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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티구아라는 이름이 낯설지? 당신에게 과테말라의 작은 도시 안티구아가 얼마나 생소하게 느껴질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 아무리 지구본을 돌려봐도 나오지 않는 이름일 테니까. 당신만 그렇게 막막한 기분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과테말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 역시 라틴 아메리카에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으니까. 어쩌면 이 도시를 처음 찾은 체 게바라도 그랬을 거야.

김산환의 <안녕, 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 다음 여정
▲ 김산환의 <안녕, 체>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 다음 여정
ⓒ 꿈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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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의 삶을 선택하여 20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라 밖에서 머문 날이 1000일을 넘었다는 여행 작가 김산환의 책 <안녕, 체>는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몸을 던졌던 혁명의 길과 아직도 그의 발자취를 품고 있는 장소의 풍광, 그리고 문화와 역사를 더듬고 있는 책이다.

체 게바라가 1951년 12월, '포데로사'라고 이름 붙인 오토바이를 타고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를 돌아본 6개월간의 여정(이때의 여정은 2004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후, 1953년 12월, 본격적인 혁명의 대열에 몸을 던지고자 스며든 과테말라로부터 멕시코와 쿠바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체 게바라 루트'를 열면서 나아간다. 물론 그 길은 체 게바라와 함께 가는 길이고, 그 첫 여정이 '안티구아'이다.

다정한 편지글체로 마치 연인에게 소식을 전하듯 잔잔히 풀어놓는 저자의 글은 또 다른 묘미를 주었으며, 거부감 없이 저자의 행로를 따라 동화되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게다가 걸림 없이 유려한 문체로 풍광을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책도 여행자가 휴대하기 좋은 크기로 작게 만들어져서 들고 다니며 쉽게 펼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먼 이국땅의 낯섦을 편안함으로 바꾸어주었다.

마야의 나라 과테말라에서

저자는 안티구아를 참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고 했다. 체 게바라가 당시에 과테말라를 택한 이유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자유정권'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혁명가들의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테말라 정부가 워낙 많이 몰려드는 여행자들을 위해 도시 치안을 잘 유지하고 있어, 이런 이유로 여행자들은 안티구아를 '과테말라의 해방구'라 불렀다. 또한 이미 안티구아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0미터 높이로 군더더기 하나 없이 치솟은 아구아 화산도 그 자태를 뽐내고 있기에, 인구 3만의 작은 도시 안에 세계가 있다고 했다.

체 게바라는 과테말라에서 첫 번째 아내 일다를 만나게 되지만, 1954년 봄, 게바라가 들어간 지 몇 달 만에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자유정권은 무너지고, 게바라는 안티구아 가까이 있는 산악지대로 도피한다. 그곳에 '아티틀란 호수'가 있었다. 영국 작가 헉슬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극찬하였고, 게바라도 두 번이나 찾아 몸을 숨겼던 아티틀란 호수. 저자는 누구라도 이 호수를 만나면 마음의 짐을 다 풀어놓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했다. 크기도 매우 커서 백두산 천지의 열 배쯤 된다나. 이곳에서 게바라는 마야 문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야에 대한 게바라의 관심은 고고학이라는 학문적 영역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된 채,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신음하는 제 3세계 민중에 대한 당대의 문제였다. 아마도 마야에 대한 연민과 공감은 전 세계 민중들을 위해 투쟁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그 공감의 힘이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저자도 '코판'과 '티갈'로 가서 마야의 놀라운 유적지를 더듬으며 찬탄했다.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만난 멕시코에서

일 년 뒤에 게바라는 과테말라를 탈출하여 멕시코시티로 들어간다. 여기서 그는 사진 기자로 일하며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스물일곱 밖에 되지 않았다. 저자는 게바라가 머물렀던 멕시코시티로 가기 위해 카리브 해와 닿아있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를 따라, 툴룸, 칸쿤, 치첸잇사, 욱스말, 팔링케를 거쳐갔다. 팔링케는 게바라와 그의 아내가 신혼여행을 떠났던 곳이다.

저자는 특히 멕시코 최대의 휴양지 '칸쿤'에 오래 마음을 머물게 했다. 1960년대만 해도 한적한 어촌이었지만, 700km에 달하는 거대한 해변과 눈부신 백사장을 세계 제일의 휴양지로 개발하여, 오늘날 '호텔의 띠'가 무려 23km나 펼쳐져, 한 해 평균 200만 명이나 찾아오는 칸쿤에서 지난 2003년, 쌀 수입개방을 조인하는 제5차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열렸고, 이때 한국의 농민 이경해씨가 세계화와 쌀 개방 반대를 외치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칸쿤이 멕시코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듯이, 세계화 역시 농민들에게는 행복한 삶을 박탈당하는 부당한 현실이었으므로.

저자는 맥주 한 병을 고스란히 해변에 부으며, 이경해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는 멕시코시티를 거쳐 쿠바로 향해 간다.

이쯤에서 이 아름다운 문명과 작별을 고할까 해. 과테말라의 안티구아에서 시작해 마야를 찾아 나선 여정은 고고학 산책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일깨워준 시간이었어. 그것은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오락영화 속에 나오는, 잔뜩 뒤틀려버린 문명의 이야기와는 다른 거야. 제 3세계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진짜 이 땅의 역사를 마음껏 사색할 수 있게 나를 이끌어주었어. 이처럼 아름다운 문명이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고,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슴 아파. 오늘은 갈 길이 멀어. 체 게바라가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끝에 늘 그렇게 썼듯이, 마야의 순수한 영혼과 카리브 해의 바람이 담긴 포옹과 키스를 보내.(본문 168쪽)

'멕시코시티 레프블루카 광장 근처 엠파란 가(街) 49번지, 마리아 안토니오 산체스 곤잘레스라는 여인의 비좁은 아파트'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운명적으로 만난 곳이다. 이때부터 '에르네스토'라는 이름을 버리고 '체'가 되었다. '체'는 의사에서 혁명가로 다시 태어났다. 체는 1956년 11월, 쿠바 혁명을 위한 원정을 떠나기 전, 어머니에게 편지를 띄운다.

"저는 예수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해 싸울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 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는 방식대로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무장 투쟁을 포기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의 삶이 체 게바라에게는 무력해 보였을까. 오직 치열하게 싸우다 길 위에서 죽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고, 체는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총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다시 쿠바에서

시가를 문 체게바라
 시가를 문 체게바라
ⓒ 체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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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저자도 아바나에 도착했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우두머리 국가와 50년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저자는 그러나 냉철한 이성과 치밀한 논리만 있는 사회주의가 아닌 감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쿠바 사회주의를 발견한다.

쿠바인들은 열대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나무처럼 몸을 격렬하게 흔들고, 흔드는 것이 춤이 되는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 뜨거운 피는 하나의 틀 안에, 하나의 사상에 안주하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여행자의 거리 '아바나 비에하'를 걷고, 쿠바인들의 그 어떠한 친절도 모두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소개하며, 쿠바 시가의 구수한 향기, 그리고 푸른 바다와 하늘과 바람이 담긴 술 럼주, 슬픈 역사를 가진 사탕수수밭, 카리브 해로 지는 석양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과 50년간 미국의 경제 봉쇄에 맞서 살아남은 쿠바의 낙천주의도.

체 게바라는 쿠바 동부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였고, 조금씩 해방구를 넓혀 1958년 12월, 바티스타의 마지막 저지선 산타클라라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1959년 1월, 드디어 아바나에 입성한다. 그 해 6월, 체는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 후, 그는 모든 행복을 뒤로 한 채, 카스트로에게 편지를 남기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일 년 만에 그는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볼리비아에 들어가 아마존 강 밀림에서 게릴라전을 펼친다. 그로부터 다시 일 년 후인 1967년 10월, 그는 총상을 입었고, 볼리비아 장교와 미국 CIA 요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형된다. 죽은 체 게바라의 모습은 다른 길을 걷고자 했던 예수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저자는 산타클라라 시내에 세워진 체 게바라 동상과 오래도록 눈을 맞추었다. 삐딱하게 눌러쓴 베레모 아래 먼 곳을 응시하던 깊은 눈의 사내를 만난 건 대학 시절이었다고 고백했다. 젊음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상실의 시대가 왔다고 느꼈을 때,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그가 슬며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육체적인 삶은 볼리비아의 황량한 고원에서 끝났지만, 그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고.

그렇다. 아직도 그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위안은 아직도 혁명의 열정이 필요하다는 확신이며, 더 좋은 세상, 자본주의 너머, 인간이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체 게바라의 영혼이 필요하다는 말이며, 다시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는 전언이 아닌가.

<안녕, 체>를 읽기 전에 나는 마치 흩어진 천 조각들을 움켜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안녕, 체>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천 조각들을 이어 붙여 아름다운 조각보를 내 마음 속에 만들었다. 체 게바라의 열정적인 삶과 과테말라, 멕시코, 그리고 쿠바, 그 뜨거운 열대의 습기와 바람과 바다와 석양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피부색과 흥겨움과 혁명이 조각보를 이루어 출렁이듯 펼쳐짐을 느꼈다. 

시거를 한 대 피워 물었어. 쿠바인의 핏줄을 따라 흐르는 뜨거운 본능이 내 몸에서도 꿈틀거리게 하고 싶었어. 귓불을 핥는 부드러운 바람의 속삭임에 취해 다시 몸 속 깊은 곳으로 시거의 향기를 빨아들이다가 방파제에 가만히 몸을 뉘었어. 눈물 나게 파란 하늘이 내 눈 가득 들어와. 눈을 감았어. 방파제 벽을 때리는 파도 소리가 내 영혼까지 홀딱 적셔놓고는 저만치 멀어져 가. 어디선가 사내 하나가 걸어와. 금빛으로 빛나는 별을 단 베레모를 쓰고, 예수처럼 수염을 기른, 저 먼 이상을 향해 그윽한 눈길을 주고 있는 사내, 체 게바라. 내 영혼의 등대였던 그에게도 이젠, 작별을 고할 시간이야. 안녕, 체!

김산환의 <안녕, 체>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덧붙이는 글 | <안녕, 체>, 김산환, 꿈의지도, 2013년 4월 15일, 1만 4천 원



안녕, 체 -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 다음 여정

김산환 지음, 꿈의지도(2013)


태그:#체 게바라, #혁명,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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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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