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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흠점 어머니는 팔순이 지났는데도 귀가 어둡지 않다.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전달하는 모습에서는 남다른 기백까지 느껴진다.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아들, 며느리 몫까지 모두 들어서 전하겠다는 어머니의 의지가 노화를 막고 있는 것이리라.

농아인협회 예산군지부를 이끌고 있는 이일주(54), 박금동(54) 부부의 어머니 백흠점(82) 여사. 손녀 셋을 어엿하게 키워낸 할머니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마을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는 이들 가족을 만났다. 장애가 있음에도, 받기보다는 언제나 먼저 베푸는 사람으로 유명한 며느리 금동씨는 "우리 먹던대로 같이 먹자"면서 정성스러운 저녁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스코리아처럼 예뻤다”“잘생기고 과묵해서 남자다웠다” 서로 첫 눈에 반했다는 이일주, 박금동 부부는 표정만큼 ‘선한 마음’이 꼭 닮았다. 부부의 초긍정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어머니 백흠점 여사,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한국의 어머니다.
 “미스코리아처럼 예뻤다”“잘생기고 과묵해서 남자다웠다” 서로 첫 눈에 반했다는 이일주, 박금동 부부는 표정만큼 ‘선한 마음’이 꼭 닮았다. 부부의 초긍정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어머니 백흠점 여사,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한국의 어머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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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금동씨 이야기

"얘들이 둘 다 배냇벙어리가 아니여. 어렸을 때 고열로 귀가 먹었으니 우리 손녀들이야 상관없지. 내가 말을 허니께 지절루 배우대."

어머니의 말에, 옆에 있던 며느리 금동씨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터뷰를 위해 수화통역에 나선 강옥 통역사의 눈과 입, 손들도 따라 바빠진다.

"할머니가 낱말카드 같은 것 사다가 애들 한글 다 가르쳤어요. 젖먹이 때는 애기엄마가 애기 울음소리를 못들으니까 밤에 잘 때 애기가 울면 며느리 깨워 젖 먹이게 하고…. 할머니가 잠시도 떨어져 있지 못하고 같이 키운거죠."

"한 번은 집안일로 부산에 갔는디, 마을에 사는 집안 형님이 전화를 했어. 애도 엄마도 종일 울고만 있다고. 일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그길로 정신없이 와보니 어매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다 짓물렀는데 애 안고 또 그냥 울고만 있고, 손녀딸도 목이 다 쉬어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계속 울더라고. 기가 맥혀 애를 받아 '자장자장' 하면서 내 목소리 들려주니 금방 잠들대."

농아 아들을 키운 어머니는 농아 며느리까지 감싸안았다. 아들부부가 결혼 10주년이던 해에는 손녀 셋을 모두 맡아주며 외국여행을 다녀오게 했을 정도로 품이 넓다. 며느리 금동씨가 아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농아인협회 활동을 해온 터라 바깥나들이가 많았지만 '밖으로 돈다'고 타박하기는 커녕,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열린 시어머니다.

"우리 애는 흠잡을 데가 읍서. 살림 다 해놓고 나가는데 왜 말려? 말 못한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거 보다 나가 활동허는 게 훨씬 좋지."

막내 손녀가 8개월 째에 조산됐을 때, 병원에서 '아이와 산모 모두 위험하다'고 하자 "어매만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린 시어머니다. 셋째 딸을 낳고는 아들 아니라며 며느리가 아이를 밀쳐내자 "아들 못낳는다고 속상해하면 천치여. 팔자에 아들이 없는데 어쪄"라며 손녀를 품에 안았던 시어머니다. 이쯤되면 며느리라기보다 딸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어머니는 또 딱부러지는 어조로 일갈한다.

"어뜨케 며느리가 딸같어? 딸은 때릴 수도 혼낼 수도 있지만, 며느리는 이뻐만 해야는디."

아들 일주씨 이야기

예산 지역에 농아단체가 설립되기 이전인 10대때 서울로 다니며 수화를 배우고, 농아복지를 위해 일할 정도로 진취적인 아들 일주씨가 지난달 농아인협회 예산군지부장에 취임했다. 지부장이 여러번 바뀌고 잡음이 있을때도 협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조용하게 이사로서 역할을 해오던 일주씨가 처음으로 맨 앞에 나선 것이다.

어머니는 "사람들헌티 인정받고 지부장 된거가 자랑스러운디, 걱정이 많이 돼. 일해야 먹고살지 거기 가 있으면 뭐가 나와?"라면서도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

건축 관련해서는 못하는 일이 없고 워낙 성실하고 기술 좋기로 소문이 나 현장마다 불려다니던 일주씨는 지난해 이맘때 손가락 두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접합수술을 받고 꼭 1년동안 일을 중단했다가 최근에야 복귀했다. 자식 나이 쉰이 넘도록 마음을 놓지못하는 어머니를 이해하면서도 일주씨는 어머니만큼이나 단호한 표정과 강한 손짓으로 의지를 표명한다.

"농아인협회 새롭게 해 나가겠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협회 안에서 갈등이나 음모는 절대 안된다고 벌써 얘기했다. 우선 급한 일은 농아인들을 위한 승합차 확보다. 혹시 인터뷰가 나가면 빨리 해결될 수가 있나?"

세상에서 제일 이쁜 손녀들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녀들이 크면서 부모를 부끄러워한 적은 없나요?"

"내가 부끄럽게 키웠간? 당당하게 키웠지" 어떤 질문에서보다 단호하고 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누구 딸보다 곱게, 이쁘게 목숨 걸고 키웠다"는 할머니는 손녀들 일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나섰다. 초등학교 교사이던 남편과 50대에 사별한 뒤, 4남매를 키워 출가시키고, 다시 손녀 셋을 키운 삶의 궤적들은 가늠조차 어렵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는 아무도 물러. 그 말 다하자면 책으로 몇권도 모자라. 그래도 모든 일을 좋게 좋게 생각해야지 나쁘게 생각하면 더 늙으니께 좋은 생각만 헐려고 허지."

큰 손녀 효진씨는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안양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다.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둘째 남진씨는 학교 보건교사로 근무한다. 막내손녀 어진씨는 올해 수원여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할머니를 유난히 따랐던 막내 손녀는 수화를 모르는 할머니에게 엄마아빠의 통역사 역할을 했단다.

"위로 둘도 그랬지만, 우리 어진이 보내고 내가 며칠을 울었나 물러. 우리 어진이가 타온 상장좀 볼텨? 붓글씨, 글짓기, 공부 못허는게 읍서. 상장이 상자로 하나여."

일주씨와 금동씨도 딸들 자랑에 분주해 진다. 세 딸 모두가 사회에 보탬이 되며, 자기몫을 다하고 있는 것은 이런 지지와 믿음이 있어 가능했으리라.

어머니의 남은 소원은

어머니는 수화를 모르고 아들, 며느리는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소통이 가능할까?

"가족끼리는 정해진 수화가 아니어도 나름의 방식이 다들 있어요. 아주 깊이있고 자세한 얘기는 나누지 못하지만, 서로 마음은 알죠."

강옥 통역사의 설명에 가만히 보고(듣고) 있던 일주씨가 나선다.

"어머니가 나 어렸을 때 자꾸 팔을 잡아 끌며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면서 키우던게 생각나요. 맛있는걸 골고루 먹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죠."

어머니는 딱 하나 아는 수화가 있다면서 주먹쥔 왼손 위에 오른손을 올려 돌리며 환하게 웃는다. "아들, 며느리에게 해주려고 배웠다"는 이 수화의 뜻은 "사랑해"라고 한다.

농아인들 사이에서는 물론, 비농아인들로부터도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아들내외, 모두 장성해 자리를 잡은 손녀들, 이제 걱정 한시름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 어머니에게 남은 소원이 무엇인지 물었다.

"쟤들 말이나 좀 했으면 좋겄어. '엄마' 소리 한 번만 들으면 오늘 죽어도 소원이 없겄는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 예산지역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예산군, #농아인, #이일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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