 것인가 구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마루씨는 처음 성매매업소에 발을 들여놓을 때 스스로 찾아갔더라도 나올 때 스스로 나올수 있어야 하는데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며 대구와 포항의 유흥업소 여성 연쇄 자살사건 등을 예로 들었다.
바다씨는 성폭력과 성매매의 애매한 경계인 '너 맞았니, 돈 받았니?'라는 주제의 발설에서 맞으면 성폭력이고 돈을 받으면 성매매라는 인식에 대해 성매매 자체가 성폭력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바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선 후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등 4대폭력 근절하겠다고 했는데 경찰이 상담실에 찾아와 성폭력 사건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당부하고 갔다고 말하며 "성매매 근절하자는 상담실에 와서 성폭력 사건 달라고 하는 것은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무한발설에 나선 이유? 남성들에게 돌직구를 던지기 위해...바다씨는 탈성을 한 후에도 아직까지 일주일에 한 번은 업소에서 일하는 꿈을 꾸게 된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어 성매매 여성에게 돈만 주면 어떻게 해도 된다는 성구매 남성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성매매 여성들의 비범죄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통씨는 '상상도 하지마!'라는 주제의 발설에서 성매매를 생각하면 기억보다는 자신의 몸이 먼저 고통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성매매를 생각할 때마다 닭살이 돋고 심장이 뛰고 눈물이 흘러 이 기억이 평생 갈 것 같다"고 아픔을 호소했다.
심통씨는 탈성을 한 후에도 성매매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영향을 미친다며 "우리들도 처음에 죄없는 여성들이었고 처음부터 낙인찍혀 태어나지 않았다, 사회구조가 우리를 그렇게 내몰았다"고 말했다.
네 번째 발설 '밝히거나, 더럽거나, 불쌍하거나'에서 마루씨는 '성매매 여성이라고 티가 나는 것 아니고 성구매 남성이라고 낙인찍히는 것 아니지만 유별나게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만 낙인이 찍히게 만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마루씨는 "성구매를 하는 남성들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고 자신들의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발언할만한 안전한 공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무한발설에 나선 이유를 남성들에 대해 돌직구를 던지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들에게 탈성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남성들에게 탈성구매를 이야기해야 한다"며 "우리는 밝히거나 더럽거나 불쌍하지 않다, 우리를 낙인찍으려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꽃망울, 탈성할 때까지 한 번도 못봐
세 명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성매매업소에 들어간 과정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마루씨는 직장에 다니다 해고된 후 집안이 망해 갈곳이 없어 어쩔수 없는 상태에서 성매매업소로 유입되었다. 바다씨는 친구가 아는 오빠에게 성폭행 당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왔다가 어떤 남성에게 끌려 15살에 성매매업소로 유입되었다고 말했다.
심통씨는 친구의 남자친구가 4명을 인신매매로 성매매업소에 넘겼다며 "팔려갈 때 4월이었는데 차창 밖으로 꽃망울이 눈부시게 날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꽃을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탈성을 할 때까지 한 번도 꽃을 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무한발설 이후에는 탈성 이후의 고충과 성매매냐 성노동이냐의 논쟁, 당사자운동 등에 대한 질문 등이 쏟아졌다. 바다씨는 탈성 이후 집결지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며 고비를 넘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바다씨는 "어느 업주나 경찰을 끼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경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활동을 하면서 경찰과 함께 업소를 갈 때면 귀찮아 하면서도 나가준다는 게 조금이라도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마루씨는 "사회적 빈곤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성노동을 말하는 분도 있는데 그게 대안이 될 수는 없다"며 "성노동자로 규정된다면 사회는 오히려 개인의 문제로 규정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통씨는 "숨긴다고 해서 성매매를 했던 사실이 숨겨지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 운동을 한다"며 "성매매 여성들은 법 때문에 낙인찍히는 게 아니라 사회의 인식 때문에 낙인찍혀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심통씨는 당사자 모임인 '뭉치'를 통해 영상을 만들고 무한발설과 같은 대중과의 소통, 북콘서트 등을 통해 탈성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며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신적 지원을 호소했다.
이들은 또 언론에 대해서도 성매매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흥밋거리 위주로 다루는 등 지엽적으로 몰고가는 경향이 있다며 성매매 여성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대해줄 것도 당부했다.
이날 무한발설에 나선 마루, 바다, 심통씨에 대한 신상은 당사자들의 인권을 위해 비공개되었으며 사진촬영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집담회 참가자들에 대해서도 사전 신청을 통해 출입을 제한했다.
한편 이번 무한발설 집담회에서 당사자들의 발언을 통해 우리사회의 성산업 모순과 탈성을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고자 했던 대구여성인권센터 신박진영 대표는 "성매매는 사회의 총체적 문제가 드러나는 현장이면서 삶이 머물렀던 시간"이라며 "당사자의 힘으로 꿈꾸고 행동하는 모습을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상담소와 쉼터, 자활지원센터, 그룹홈 등을 운영하며 여성들의 인권실현 및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다. 지난 2002년 대구지역 성매매업소 실태조사 및 토론회 등을 시작으로 매년 성매매방지 영화제, 성매매 없는 세상 만들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여성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