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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터널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와인터널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 정만진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전체가 개통된다. 기차는 대구와 청도 사이의 팔조령 터널을 통과하여 부산까지 달렸다. 폭 4.2m, 높이 5.3m, 길이 1015m의 이곳 터널은 1896년부터 1904년까지 약 8년에 걸친 굴착 공사 끝에 완성되었다.

1909년 1월 8일,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이 터널을 지나 청도에 온다. 청도 유지들을 만난 순종은 마산으로 갔다가 12일 다시 이 터널을 지나 대구에 내린다. 물론 순종만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이 기차를 탄 채 이 터널을 지나다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937년 남성현 터널이 새로 개통되면서 터널은 폐쇄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1937년 폐쇄되었던 터널, 2006년 '와인 터널'로 부활

2006년, 오랜 세월 방치되었던 터널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 터널이 연중 일정하게 유지하는 온도와 습도가 청도군의 지역 특산품인 '감 와인'을 숙성하고 저장하는 데 아주 적합한 조건으로 판명된 까닭이다. 그 결과, 기차 터널은 약 70년 만에 '청도 감 와인 숙성, 저장 창고'로 재탄생한다.

청도군은 이 터널에 '와인 터널'이라는 새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터널의 용도는 와인 저장고에 멈추지 않았다. 터널 가장 안쪽만 와인 창고로 사용될 뿐, 입구에서부터 저장고 바로 앞까지는 카페로 꾸며져 일반인들을 불러모으는 테마 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와인 터널은 국가적 행사 때마다 '건배주'로 쓰이면서 대단한 지명도를 얻은 청도 감와인을 더욱 널리 홍보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와인터널 내부
와인터널 내부 ⓒ 정만진

지인의 권유로 그와 동행하여 와인터널을 둘러보았다. 시간상으로는 와인 한 잔을 마시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조금 미진한 듯했던 와인터널 답사 기분은 터널 밖으로 나온 뒤에 발견한 이정표 하나로 다시 불꽃처럼 살아났다. 와인터널 입구로 들어가는 길 바로 왼쪽에 쓸쓸히 서 있는 문화유산 안내 표지판 덕분이었다.

와인터널 100m 거리에 '보물' 극락전 존재

와인터널 왼쪽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 들머리의 이정표에는 '대적사 극락전 보물 836호 100m' 글자가 선명했다. 보물! 국가가 지정한 보물급 문화재가 이곳에 있는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렇게 우연히 보물 감상을 하게 되다니! 우리는 솟아오르는 호기심을 느끼며 들길인 듯 산길인 듯 싶은 얕은 오르막을 걸어 올랐다.

50m 가량 들어서니 고색창연한 거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웅대한 고목들은 대적사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임을 웅변하고 있는 듯했다. 나무들은 사찰의 절집들을 모두 제 몸집 뒤에 숨기고 있었다. 그 덕분에 절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더욱 정취가 돋보였다.

 나무들 사이로 대적사가 보인다.
나무들 사이로 대적사가 보인다. ⓒ 정만진

사실 수백 명도 넘을 듯이 많던 와인터널 방문자들 중에서 대적사로 발걸음을 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터널에서 나와서는 곧장 차를 몰고 돌아가버리는 낌새였다. 그런데 우리가 절을 찾는 것을 보고는 각각 두 쌍의 청춘남녀가 뒤를 따라 올라왔다. 문득 문화재 길잡이가 된 듯하여 기분이 상쾌해졌다.

경내로 들어서는 계단 앞에 섰다. 절에 가면 흔히 통과하게 되는 천왕문을 우러러 보는 순간, 문득 첫 계단 오른쪽의 큰 바위 위에 얹혀있는 작은 동자승 조각품 둘이 눈에 들어 왔다. 정말 주먹만큼 조그마한 동자승들이다.

사찰 경내 들머리의 작은 동자승 조각, 정말 귀여워

왼쪽의 동자승은 팔베개를 한 채 누워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천진난만한 표정이 너무나 귀엽다. 그런데 누가 부러뜨렸는지 두 다리가 모두 무릎 아래를 잃었다. 그래도 동자승은 조금도 찡그리지 않은 채 환한 얼굴을 변함없이 보여준다.

오른쪽의 동자승은 앉아 있다. 탁자에 두 팔을 얹고 공부를 하는 자세다. 하지만 정진이 어려운지 입이 튀어나와 있고, 볼도 불룩하다. 오가는 불자들이 동전을 바쳤는데 오백 원 정도 되어 보인다. 이 동자승은 그 돈이 적어서 불만인가?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는데, 뒤따라 올라온 청춘남녀도 두 동자승이 귀여운지 한찬 멈춰서서 바라본다.   

 사찰로 올라가는 계단 들머리의 바위 위에 놓여 있는 주먹만한 동자승 조형들의 표정이 눈길을 끈다. 누워 있는 동자승은 여유와 천진난만이 넘치는 반면, 앉아 있는 동자승은 뭔가 심술이 난 듯 입이 툭 튀어나와 있다. 그래선지, 사람들이 그의 앞에 500원 정도 되는 동전을 놓아주었다.
사찰로 올라가는 계단 들머리의 바위 위에 놓여 있는 주먹만한 동자승 조형들의 표정이 눈길을 끈다. 누워 있는 동자승은 여유와 천진난만이 넘치는 반면, 앉아 있는 동자승은 뭔가 심술이 난 듯 입이 툭 튀어나와 있다. 그래선지, 사람들이 그의 앞에 500원 정도 되는 동전을 놓아주었다. ⓒ 정만진

극락전 앞의 안내판을 읽어보니 대적사는 1988년 7월 21일에 '전통사찰 가-75호'로 지정되었다. 창건된 때는 876년으로 헌강왕 재위 2년째 되는 해이다. 보조선사가 이곳에 처음 절을 닦았을 즈음에는 토굴이었다고 한다.

안내판은 또 본래 이곳은 신라 시대에 큰 절이 있었던 자리였다고 해설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들처럼 임진왜란의 재앙을 피하지 못해 전란 중에 폐사된다. 그 후 1635년경 초옥 3칸의 절이 다시 지어지고, 1689년(숙종 15)에는 성해대사가 삼존불을 모시면서 사찰의 면모를 제대로 갖추게 된다. 세칭 중창된 것이다.

876년 창건된 신라 고찰, 현존 극락전은 18세기 작품

보물 836호인 극락전은 18세기에 건립되었다. 한눈에도 고색창연한 빛깔과 형상이 인상적인 이곳 극락전은 다포계(多包系) 공포(栱包)를 갖춘 맞배지붕 건물이다. 게다가 2단으로 조성된 높은 기단부 위에 우뚝 자리를 잡고 있어 실제 크기보다 훨씬 웅장하게 느껴진다.

공포, 다포, 맞배지붕

공포 :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다포 : 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공포를 짜 올린 것. 옛날 목조건물은 지붕 아래에서 쳐다볼 때 반듯반듯한 목재들이 복잡하게 박혀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바로 다포.
맞배지붕 : 지붕의 윗부분 절반은 건물 모서리가 추녀(처마 네 귀 끝의 번쩍 들린 서까래)없이 용마루(지붕 가운데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까지 삼각형을 이루고, 그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을 팔작지붕 또는 합각지붕이라 하며, 그 중 삼각형 부분을 맞배지붕이라 한다. 


 국가 보물 836호인 대적사 극락전
국가 보물 836호인 대적사 극락전 ⓒ 정만진

무심코 볼 때는 스쳐 지났지만, 안내판을 읽은 다음 다시 살펴보니 기단 전면에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돋울새김으로 새겨진 연꽃 무늬와 거북 무늬다. 뿐만 아니라 기단 중심부에 설치된 계단의 오른쪽 돌에는 용비어천도(龍飛御天圖)까지 새겨져 있다. 안내판은 절집 기단에 연꽃무늬, 거북무늬, 용비어천도가 새겨져 있는 이곳의 사례가 ' 우리나라 건축 의장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해설한다.

역시 문화재를 찾았을 때에는 현지의 안내판을 정성껏 읽어야 한다. 답사를 떠나기 전에 미리 공부를 충분히 하고 가면 좋겠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오늘처럼 우연히 어떤 곳을 들르게 될 때에는 현지 안내판이 최고의 스승이다. 지금도 안내판을 제대로 읽지 않았더라면 극락전을 수박 겉핥기로 둘러보고 말았을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보다 한참 늦게 사찰 경내에 들어섰던 두 쌍은 어느샌가 돌아가고 없다.

문화재를 찾았을 때에는 현지 안내판 공들여 읽어야

오늘은 보람 있는 하루였다. 와인터널을 보아서가 아니라 국가 지정 보물인 대적사 극락전을 감상하는 뜻밖의 소득을 얻었기 때문이다. 현진건의 수사법을 빌자면 '운수 좋은 날'이었다고나 할까. 그의 <운수 좋은 날>은 반어법인 탓에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지만, 우리의 오늘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므로 하루 내내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대구로 돌아가서는 정겹게 둘러앉아 동동주 한 잔을 나누기로 했다.

 극락전 기단에 거북 무늬와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고,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용비어천도가 새겨져 있는 것은 드문 예로 우리나라 건축 의장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극락전 기단에 거북 무늬와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고,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용비어천도가 새겨져 있는 것은 드문 예로 우리나라 건축 의장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정만진



#와인터널#대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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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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