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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각지에 친구를 만드는 것", "시골을 좀 더 매력적으로!", "간벌작업으로 버려지는 나무를 활용해서 다양한 것을 만들고 싶어요. 모교의 공업교사로 돌아가서 손으로 뭔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학생들과 함께 그런 것을 가르치고 함께 하고 싶어요.", "발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와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행복한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나가사키 대학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나가사키대학의 학생들. 왼쪽부터 마에다군, 이와모토군, 후지타양.
나가사키 대학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나가사키대학의 학생들. 왼쪽부터 마에다군, 이와모토군, 후지타양. ⓒ 전은옥

지난 4월초, 나가사키 대학에서 만난 후지타(보건학·4년), 마에다(기계·4년), 이와모토(도시계획, 대학원 입학)씨 등에게 꿈이 뭐냐 물었더니 가지각색의 대답이 나왔다. 취직과 직업에 관한 답변이 아니라 좀더 '꿈스러운' 대답이었다.

특별히 의식이 있고, 뭔가 대단한 것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아니라 평범한 대학생들의 문화와 꿈과 고민, 정치와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다며 가능한 한 평범한 학생들을 소개시켜 달라고 나가사키 대학의 지인에게 부탁했던 터였다. 젊은 대학생들을 인터뷰한다는 생각 때문에 잔뜩 긴장을 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댔는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가 오가는 사이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얼굴에 에너지와 웃음이 넘치며 할 말이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는 이 학생들 덕분에 인터뷰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고참 선배와 후배가 함께 수다를 떠는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후지타와 이와모토는 동일본 대지진 재해 지원단체인 '나가사키 Sip-S'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었고, 그외에도 각자 록 음악 동아리, 자전거 수리와 환경 관련한 동아리 등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유일한 여학생인 후지타는 얼마 전까지 후쿠시마 원전사고 재해 이후 방사선 피폭의 위험에 놓인 지역의 어린이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서 돌봐주는 '보양 캠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였다고 한다.

'보양 캠프'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오염이 광범위한 지역에 미쳤지만 고향을 떠나 피난을 갈 수 없는 어린이들을 단 기간이라도 안전한 곳에서 먹고 마시고 놀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시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마에다도 대지진 후, 모금활동을 펼쳐 동북대학생협으로 후원금을 보냈다고 한다.

이번에 막 대학원에 입학한 이와모토는 '3.11과 후쿠시마'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방송을 통해 본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예정되어 있던 독일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사고가 난 일본보다 독일에서 탈원전시위가 더 성대하게 열리고 많은 군중이 운집하며, 방송과 신문에서도 원전과 관련한 보도가 더 활발한 데 큰 부끄러움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히로세 다카시와 후지타 유코 등이 쓴 핵발전과 관련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고, 강연회에도 참석했다. 미야기현과 이시노마키 피해 현장에 사흘 동안 직접 방문하여 주민의견 청취 등의 자원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고민하면서 자연에너지의 중요성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고, 본래 환경과학부 전공이었지만 이 공부가 더 하고 싶어졌어요. 3.11은 제 삶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제 삶의 방향과 꿈이 확실해졌어요. '발전신화'의 상징이었던 원전의 사고와 재앙으로 인해 이제 발전신화는 붕괴했습니다. 3.11은 일본 사회의 터닝포인트라고 봐요. 우리의 삶과 이 사회를 다시 생각하고 바꿔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3.11과 후쿠시마 방사능 재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 이와모토와는 또 다른 면에서, 마에다는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친구였다. 자전거 수리에서부터 컴퓨터사무, 전단지 배포, 책 편집과 선거관리위원회 등지에서 닥치는 대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봤다는 마에다는 매우 익살스러운 표정이 살아있는 청년이었다. 본인이 바다에서 카약을 하는 사진을 담은 명함에는 "시골의 매력을 끌어 낸다"는 자신의 삶의 슬로건과 함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아이디와 주소, 연락처 및 다양한 이력이 적혀 있었다.

 입학식이 열린 지난 4월 2일 나가사키대학 캠퍼스. 오른편으로 동아리 홍보 게시물들이 줄지어 있다.
입학식이 열린 지난 4월 2일 나가사키대학 캠퍼스. 오른편으로 동아리 홍보 게시물들이 줄지어 있다. ⓒ 전은옥

사세보 시골 출신인 마에다는 부모님이 농사를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트랙터 운전도 해봤고, 자전거 수리에 카약, 온갖 물건을 만들고 고치고 재활용하는 일부터 농사일까지 못하는 게 없다며, 자신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도 다른 학생 그룹을 만나기 위해 대학에 들렀다가 학생 쉼터 앞에서 마주쳤는데, 날 보자마자 자전거 잠금 열쇠를 사달라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난 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이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는 청년이었다.

이런 재미나면서도 생각이 깊은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원폭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보기로 했다. 나가사키 출신인 후지타와 각각 사세보, 오이타에서 온 마에다, 이와모토의 경험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아온 후지타는 원폭이 나가사키의 사람들에게는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중학교 때까지는 의무교육을 통해 원폭에 대해 교육받았는데, 나가사키를 벗어나고 규슈 지역을 벗어나면 다른 지역에서는 원폭과 관련한 평화교육도 실시되지 않고, 특히 나가사키에서는 8월 9일이 원폭의 날이라서 여름방학 기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반드시 학교에 등교해 기념식에 참석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는데,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놀랐다고 한다.

사세보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마에다는 수학여행 때 나가사키에 와 봤다면서, 그때 평화공원 견학과 피폭자의 증언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학여행이 아니면, 사실 다른 지역의 학생들에게는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원폭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거의 없어요. 나가사키 대학생이면서도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도 많은 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후지타가 "원폭이 평화공원의 평화기념상 위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거들었다. 실제로 나가사키의 원폭 낙하 중심지는 평화공원 자리가 아니라, 언덕 아래이며 그곳에 별도로 '원폭낙하중심비'가 있다. 그만큼 원폭 평화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학생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교과서에서는 원자폭탄의 이름인 '리틀보이'니 '팻맨'이니 하는, 알아봤자 별 소용도 없는 "쓸데없는 것만 가르친다"는 게 마에다의 생각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3.11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부터 나가사키의 원폭 이야기, 그리고 일본의 교육과 정치, 젊은이들의 투표, 그리고 각자의 꿈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끊임없이 펼쳐지고 이어졌다.

작년 겨울 총선거를 통해 신임 총리가 된 아베 신조와 그 내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에서부터 일본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침략 부정, 야스쿠니 신사참배 옹호 등 최근의 극단적인 우익적 행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아베 총리는 과거부터 이미 대표적인 우익으로서 과거사 반성과 사죄를 부정하고 일본의 재무장 등을 추구해온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바였다.  

아베 신조뿐 아니라, 역대 일본의 총리들은 전범 혹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그것으로 이익을 보았던 기업과 가문의 후손인 경우가 많은 걸 아느냐고 물었더니, 일본에는 정치인의 아들이 또 정치인이 되는 경우가 워낙 많기도 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느냐 이런 것에 사람들은 별로 관심도 없고 아예 그 사실 자체를 모를 거라고 했다.

마에다는 일본에는 정당이 너무 많아서 공약을 일일이 알기도 어렵다고 했다. 후지타는 정치권에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투표권이 있어도 투표를 안 하다가, 작년 총선 때 처음으로 투표했죠.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어요.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크다보니, 정부를 바꾸기보다는 내 주변부터 바꿔야겠다, 혹은 내 주변만 바꾸면 된다는 식으로 체념하고 정치에는 무관심하게 되어 버려요. 하지만 어른들이 요즘 젊은 세대에 대해, 일본의 장래가 걱정된다느니 말하는데, 제 주변에는 너무나 괜찮은 또래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일본의 미래를 믿고 기대해요."

후지타는 현 집권 세력에 대해서도 불신하지만, 다른 정치인들도 믿음이 가는 사람이 없고, 자신이 야당일 때는 제법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자신은 다른 정치를 펼칠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집권을 해도 다르지 않더라는 냉소적인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후지타의 말에 이와모토는 "문제는 기성세력, 기득권 세력이에요. 저도 지금의 젊은 세대를 믿어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있었지만, 대지진 후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을 보면서 왜 정치가 중요한 지를 절실히 알게 됐습니다. 일본의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고, 사회를 바꾸고자 했을 때 그 수단으로서 투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40~50년 후에, 지금과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서 우리의 아이들이 일본이 참 좋다고 말하면, 부모세대가 해온 일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라고 자신의 꿈에 대해서 수줍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가사키의 좋은 점, 맛있는 음식, 자랑거리를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나가사키는 생선이 맛있으니 생선요리를 먹으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산과 항구,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 애수어린 분위기와 풍부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나가사키는 정말 멋진 도시라고 마음껏 자랑을 늘어놓는다.

정치와 투표, 선거에 대한 부분을 좀더 깊이 파고들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 대화였지만,

공부도, 아르바이트도, 사회 활동도, 취미생활도, 연애도 열심히 즐기고 있는 에너지 넘치는 청년들을 만나고 보니, 역시 문제는 지금의 일본 사회를 만들어온(이것은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성세력, 기득권 세력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후지타, 마에다, 이와모토! 너무나 명랑했던 동생들. 앞으로 세상에서 부딪혀갈 현실의 벽이 결코 만만치만은 않겠지만, 잘 헤쳐 나갈 줄 믿는다. 우리 또 만나자. 다음에 만나면 꼭 맛있는 것 사줄게. 서울에 놀러오면 꼭 연락하렴. 그리고 정치에 실망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정치도 사회도 그리고 내 주변도 다함께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고 끝까지 웃으면서 해 나가주길! 투표는 꼬박꼬박 해라. 건투를 빈다.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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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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