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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재발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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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이있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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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4대강살리기 사업'을 나는 '4대강 죽이기 사업'이라고 부른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콘크리트로 강을 가로막고, 둔치를 없애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는 '죽임'이다. 4대강에 만들어놓은 보와 자전거 도로에는 '흙'이 없다. 흙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겠는가?

흙은 생명이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흙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생명이 꿈틀거린다. 아무리 위대한 농부도 콘크리트에서는 생명을 만들 수 없지만 다섯 살배기 아이도 흙에 씨앗을 뿌리면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경험한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이다. MB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흙도 점점 생명을 잃어간다. 대량생산을 위해 화학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치기 때문이다. 왜 농약을 뿌릴까? 병충해 때문도 있지만, 주로 잡초 때문이다. 그런데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는 일반 농약보다 독성이 더 강하다. 농부들에게 잡초는 거의 '암적인 존재'다. 고추를 심고 김매기를 하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고추는 오간 데 없고 잡초만 무성하다.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암 덩어리를 제거하듯이 잡초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옥수수를 더 크게 자라게 한 쇠비름....

다른 사람 욕할 것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다. 올해도 농사를 짓는다. 아마 두 눈을 부릅뜨고 김매기에 나설 것이다. 새순 옆에 난 잡초를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뽑을 것이다. 그런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잡초가 흙을 흙답게,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고추와 참깨와 콩과 옥수수의 동무란다. 

조지프 코캐너 교수는 1950년 쓴 <잡초의 재발견(Weeds: Guardians of The Soil)>(우물이있는집)에서 농부 솔 벤슨의 농장에서 경험한 일이 평생 잡초를 연구하게 된 일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옥수수가 가장 잘 자라는 그의 밭에서 제초 작업을 하면서 조금의 돈을 받았다. 옥수수는 나무처럼 크게 자라 있었고, 맑은 아침 날씨는 하루 종일 찌는 듯한 더위를 예고 하고 있었다. 발 아래 널쩍한 이 밭에는 쇠비름이 빽빽했다. 당시 쇠비름은 캔자스 지역에 옥수수 밭에서 요즘보다 흔히 볼 수 있는 잡초였다.(본문에서)

옥수수와 잡초 쇠비름이 동무였던 셈이다. 하지만 농부들은 "성능 좋은 경운기와 한 방에 죽여 없애고 있"었다. 쇠비름을 한 방에 제거해버리자 옥수수는 더 잘 자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제초제를 쳐야 했고, 더 많은 화학 비료를 뿌려야 했다. 쇠비름은 옥수수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코캐너 교수는 쇠비름이 있는 곳에는 옥수수가 나무처럼 크게 자랐고, 없는 곳에는 옥수수가 잘 자라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사람들은 쇠비름을 여름에 끓는 물에 데쳐 놓았다가 겨울에 나물로 무쳐 먹고 한방에서는 종창과 벌레와 뱀에 물렸을 때 해독제로 쓴다지만, 농부들에게는 귀찮은 존재다. 하지만 쇠비름이 옥수수 뿌리를 더 깊게 잘 내리게 한다니 놀랍다. 농사꾼은 아니지만, 해마다 농사를 짓는 나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잡초, 잠기 몸을 불살라...죽은 땅에 무기물 공급

고추와 옥수수, 참깨, 콩 등 많은 곡물과 채소들은 잡초보다 생명력이 약하다. 그러므로 농부들은 잡초가 작물들 영양분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한 뿌리를 가진 잡초는 깊이 뿌리를 내려 죽어가고 있는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지금 땅은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거의 생명을 잃었다. 그런데 깊이 뿌리를 내린 잡초는 식물에 필요한 무기물을 저장한다. 이를 불태우면 땅은 무기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잡초는 마지막까지 자기를 불살라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동무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잡초는 강건한 뿌리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더 많은 무기물을 얻기 위해 더 낮은 토양층으로 뿌리를 뻗는다. 식물에게 필요한 무기물은 항상 아래쪽에서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식가의 특성을 지닌 존재로서 굉장히 많은 무기물을 흡수한 잡초의 뿌리는 그것을 줄기나 잎으로 보내 저장한다. 잡초를 채소밭에서 태우면 재가 된 무기물은 그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는데, 한창 자라나는 채소는 그것을 쉽게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이러저러한 행태로 살면서 잡초는 토양의 충실한 파수꾼이 된다. 농부가 잡초를 지혜롭게 이용할 때 결과적으로 잡초는 농부의 친구가 된다.(본문에서)

지난해 6월 28일 향집 앞 논은 비가 오지 않아 먼지만 날리고 있다. 그런데 잡초는 파릇파릇 잘 잘라고 있다.
 지난해 6월 28일 향집 앞 논은 비가 오지 않아 먼지만 날리고 있다. 그런데 잡초는 파릇파릇 잘 잘라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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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잡초를 지혜롭게 이용할 때 결과적으로 잡초는 농부의 친구가 된다"는 말에 '뜨끔'하다. 흙은 생명이라고 그토록 말했던 사람이 진짜 생명을 주는 잡초를 뽑아버리기만 했다. 지난해 가뭄 때문에 굉장히 고생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논바닥은 쩍쩍 갈라지고, 먼지까지 났다. MB의 최대 업적인 4대강은 '녹조라떼'가 돼버렸다. 그런데 코캐너 교수는 잡초가 수분을 공급해 농작물 수명을 늘려준다고 말한다.

잡초 뿌리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수분 약탈자가 아니라는 걸 농부들이나 정원사들에게 인식시키기는 쉬운 노릇이 아니다. 가뭄이 닥쳐 농작물이 말랐을 때 쇠비름, 비름, 까마중, 돼지풀 등이 정원이나 밭에서 발견된다면, 농작물의 가뭄 피해에 대하여 이들 잡초들은 미움받기를 면할 길이 없다. 아주 빽빽하게만 자라지 않는다면 잡초들은 스스로 낮은 토양층에서 양분을 흡수한다. 만약 하층토가 없다면 그들은 자신의 뿌리 바깥 면에 모세관 현상을 일으켜 물의 상승운동을 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래쪽에 저장되어 있는 물의 양이 아주 적다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위로 이동하는 수분은 표층토의 농작물 뿌리가 즉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설사 농작물이 말라 죽어간다 해도 잡초들은 최소한 그 농작물의 수명을 늘렸을 것이다.(본문에서)

잡초는 '약탈자'가 아니라 농작물 수명을 늘려 줘

가뭄이 극에 달할 때인 지난해 6월 28일 고향집 앞 먼지 날리는 논바닥을 보니 잡초는 파릇파릇 잘 자라고 있었다. 농부들은 잡초는 잘 자라는 데 벼는 심을 수 없다고 타박했지만, 아니었다. 잡초가 깊은 곳에 있는 수분을 흡수해 표층토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농작물에 수분을 공급해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주는 것이다.

즉, 잡초가 없으면 농작물은 더 빨리 말라죽는 것이다. 잡초가 농작물의 '생명동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고마운 잡초가 어디 있나. 조금 과하게 말하면, 4대강 사업보다 잡초가 가뭄을 더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목말라 타들어가는 농작물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잡초는 마지막 자기 몸을 사르면서도 농작물을 위해 자기를 바친다. 코캐너 교수는 토양의 풍부한 영양물질을 모으고 저장하는 능력은 잡초 뿌리가 최고라고 단언한다.

농부들과 원예사들이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잡초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만일 잡초가 없다면 많은 영양물질은 토양계로부터 씻겨 내려가거나 떨어져나가서 어찌 됐든 없어질 것이다. 토양의 풍부한 영양물질을 모으고 저장하는 능력에 있어서 잡초의 뿌리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잡초가 땅에 묻혀 부패될 때 영양물질들은 새로운 농작물을 위하여 표층토로 방출된다. 그러나 잡초가 없는 벌거벗은 땅은 황폐해진다.(본문에서)

잡초 없는 땅은 죽음...그리고 잡초는 먹을거리

어떤가? 잡초 있는 땅은 생명의 땅이고, 잡초 없는 땅은 죽은 땅이다. 이런 잡초를 뽑아버릴 것인가? 그동안 우리는, 아니 나는 잡초를 제거했다. 스스로 땅을 죽인 것이다. 48년 습성을 하루아침에 고치기 힘들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잡초와 더불어 살아가보기로 하겠다. 농작물만 먹을거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잡초도 먹을거리다. 이제 잡초는 뽑아버릴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갈 동무다.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잡초는 드물어요.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거의 모든 잡초를 먹었지요. 맛이 좋지 않은 것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웠어요. 대부분 맛이 있더군요."

내 대답은 인디언 존의 말처럼 이러하였다.

"모든 야생식물은 맛있어요. 인디언은 오랫동안 야생식물을 먹고 살아왔지요."(본문에서)

덧붙이는 글 | <잡초의 재발견> 조지프 코캐너 씀, 구자옥 옮김, 우물이있는집 펴냄, 2013년 4월, 253쪽, 1만4000원



잡초의 재발견

조지프 코캐너 지음, 구자옥 옮김, 우물이있는집(2013)


태그:#잡초, #흙, #농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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