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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9월 방송 예정인 'KBS어린이독서왕'(가칭) 프로그램이 "독서를 시험처럼 평가하고, 선정 도서만 읽게 해서 어린이 독서환경을 파괴하고 독서문화를 황폐화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하면서, 당장 '어린이 독서왕'을 폐지하라는 뜻을 밝혔다. 

성명서에는 겨레아동문학연구회, 교육희망네트워크, 어린이도서연구회, 어린이문화연대, 어린이책시민연대, 전국학교도서관담담교사모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같은 34개 단체가 참여했다.

KBS어린이독서왕 선정도서 목록 안내 갈무리
▲ 선정도서 마크 KBS어린이독서왕 선정도서 목록 안내 갈무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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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어린이독서왕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3-6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독서골든벨 대회로, 학년별 선정도서 20권씩 읽고 교내 독서 능력평가시험으로 예선을 치른 뒤 성적 우수자들이 결선 대회에 나가 독서왕을 뽑는다.

이와 관련,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KBS국어진흥원은 16일 누리집 초기화면에 '안내말씀'이라는 팝업창을 띄워 놓았다. 그 내용을 보면, '단순한 독서퀴즈가 아니라 역사 문화, 환경 등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체험과 탐구, 협동심 등을 아우르는 초등학생 대상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며, '선정 도서는 각 초등학교에서 치러지는 예심에서 독서유무를 판단하는 참고자료로만 활용될 예정이고 방송(본심)에서는 특정되지 않은 다양한 책의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유익하고 흥미가 있는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말만 그렇지 이는 일제고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교육부는 지난 3월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올해부터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실시하지 않겠다는 '2013 국정과제 실천계획'을 보고한 바 있다. 이로써 지난 2008년부터 전수평가로 실시하던 초등 학업성취도 평가는 시행 5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교육 경쟁력은 경쟁으로 키울 수 있다'던 일제고사가 실패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KBS는 독서골든벨 참가자격을 평가한다는 명목으로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를 되살리려고 한다. 이는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운영절차'를 보자.

KBS는 후원하는 시도교육청 교육감상을 학교생활기록부 수상실적으로 쓸 수 있을 것처럼 공지했지만,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교내상만 기재한다는 지침에 어긋난다. 이 내용은 현재 삭제하고 없다.
▲ 학교생활기록부 수상실적 기재 관련 공지사항(수정 전) KBS는 후원하는 시도교육청 교육감상을 학교생활기록부 수상실적으로 쓸 수 있을 것처럼 공지했지만,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교내상만 기재한다는 지침에 어긋난다. 이 내용은 현재 삭제하고 없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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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과 함께하는 KBS 어린이독서왕 평가시험이란?
KBS 어린이독서왕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할 대상자 선발을 위해 특별히 시행하는 독서골든벨 참가자격 평가시험으로 초등학교(3-6학년) 전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필기시험

2. 평가시험 대상 및 방법
  1) A그룹: 초등학교 3-4학년
  2) B그룹: 초등학교 5-6학년
  3) 학교별 시행: 1회 자체 시행

3. 시험 일시 및 장소
  1) 일시: 2013년 6월 5일(수) <가 형지문> / 6월 7일(금) <나 형지문> 중 택일
  2) 장소: 학교내 지정 장소에서 방과후 시행
  3)평가시험 문제 출제 및 배송, 평가 담당: KBS한국어진흥원(www.kbsas.com)

일제고사로 가장 고통을 겪은 건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일제고사로 더욱더 경쟁이 강화된 지난 5년 초등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은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야 했고 무한 경쟁 속에 고통을 호소했다.

일제고사의 폐해가 어디 그뿐이었는가. 시험 때마다 온갖 부정 의혹이 일었다. 2009년 2월, 언론과 정부가 '임실의 기적'이라 홍보한 임실군의 높은 평가결과가 교육청 장학사까지 개입해서 성적 조작을 했다. 청주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답을 알려준 사실이 경찰의 수사로 이어져 사실로 밝혀졌다.

4년 연속 학업성취도 1위를 자랑한 충북도교육청은 3년 전에도 한 초등학교 교감과 교사 3명의 부정행위가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수업 시간 평가 대비 예상문제를 풀거나 0교시, 야간강제학습, 시험 성적에 따라 간식을 차별적으로 주거나 상금과 상품권을 주는 일들도 알려졌다. 일제고사가 별다른 게 아니다. 한날 한시에 같은 평가지로 시험 보는 게 일제고사다.

KBS한국어진흥원 초기화면 팝업창
▲ 안내말씀 KBS한국어진흥원 초기화면 팝업창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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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현재 KBS한국어진흥원 누리집에서는, 학교서 치르는 예선뿐만 아니라 본선과 결선의 시상내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겠다는 내용이나 사업 후원자로 이름을 올린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울산, 경북, 충북도교육청 이름은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KBS어린이독서왕'이라는 메뉴 위에는 '교육청 후원'이라는 꾸밈말이 달려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회를 없애겠다는 발표는 미루고 있다. 이 대회를 열기 위해 학년별 20권씩 선정 도서들이 독서지도안과 예상문제집을 부록으로 실어 팔고 있다. 친절하게도 시중에서 책을 살 때 선정도서마크가 없는 것은 부록(독서지도안과 예상문제)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반드시 선정도서 마크가 있는지 살펴본 뒤에 사라고 해놓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는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법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하다'라든가 '꿈꾸다' 같은 동사들처럼, '읽다'는 명령문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도 우리 아이도 누구나 무엇이든 되고 싶고, 누구든 무엇이 되어간다. 그러나 그 '무엇'은 결코 우격다짐으로 될 수는 없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힐 요량으로 벌이는 반교육적 발상들은 모조리 없애야 한다. 책 읽기는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인 까닭이다. 책 읽기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그 효과가 일어난다. 책 읽는 주어가 어른이 아닌 우리 아이가 되어야 한다.


태그:#KBS한국어진흥원, #어린이독서왕, #다니엘페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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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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