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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록의 새싹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금방 올 것 같았던 봄이 느릿느릿 왔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봄이다.
▲ 봄바람 연록의 새싹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금방 올 것 같았던 봄이 느릿느릿 왔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봄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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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이틀쯤 머물 꽃샘추위인가 했는데 아직도 쌀쌀한 기운이 다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미 온 봄을 꽃샘추윈들 어쩌지 못하고, 더디긴 하지만 이젠 더는 못 참겠다고 꽃들이 여기저기 폭죽 터지듯 피어납니다.

동네 공원에 올랐습니다. 진달래는 이미 한창때가 지난듯하고, 개나리가 한창때지만 아직 나무 이파리는 듬성듬성 합니다. 듬성듬성하지만 연록의 새순이 머지않아 숲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봄바람이 붑니다. 봄바람에 피어나는 봄을 맞이하는 흥겨움에 나뭇잎들이 춤을 추는 듯 합니다.

피어난 꽃보다 몽우리가 더 많은 조팝나무, 이제 사나흘 뒤면 하얀 눈꽃처럼 피어날 것 같다.
▲ 조팝나무 피어난 꽃보다 몽우리가 더 많은 조팝나무, 이제 사나흘 뒤면 하얀 눈꽃처럼 피어날 것 같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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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나무는 핀 꽃보다 피어날 꽃들이 더 많습니다. 사나흘 아니면 일주일이면 하얀 눈꽃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에 찾아온 꽃샘추위가 한꺼번에 피어날 뻔한 꽃들의 시기를 조금 조정을 해준 것 같습니다.

그 꽃샘추위가 없었다면 한꺼번에 피었다 한꺼번에 꽃이 지고, '벌써 봄이 가는가보다', 허망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금 천천히 오는 봄. 봄날을 더 머물게 해준 꽃샘추위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물론, 가니까 하는 이야깁니다.

작고 노란 꽃다지는 봄나들이 나온 노란 병아리를 보는듯하다.
▲ 꽃다지 작고 노란 꽃다지는 봄나들이 나온 노란 병아리를 보는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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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꽃들로부터 봄은 시작됩니다. 봄이 이렇게 시작되듯 다른 것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겨울이 이미 봄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로 올 때에는 천천히 작은 것으로부터 낮은 것으로부터... 그런데 그렇게 봄이 오는 것입니다. 누구도 아니라 할 수 없는 봄이 오는 것이지요.

사람살이에서는 소통이 그러하겠지요. 아주 작은 소리에 귀를 막아버리면 그 소리를 못 들을 뿐 아니라, 정녕 귀를 기울여야할 것들 조차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듯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낮은 자들, 작은 자들의 외침이 꽃샘추위에 얼어터지는 것 같은 현실입니다. 그래도 봄 오듯이, 그들의 간절한 외침이 피어날 것입니다.

수줍은 듯, 신기한 듯 먼저 피어난 꽃마리가 피어날 동생들에게 피어나도 좋다 말하는 듯하다.
▲ 꽃마리 수줍은 듯, 신기한 듯 먼저 피어난 꽃마리가 피어날 동생들에게 피어나도 좋다 말하는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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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마리는 둘둘말려 피어나는 꽃입니다. 아무나 먼저 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줄기에서도 피어나는 순서가 있지요. 꽃마리는 아래서부터 피어나고, 오이풀은 위에서부터, 냉이꽃은 가장자리꽃부터... 그런 순서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순리라고 하지요.

사람사는 세상도 순리대로 피어나야 할 터인데 그러하지 못합니다. 의자놀이를 재미있게 지속하려면 한 사람이 계속 의자를 독차지 하지 말고, 번갈아가면서 앉을 수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힘없는 이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없네요. 그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를 달라 외치니, 그들을 내몰고 화단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이 그네들의 의자놀이 방식이니 그들과 놀면 재미 없을 것이 뻔하지요.

순리대로, 물 흐르는대로, 꽃 피어나는대로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노란 개나리 피어난 낮은 곳에 산자고가 피어났다.
▲ 산자고 노란 개나리 피어난 낮은 곳에 산자고가 피어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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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어김없이 산자고가 피어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는 덕입니다. 이들이 피어날 적에 이토록 예쁜 줄 알면 다 캐갔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공원과 도로 사이의 절개지, 절개지의 개나리와 병꽃나무 사이의 작은 공간, 그 공간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기 힘든 공간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피어날 즈음이면 나는 한 번씩 그 길을 걷습니다.

어디에서든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으면 더 풍성해지는 자연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에서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이러한 봄바람의 기운이 우리 역사에도 불어왔으면 좋겠습니다.


태그:#꽃다지, #조팝나무, #꽃마리, #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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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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