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빈자리를 느꼈다. 농사꾼에서 목사, 역사 연구자. 주부 그리고 저 멀리 미국의 대학교수까지. 공통된 분모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열두 사람이 책을 냈단다. 서평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아찔함. 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까? 300여쪽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 각각의 연주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누군가 채워 넣어야 할 빈자리가 보였을 뿐이다.

<나는 시민기자다>(오마이북), 이 책은 <오마이뉴스>에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묶어 놓은 책이다. <오마이뉴스>13년의 역사, 7만여 시민기자들 속에 돋보였던 사람들, 글 써서 상도 타고 책도 내고 나름 몇 번씩은 독자 수십만 명을 한꺼번에 기사 앞에 세워 놓고 울고 웃고 분노하게끔 만든 장본인들이 모여 책을 썼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은 너무나 평범하고 제 각각이다.
감동의 공명 만들어내는 '사는이야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의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 <나는 시민기자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의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김혜원 시민기자. 대단한 아줌마다.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두 번이나 탓다. 2006년에는 시사잡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놀라고 감동을 받았던 건 수상이력 때문이 아니다. 그가 썼던 기사를 묶은 책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오마이북)를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는지 모른다. 지하 월세방에서 폐지를 모아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그의 글은 눈물이 보이지 않아서 더 슬프다. 동네 이장님같이 따뜻한 소리를 전하는 확성기 같은 존재, 그가 말하는 시민기자의 역할이다.

그런 사람이 또 있다. 전남 고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송성영 시민기자. 그의 글에는 충정도 사투리가 언듯언듯 비친다. 글이 다 끝나도록 교훈은 그렇다 치고 제대로 된 결론조차 찾기 힘들다. '사는이야기는 억지 교훈을 내세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들의 반응으로 통해 가르침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내세우는 사는이야기 기사의 정의다.

서울에 사는 까궁이 아빠 이희동 기자. 육아일기는 행복의 기록과 사회의 저항을 동시에 담고 있다. 모든 일상이 정치적이라는 그의 지론을 눈여겨 볼 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마이뉴스>에는 사는이야기라는 특별한 분류 기사들이 있다. 신변잡기일 수도 있는 일상, 그러나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본인이 아니면 쓰지 못할 일들을 쓰는 코너다. 많은 시민기자들이 처음 발을 들여 놓는 관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일기처럼 쓸 수 없는 엄연한 기사다. 솔직 담백하게 담아내고 독자들에게 자기의 일처럼 느끼고 대리 체험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사는이야기의 맛이다. <오마이뉴스>에 처음 글을 쓰는 시민기자라면 김혜원, 송성영, 이희동 시민기자 노하우(?) 따라 배워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강인규 시민기자는 미국에서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다. 전대원 기자는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다. 이종필 기자는 과학자라는 직함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들 3명은 정치·사회 비평을 주로 써 왔던 시민기자들이다. 가장 많은 독자와 원고료 주기, 그리고 댓글에 안티 독자까지 몰고 다니는 시민기자로 유명한 이들이다. 기성 언론의 수많은 사설과 칼럼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글들이 이들의 손을 거쳐 나왔다. 이런 글들에는 어떤 사안에 대한 행간을 되집어 볼 수 있는 통찰력과 함께 모든 것들을 회의해 볼 수 있는 비판적 사고가 숨어 있다.

성역으로 치부되는 것들, 관념으로 굳어져 있었던 것들에 통렬한 메스를 들어대는 날카로운 직관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필체는 권력과 독자사이에서 정보 전달자로서 역할을 해온 기성 언론인들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불편하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 담기기도 한다. 그러나 기존의 가치와 우상을 흔들어보지 않고서는 구태를 벗어날 수 없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없다. <나는 시민기자다>에서 들려주는 3명의 비판적 글쓰기. 거기에는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이 담겨져 있다.

전문기자가 보여주는 힘

최병성 시민기자. 4대강 전문기자로 통한다. 공무원들을 비롯해 일부 이해관계에 있는 이들은 최병성 시민기자를 '불독'이라고 부른다. 그의 본업은 목회를 하는 목사다. 그는 이명박 정권 내내 4대강 문제를 진짜 불독처럼 물고 늘어졌다. 4대강 문제에 있어서는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기사로 밥먹고 사는 기자들이나 방송국에서도 그에게 4대강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할 정도다.

<오마이뉴스>에는 그런 전문기자가 한둘이 아니다. 역사학자로 '사극으로 역사읽기'를 연재하고 있는 김종성 시민기자 있고, 어려운 법 문제를 독자들에게 차분히 풀어주는 김용국 시민기자도 있다. 법원 공무원인  김용국 시민기자는 자기 신분을 십분 발휘해 글을 쓴다. 이들은 모두 직업기자가 아니다. 분명한 목적의식과 자기의 직업을 기사로 결부시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문기자 반열에 올라선 최병성, 김종성, 김용국 시민기자. 그들도 처음에는 주빗거리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던 초보 시민기자였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의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 <나는 시민기자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의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아줌마로 비정규직 아픔을 담아낸 신정임 시민기자. 시나라오 작가는 꿈꾸는 윤찬영 시민기자는 영화나 드라마 평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담아내지만 정당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양형석 시민기자는 스포츠 분야에 정통한 시민기자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기의 관심분야를 글로 옮기고 다듬는다면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 이들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모토를 누구보다 잘 실천한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진보는 정치인의 발로 가는 게 아니라, 시민의 발로 간다. <오마이뉴스> 역사 13년은 진보의 기록이며, 때로는 진보를 추동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오마이뉴스> 7만여 시민기자의 기사에서 나왔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직은 너무나 많은 자리가 비어 있다. <오마이뉴스>를 열면 반드시 있어야 할 기사들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느낌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 빈자리. <나는 시민기자다>책을 덮으면서 더 크게 느꼈다.

정상에 오르는 길에 정답은 없다. 한가지 관념만을 강요하고 성역이 많은 사회는 죽은 사회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굳어진 분단의 장벽이 있고, 자본과 권력에 의해 공고해진 숱한 성역이 존재한다. 굳어진 장벽과 성역은 흔드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 세상이 회색빛이 아니라 일곱빛깔 무지개로 빛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시민기자다>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에 있는 빈자리가 내 자리라고 생각된다면 또 한명의 시민기자로 이름을 올려 놓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모든 시민이 권력의 주인으로 언론의 주인으로 나아갈 때 역사는 한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니까.


태그:#나는 시민기자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