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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에서 니키아 역의 김지영이 열연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에서 니키아 역의 김지영이 열연하고 있다.
ⓒ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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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이도령과 성춘향, 낙랑과 호동.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연인이다. 문학과 연극, 영화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는 더욱 아름답다. 서정적인 내러티브가 중시되는 발레도 예외는 아니다. 백조와 왕자, 저주에 걸린 공주와 왕자, 시골 처녀와 귀족 남자가 등장하는 낭만발레시대의 걸출한 작품들도 안타까운 사랑을 보여준다.

지난 4월 8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는 인도 무희 니키아와 용맹한 전사 솔로르, 솔로르와 정략결혼을 하게 될 감자티 공주, 니키아를 흠모한 제사랑 브라만의 얽히고 설킨 사랑 이야기다. 흔하디 흔한 줄거리에 인도의 이국적인 정취, 신분과 계급의 정서를 녹여내 극적인 묘미를 살렸다. 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배신, 복수의 대서사시 발레 '라 바야데르'는 올해 국립발레단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에서 브라만 역의 이영철과 니키아 역의 김지영이 작품의 한 장면을 시연 중이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에서 브라만 역의 이영철과 니키아 역의 김지영이 작품의 한 장면을 시연 중이다.
ⓒ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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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인물 묘사

'라 바야데르'는 1877년 고전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에 의해 탄생한 이후, 마린스키, 누레예프, 마카로바 등 다양한 버전의 안무로 전해졌다. 국립발레단이 선보인 이번 공연은 1991년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볼쇼이발레단을 위해 재해석한 안무를 수정한 것이다.

국내에서 다년간 접했던 유니버설발레단의 버전과는 몇몇 장면에서 차이가 있다. 기존 버전이 2막에 대형 코끼리를 등장시키거나 군무진의 화려한 안무를 강조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니키아와 솔로르 두 주역무용수들의 인물 묘사에 보다 치중했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에서 황금신상을 맡은 이영도가 높은 점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에서 황금신상을 맡은 이영도가 높은 점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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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서 춤으로 이어지는 명장면들의 향연

고대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반영하듯 등장인물의 신분을 춤과 마임을 통해 분명하게 묘사됐다. 장장 3막까지의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춤에 있어 명장면이 가득했다. 2막 솔로르와 감자티의 결혼식 장면은 발레 '백조의 호수'나 '돈키호테'를 연상시켰다. 2막 최고의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관계없이 화려한 춤을 선보이는 장면)은 황금신상의 춤이었다. 이영도는 특유의 높은 점프를 해내고는 흔들림 없이 금빛신상 특유의 폴드브라(팔의 연결동작)를 보여줬다.

여성 무용수들이 대거 등장한 물동이춤, 부채춤, 앵무새춤은 독특한 매력을 느끼지 못해 다소 아쉬웠다. 그 때문인지 중반에 등장하여 한껏 열기를 내뿜었던 북춤이 오히려 돋보였다. 열정적인 인디언 부족의 발 구름과 점프에 다소 정적이었던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3막의 '쉐이드'라 불리는 망령들의 춤은 단연 발레블랑('백색 발레'를 의미하는 발레작품의 장관)이었다. 푸른 조명 아래 흰색 튀튀를 입은 32명의 무용수가 아라베스크(한 쪽 다리를 뒤로 들어 올리는 동작)를 하며 내려오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숨죽이며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다만 무용수들이 내려오는 계단이 조금 더 높고 넓었다면, 천상에서 내려오는 몽환적인 느낌을 더욱 잘 살렸을 것이다. 3막의 군무는 전반적으로 발레 '백조의 호수'의 1막 호숫가 정경을 연상시켰다. 무용수들에게는 잔인하지만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수의 균형동작을 펼쳐야하는 군무들이 있어 더욱 빛나 보였다.

이날 니키아와 솔로르로 분한 김지영과 이동훈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오랜 기간의 파트너십이 빛을 발하였고, 특히 3막 파드되에서는 망상 속에 재회한 연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들의 춤은 니키아와 솔로르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인연을 의미하는 흰색의 긴 스카프를 들고 나왔을 때 절정에 다다랐다.

니키아가 스카프를 한 손으로 잡고 아라베스크 턴을 도는 동작이 다소 불안정했지만, 이후 춤이 끝나며 환상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함께 파드되를 추던 두 사람이 서로를 스치듯 지나가고, 솔로르가 무대를 헤치다가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은 여운을 깊게 남겼다.

그 밖에도 브라만 이영철과 감자티 이은원의 마임 연기가 훌륭했다. 특히 이은원은 점프와 턴 동작이 많은 감자티의 춤을 매우 능숙하게 소화해냈고, 당찬 매력의 공주에서 질투의 화신까지 다양한 표정 연기를 선보여 제 옷을 입은 듯했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에서 아름다운 점프를 보여주고 있는 감자티 역의 이은원과 솔로르 역의 이동훈.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프레스콜에서 아름다운 점프를 보여주고 있는 감자티 역의 이은원과 솔로르 역의 이동훈.
ⓒ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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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무대 연출과 의상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대 디자인과 배경이 좌우한다. 무대가 하나의 액자이고 무용수들의 움직임, 이미지 하나하나가 액자의 그림을 완성하는 셈이다. 이 점에서 인도의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는 형형색색의 무대막과 장치,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의상이 돋보였다.

이탈리아의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인 루이자 스피나텔리가 손수 만든 무대 작화막 7개, 200여 벌의 의상은 색상과 디자인에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으며 매우 섬세했다. 앞선 인터뷰에서 루이자 스피나텔리는 "작품의 무대에 사용되는 색은 의상에도 모두 포함돼 있다. 인도를 그려내는 작품인 만큼 인도에 관한 자료를 많이 모았고, 그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영감을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혼자라면 다소 수수할 것 같은 의상들이 무대 속에 어우러질 때, 무용수의 춤이 더욱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극적인 오케스트라 연주

볼쇼이극장 파벨 소로킨의 지휘 하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선사한 음악은 인물 간의 갈등과 격정적인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표출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는 관객이 있겠지만, 드라마가 있는 발레작품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크다. '라 바야데르'는 마임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니키아를 연모한 제사장 브라만과 솔로르와 결혼을 약속한 공주 감자티가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에서는 무용수들의 비장한 표정과 몸짓에 맞춘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연주가 빛을 발했다.

'라 바야데르'는 고전발레의 형식을 제대로 갖춘 작품이다. 특히, 이번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통해 인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관객들은 화려한 무대, 장치, 의상, 음악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 '볼거리'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발레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춤의 조화다. 사랑과 배신, 죽음을 앞둔 니키아의 처절한 몸짓이 처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 모든 '볼거리'는 '눈요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순정파 인도 무희 니키아가 죽기 직전까지 솔로르를 바라보며 추었던 마지막 춤은 관객들이 극장을 나가는 순간까지 아련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테이지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국립발레단, #라바야데르, #발레,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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