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달 경북 지역 명문 자율형 사립고에 다니던 권모 군(고2)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교 1등이던 학생. 학교 폭력을 당한 적도, 우울증 증세도 없었다. 그는 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심장을 갉아 먹는데 더이상 못 버티겠어요." 경찰은 성적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살 사유로 추정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도 고3 김모 군이 얼마 전에 목숨을 끊었다. 그 역시 평소에 사고 한 번 친 적 없는 모범생이었다. 2년 전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른 고교생도 마찬가지. 항상 1등이어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분신 직전 주변에 이렇게 말한 걸로 알려졌다. "부모님이 나를 보살펴 주는 것에 비해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없어."(동아일보 4월 10일자)

나는 지금 한 일간지의 기사를 보고 있다. 그리고 우울증 증세도 없는 전교 1등 학생이 '머리가 심장을 갉아 먹는' 고통을 겪으며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상황을 고통스럽게 상상한다. 이어서 기사는 학급 성적이 상위 10% 안에 든다고 밝힌 서울 강동·송파 지역 고교생 100명에게 묻고 있다. 얼마나 행복한지를. 남보다 불행하다고 답한 학생이 57명이었다. 100명 중 6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한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집 옥상에서, 꽃잎처럼 몸을 던져 흩어지는 청소년들이 있는 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 수 없다. 청소년들의 불행 위에서 존재하는 그 어떠한 제도와 정책과 신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결국, 인권의 문제이다.

나는 왠지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한국의 청소년들이 떠올랐다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 버밍햄 십대들의 인간선언 행진
▲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 버밍햄 십대들의 인간선언 행진
ⓒ 낮은산

관련사진보기

'버밍햄 십대들의 인간 선언 행진'이라는 부제가 붙은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낮은산)는 1963년,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의 앨러바마 주 버밍햄에서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해 거리로 나간 십대들의 투쟁을 기록한 책이다. 나는 왠지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한국의 청소년들이 떠올랐다.

이 책은 마치 다큐멘터리 대본처럼, 기록과 인터뷰를 병행하고, 저자는 내레이터가 되어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저자인 신시아 레빈슨은 버밍햄 청소년 시위 참가자들을 인터뷰하고, 당시 상황과 기록을 조사하여 책을 펴내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고 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오드리 헨드릭스, 워싱턴 부커 3세, 제임스 스튜어트, 아네타 스트리터 등 4명이었고, 이 중 오드리는 당시 아홉 살이었으며, 나머지 세 사람은 십대들이었다.

버밍햄 시는 1951년 제정한 인종분리 조례에 따라 흑인과 백인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식수대, 화장실, 학교, 버스 좌석을 흑인용과 백인용으로 구별하도록 의무화했고, 축제, 파티, 만남의 장소, 교회 예배, 법정 증인이 맹세하는 성서, 식당 자리 등 온갖 것을 분리하였으며, 영화도 같이 볼 수 없게 하였다. 심지어 하얀 토끼와 검은 토끼가 결혼하는 그림이 담긴 어린이 책도 못 보게 했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흑인들이 진정한 자유를 갖지 못했고, 그 중 버밍햄 시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어둠이 깊으면 밝음에 대한 갈망을 더욱 키우듯이, 인종차별이 어느 지역보다 강했던 버밍햄에서 차별 철폐 투쟁이 더욱 강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인종 분리는 불평등하여 위헌이라고 결정했는데, 버밍햄 시는 이 판결을 무시하였고, 이에 따라 흑인들은 버밍햄 시를 상대로 소송하여 재판을 이기기도 하였으나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흑인 민권 운동을 이끌고 있던 셔틀스워스 목사는 버스 승차 거부, 식당, 기차역에서 연좌 농성, 철야기도회 등을 조직하였고, 대학생들은 백화점과 백인 상점 앞에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7년 동안 대중 집회를 열었다. 집회의 중심은 늘 교회였고, 목사들은 민권 운동의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셔틀 스워스, 랠프 애버내시, 제임스 베벨과 마틴 루터 킹 목사 형제가 그들이다.

그러나 대중 집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4월 3일, 교도소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이 체포되어 인종차별의 비인간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행동, 즉, '프로젝트 C'(C는 대항을 뜻하는 Confrontation)를 실행한다. 평화적인 비폭력 시위와 체포, 그리고 교도소 구금이 '프로젝트 C'의 요체였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대략 1000명의 유죄 판결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체포를 자청하는 사람 수는 형편없이 적었다. 첫날 65명 지원으로 20명 체포, 4월 4일 지원자 75명 중 4명 체포, 4월 5일 지원자 50명에 체포자 10명이었다. 4월 6일 35명 참가자에 29명 체포. 4월 7일엔 시위자 수가 수백 명으로 늘어났지만 체포자수는 26명에 지나지 않았다. 지지부진했던 시위는 4월 12일, 대중들과 함께 거리 행진을 한 셔틀 스워스, 랠프 애버내시, 마틴 루터 킹 등 운동 지도자 세 명이 체포되어 8일간 독방에 갇힘으로써 전기를 맞이한다.

운동의 새로운 물꼬를 튼 사람은 제임스 베벨 목사였다. 당시 26세인 베벨은 감옥에 갇힌 세 명의 목사를 대신하여 대중 집회를 이끌었는데, 그는 '인종 분리된 학교에서 5개월 동안 배우는 것보다 시립 감옥에서 닷새를 보내며 배우는 게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아이들을 추동했다. 베벨은 지도부를 설득했다.

"학생들로 감옥을 채웁시다."

그러나 성인 대신 아이들을 시위에 참가시키자는 베벨은 제안은 어리석고, 지나치게 위험한 짓이며, 교육을 무너뜨리는 시도라며 비판을 받았다. 셔틀 스워스 목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며 베벨의 제안을 지지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최선의 교육은 아이들이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본문 101쪽)

마침내 5월 2일을 디데이로 잡아, 버밍햄 흑인 학교의 학생들이 출석 규칙을 무시하고 모임 장소인 16가 침례교회로 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지도부는 철저히 비폭력을 고수하며, 비폭력에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면 시작조차 하지 말자면서 바구니를 돌렸고, 바구니는 주머니칼로 가득 찼다.

800명 남짓 되는 어린 시위자, 50개 그룹으로 나누어 행진

주최 측은 800명 남짓 되는 어린 시위자들을 50개 그룹으로 나누어 행진시켰다. 가장 어린 시위자였던 오드리는 그녀의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되었다. 5월 2일 밤까지 시위대는 진짜 목적지인 감옥에 도착했고, 500에서 800명 사이의 청소년들이 수감되었다. 이는 4월 한 달 동안 체포된 성인 수의 두세 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운동 지도부는 5월 3일을 '두 배 디데이'로 잡아 2000명가량의 아이들을 모았다. 그들은 오후 1시에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 시위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소방관들의 물대포였다.

캐럴린 마울은 물대포를 맞아 그 충격으로 머리카락이 뽑혔다. 한 여학생은 물에 밀려 차에 부딪히면서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또 한 남학생은 공중으로 붕 뜨기도 했다. 소방관들이 공원 이곳저곳에 물대포를 쏘아대는 바람에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다. 어디로 달아나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개(경찰견)들이 컹컹 짖어대며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몇몇 시위자는 공원 출입구 또는 나무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거친 벽돌 건물에 내던져졌다. 수십 명의 아이가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버티려 했지만 이내 보도로 내팽개쳐졌다.(본문 123-124쪽)

이렇게 해서 5월 2일 목요일과 5월 6일 월요일 사이에 약 2500명의 청소년이 체포된다. 감방이 꽉 차서 더 이상 아이들을 가둘 수 없게 되자, 공원 헛간이나 외양간이며 돼지우리까지 아이들을 수감했다. 그러고도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야외에 서 있게 있다. 마침 해가 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야외에 서 있던 아이들이 추위와 어둠 속에서 젖은 채로 울었다. 수백 명의 부모가 공원으로 차를 몰고 가서 울타리 너머로 담요와 샌드위치를 던져 주려 했으나 경찰은 그들을 막았다.

감옥에 수감된 아이들의 고통도 말이 아니었다.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어서 교대로 자야만 했고, 변기 다섯 개에 삼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줄을 서야 했다. 그리고 더욱 가혹한 것은 교도관들이 밤에는 에어컨을, 낮에는 히터를 켜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이들의 고통에 화답하듯이 흑인 사회는 하나가 되어 갔다. 버밍햄 인종 통합을 위해 평화로운 수단이라면 아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을 포함하여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게 되었다.

5월 5일, 일요일, 예배를 마친 1000명가량의 흑인들이 아이들의 용기에 고무되어 자발적으로 시위행진에 참가했다. 이는 버밍햄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시위행진이었다. 그들은 아이들이 수감된 감옥으로 가서 항의 집회를 열 계획이었다. 경찰과 소방관이 가로막았고, 지휘자 코너는 위협했다.

빌럽스 목사는 되받아 소리쳤다. "물대포를 쏘고 개를 풀어놓으십시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인 사람 대다수가 무릎을 꿇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물대포를 발사해라." 코너가 명령했다. 소방관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젠장! 물대포를 발사해!" 코너가 반복해서 소리쳤다. 소방관들은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 일부는 울기 시작했다. 한 소방관이 코너에게 말했다. "직접 하시죠. 나는 물대포를 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소방관이 말했다. "우리 임무는 불을 끄는 것이지, 사람을 끄는 것이 아닙니다."(본문 162-163쪽)

감옥은 가득 찼지만, 5월 7일에도 2000명의 시위대가 "감옥에 갈 거야"를 외치며 시위하였다. 경찰도 어쩌지 못했다. 마침내 케네디 대통령은 버크 마셜 법무부 차관보를 버밍햄에 보내 중재하도록 했다. 마셜은 흑인과 백인이 함께 참여하는 소위원회를 만들어 중재하였고, 5월 10일, 인종 분리와 차별 정책을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한 합의문에 서명한다.

그러나 합의문에 서명한 다음날부터 백인 인종분리주의자들이 움직였다. 운동 지도부 목사들에 대한 폭탄 테러가 가해졌다. 폭탄 테러는 흑인들을 분노하게 하여 폭동으로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지도부는 비폭력을 강조하며 흑인들을 해산시켰다.

시위행진은 끝났지만 법정 소송, 폭탄 테러, 폭동은 계속되었고, 9월까지 버밍햄은 요동쳤다. 그런 가운데 극적인 변화도 이어졌다. 6월 5일, 버밍햄의 가장 호화로운 호텔인 튜트윌러는 자발적으로 흑인 손님을 받았다. 7월 23일에는 버밍햄 시 위원회에서 인종 분리 조례안을 공식 폐기하였다.

인터뷰에 응했던 워싱턴 부커 3세는 말했다. "우리는 역사의 방향을 바꿔 놓았어요. 흑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소득은 자부심을 갖게 된 거라고 믿어요." 제임스 스튜어트도 말했다. "비록 어리지만, 아이들이라고 해서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어렸을 때 어른들의 문제로만 보였던 일에 뛰어들었던 거잖아요. 당시 상황이 바뀐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야말로 우리가 청소년이었다는 사실 아닌가요."

청소년들의 참여가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제임스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인종차별이라는 매우 강력하고 극적인 현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의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도 비록 개량화되어 있긴 하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제약되어 있으며, 무한 경쟁의 체제 속에 몸과 마음이 속박되어 있다. '보장된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의 건강한 삶'을 저당 잡힌 신세라고 하면 지나친 언사일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미래다. 우리의 '미래'를 어리고 미숙하다면서 어른에 대해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만을 강요하여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온 우리 사회는, 신시아 레빈슨의 책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를 통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청소년들도 제발 맥없이 죽지 말고, 자발적인 연대와 행동이 더 큰 자유를 불러온다는 진실을 버밍햄 청소년들의 투쟁을 통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버밍햄에서, 마틴 루터 킹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장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갔다.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잔인함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침묵입니다."

덧붙이는 글 |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 신시아 레빈슨, 낮은산, 2013년 3월 25일, 1만 5천 원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 - 버밍햄 십대들의 인간 선언 행진

신시아 Y. 레빈슨 지음, 박영록 옮김, 낮은산(2013)


#버밍햄#인종분리정책#청소년#시위행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