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여럿이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시골에서 만들어 먹었다던 '술' 이야기를 나눴다. '고구마 술' 말이다.
그땐 버글버글 발효되는 고구마술이 그렇게도 맛날 수가 없었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배고픔을 달래주기에 그것보다 더 좋은 것도 없지 싶었다.
또 자주 만들어 먹었던 게 '조청'과 '식혜'였지 싶다. 울 어머니는 겨울과 봄철에 쑥떡을 맛나게 찍어먹으라며 조청을 만들어 줬고, 식혜도 만들어 줬다.
요즘에야 설탕이 모든 음식물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때 먹은 조청 맛을 어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식혜도 다르지 않다.
장영란이 글을 쓰고 그 남편 김광화씨가 사진을 찍어 펴낸 <숨 쉬는 양념·밥상>은 그런 옛 추억들을 되살려 놓는다. 물론 쉽게 편안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자연양념과 제철밥이 부제목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오래된 옛날 음식들을 새롭게 살려 놓은 기분이 든다.
"콩 100%라 광고하는 이 양조간장에 들어가는 콩은 탈지대두다. 탈지대두가 뭘까? 콩에 핵산을 넣어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다. 이 탈지대두에 종균을 넣어 발효시킨다. 이렇게 콩 찌꺼기로 만든 간장이 맛이 있을까? 맛내기를 위해 이것저것 넣었다고 보면 된다."(63쪽)이는 시판 왜간장 중 하나인 양조간장에 관한 이야기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왜간장은 산분해간장과 양조간장, 그리고 진간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화학조미료가 자동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진정한 간장 맛은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 맛이 일품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시골에서 받은 조선간장이 생각난다. 형과 함께 고추비늘 10두렁을 넘게 씌워주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받은 게 그것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안쓰러웠던지 차비와 함께 플라스틱 병에 든 조선간장 2병을 꺼내 줬다. 당신 자신이 먹어봤는데 여태껏 먹은 간장 중에 최고라고 하시면서.
이 책에는 조선간장을 담그는 법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우리 어머니 표 조선간장을 충분히 되살릴 방도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 책을 '가보(家寶)' 보관해 두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쉽게 시작해 양념으로 쓸 수 있는 양파효소차 담그는 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음료료 마시는 효소차는 성공과 실패가 눈에 두드러지지만 양념으로 쓰는 건 어지간하면 통과다. 햇양파가 흔하디흔한 초여름에 한 번 도전해 보시기를!"(113쪽)양파효소차에 관한 이야기다. 효소차에 관한 내용을 읽자니 얼마 전에 읽은 박국문의 <암,효소로 풀다>가 떠올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효소로 암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다만 그 책에는 효소차를 만드는 방법이 없으니 이 책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 수 있다. 더욱이 양파나 포도나 감으로 효소차를 만들 때, 예전의 배보자기를 사용하는 것까지 나와 있으니, 정말로 전통적인 방법을 전수해 주고 있는 셈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끝머리에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열두 달 제철밥상이 그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먹을거리들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요즘 같은 4월에 먹어야 할 음식으로는 '쑥버무리, 쑥된장국, 쑥대파맑은국, 쑥밥, 쑥비지, 쑥달걀찜, 미나리, 달래, 돌나물, 두릅, 민들레, 고사리, 취, 상추, 부추, 시금치, 머위, 달래, 생표고버섯구이, 고사리조기탕, 진달래주먹밥, 개복숭아꽃수수부꾸미 등이라 한다.
이 책은 두고 두고 곱씹어 보고, 또 하나하나 배워야 할 책임에 틀림 없다. 우리 옛 전통 음식 만드는 법들이 이 책 속에 녹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