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한 축산물 유통업자를 구속시키는 과정에서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유통'을 자백하도록 강요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17일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린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유통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선창규(54)씨는 "당시 수사를 맡았던 이아무개 검사가 구속영장에 기재된 대로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유통'을 자백하면 (세무조사를 무마시켜) 재산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다"며 "검사는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불법유통과 세무조사)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지만 제가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사가 '(미국산 쇠고기 불법유통건으로 들어가) 2~3년 만 고생하고 나오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검찰이 우리나라에는 도입되지 않은 '플리바기닝'(자백감형제도)을 시도했다는 주장이다. 플리바기닝은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대가로 검찰이 형량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기소하는 제도다.
선씨는 지난 2009년 4월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 함유 가능성이 있어 폐기 명령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둔갑시켜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가 지난 2012년 2월 1심에서 관련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관련기사 :
미국 쇠고기, 호주산 둔갑? "검찰 과잉수사") 이를 두고 검찰이 광우병 쇠고기 국면을 이용해 무리하게 '실적쌓기 수사'를 벌였다는 지적이 나왔다(관련기사 :
검찰, 왜 증거 없이 '미국산 쇠고기 유통업자' 구속했나?).
플리바기닝 시도하는 검사에 "재산 잃더라도 자백할 수 없어"28년간 축산물 유통 경력을 바탕으로 축산물 브랜드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던 선창규씨는 지난 2009년 2월 검찰(서울남부지검 형사5부)에 긴급 체포됐다.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 함유 가능성이 있어 폐기명령을 받은 미국산 LA갈비를 호주산으로 둔갑시켜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검찰은 구속된 선씨를 상대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에 적시된 범죄혐의('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유통')를 인정하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검찰이 소설을 쓴다면 천벌받는다"라며 완강하게 범죄혐의를 부인했다. 예상과 다르게 수사가 진행되자 검찰이 '세무조사' 카드를 꺼냈다.
선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수사를 지휘하던 이아무개 검사(현재 부장검사 재직중)는 "광우병 우려 쇠고기 유통사실을 자백하면 세무조사를 의뢰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플리바기닝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선씨는 "만약 내가 불법으로 재산을 모았다면 검사님이 가져 가라"며 "나는 광우병 우려 쇠고기를 유통시킨 사실이 없다"고 '거래'를 거부했다. 그는 당시 수사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대학생인 내 아들도 촛불집회에 관심이 많고, 광우병 쇠고기가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이지 않느냐. 그런데 내가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를 유통했다고 자백하면 어떻게 자식들에게 얼굴을 들 수 있겠나? 나는 자백할 수 없다."그러자 검찰은 당시 축산물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동생을 끌어들였다. 선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아무개 검사실에서 만난 동생은 그에게 이렇게 사정했다.
"검사가 '선씨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했고, 검찰이 계속 회사를 압수수색하고 있어 아주 힘들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게 생겼다. 검사가 나더러 형이 자백할 수 있도록 설득하라고 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해 달라."하지만 '동생을 통한 압박 전술'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검찰은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에게 1억 원을 건넸다고 진술하면 세무조사를 의뢰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선씨가 '축산물 브랜드 개발 컨설팅 약속 이행 보증금'으로 장수축협에 준 1억 원을 '뇌물'로 둔갑시키려고 한 것이다.
"자백하지 않는 대가로 120억 세금폭탄 맞았다"
선씨는 28년간의 축산물 유통 경력으로 쌓은 재산을 모두 잃더라도 하지 않은 '광우병 쇠고기 유통'이라는 범죄혐의만은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가혹한 세무조사뿐이었다.
검찰은 플리바기닝 시도가 실패하자 지난 2009년 3월 하순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 세무조사를 의뢰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탈세혐의가 있는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심층세무조사(특별세무조사)를 벌이는 조직이다.
선씨의 항소심 재판부가 서울지방국세청에 '사실조회 및 문서제출명령'을 요청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서울지방국세청에 "피고인에 대한 조세포탈혐의로 기소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선씨의 변호인은 "통상적인 의뢰문구와 달리 지극히 이례적인 내용이다"라고 지적했다.
검찰에서 세무조사를 요청한 이후 서울지방국세청은 선씨와 그의 가족들을 상대로 3개월간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같은 해 7월 선씨 부부와 동생, 처남 등을 조세포탈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서울지방국세청이 적시한 선씨 부부의 추징액은 무려 82억여 원에 이르렀다. 검찰도 지난 2010년 1월 조세포탈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 2012년 2월 1심 선고공판에서 선씨의 '광우병 의심 쇠고기 유통' 혐의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의 플리바기닝을 끝까지 거부한 덕분에 그가 바랐던 대로 '광우병 의심 쇠고기 유통업자'라는 불명예를 지지 않게 됐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선씨의 조세포탈혐의를 인정해 무려 40억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1심 판결이 항소심과 상고심(대법원)에까지 이어진다면 선씨는 무려 120억여 원을 물어야 한다.
선씨의 변호인은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당시 광우병 촛불정국으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강도높은 수사를 하면서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압수된 자료를 토대로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의뢰하겠다고 압박했다"며 "실제로 피고인이 끝내 혐의사실을 부인하자 국세청에 조세포탈범으로 수사를 의뢰해 국세청 조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특히 변호인은 서울지방국세청에 의뢰한 세무조사 관련자료들이 불법으로 압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세무조사를 의뢰하면서 검찰에서 교부한 압수목록이나 압수조서에도 기재된 바 없고, 압수수색영장의 범죄사실과 관련성이 없고, 압수할 물건에도 기재된 바 없는 장수축협 관련 다수의 문서를 편철했다"는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유통업자'라는 낙인이 지워지겠나?"이날 공판을 마치고 나온 선씨는 "이중장부를 작성하지도 않았고, 장부를 폐기하지도 않았다"며 "내야 할 세금이 있다면 당연히 내야겠지만 고의로 세금을 탈루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수축협과 한국까르푸가 맺은 계약의 특성상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라며 "광우병 의심 쇠고기를 유통했다는 것을 자백하지 않는 대가로 세금폭탄을 맞은 셈이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선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과 언론보도로 인해 내 이마에 찍힌 '광우병 쇠고기 유통업자'라는 낙인은 지워지지 않는다"라며 "언론에서 내 억울한 사연을 보도한다고 해도 그 낙인이 지워지겠는가?"라고 말했다(관련기사 :
"나는 왜 검사에게 '천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나?").
한편 <오마이뉴스>는 17일 이아무개 검사에게 당시 수사와 관련해 해명을 요청했지만 직원을 통해 "통화하지 않겠다"고 전해왔다. 그는 지난 2012년 2월 1심 판결이 난 이후에도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