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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을 치뜨고 입술을 깨물며 욕설임이 분명한 한마디의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아무도 듣지 못했고 아무도 보지 못한 찰나의 표정과 찰나의 말이었다. 우연히도 그녀의 맞은 편에서 그녀를 훔쳐 본 나는 그만 오금이 저리도록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얼굴과 입술에서 상처 입은 자존심과 분노, 오기가 강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날 밤 숙소에서 빨래를 하다가 가루 비누인줄 알고 잘못 건드린 잿물 가루에 손가락을 데였을 때처럼,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민박집의 그녀, 정체는?

로마의 한인 민박집에서 일하는 그녀를 두고 여행자들은 이런 저런 말을 아껴가며 하곤 했다. 저 사람은 조선족일까. 아니면 중국인일까. 벌써 여행도 5일째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첫 숙소는 로마 제일의 큰 역인 테르미니에서 가까운 한인 민박이었다. 이곳에서 하루 종일 한식 음식을 차리고 바닥을 쓸고 닦고, 빨래를 하고 또 쓰레기통을 비우는 그녀는 많이 봐도 20대 중반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젊은 나이였다. 아무렇게나 묶어 맨 머리와 짱뚱한 바지, 두 눈 밑으로 기미가 몹시 심하게 쓸고 간 얼굴은 그녀의 삶이 고달프다는 것을 암시하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정체는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탈북자 아닐까요? 말을 거의 안 하는데."
"중국 사람 같아요. 전화하는 걸 들었는데 중국어로 말하던데요."
"그냥 조선족인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그렇게 본 것 같은데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조선족이 많다구요."

그녀가 조선족인지, 중국인인지, 아니면 탈북자인지 그것은 그리 오래 지속된 화젯거리는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음식 솜씨가 무척 좋아 아침저녁으로 제공되는 한식에 누구나 만족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불고기와 보쌈, 김치와 숙주나물 등 그녀의 손이 닿은 음식은 마법이라도 걸어 놓은 것처럼 맛깔스러웠다. 그녀의 출신을 궁금해하며 어떻게 이런 머나먼 유럽의 한 구석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것을 의아해하던 사람들의 시선과 호기심도 금세 잠잠해지기 마련이었고 그저 그녀가 새벽부터 마련해 놓은 이런저런 음식들로 든든히 배를 채우며 여행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민박집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가톨릭의 본거지 답게 거리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 혹은 수도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베네치아 광장 앞의 멋쟁이 신부님 가톨릭의 본거지 답게 거리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 혹은 수도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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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가 눈꼬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 표정을 지으며 여행자들을 노려본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싱크대까지 가져다주기로 한 그릇들을 전혀 치우지 않고 자리를 뜬 일부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그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과일을 깎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그 음식물 찌꺼기와 휴지들과 그릇들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로 각자 자신의 여행지를 향해 미련없이 몸을 움직인 일단의 한국 사람들 때문인 것이다.

로마의 문명이 어떻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전시회가 어떻고, 스페인 광장의 명품 거리에서 프라다가 세일을 많이 한다는 둥 그러한 이야기들은 당연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식탁 위에서 오고가는 우아한 이야기들만큼이나, 민박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먹은 접시들이나 제대로 치우라고, 이 사람들아!"

"한 번이라도 수고했다거나, 아니면 정말 맛있게 먹었다거나, 그런 말이라도 좀 해라!"

이런 말들이 그녀의 꽉 깨문 아랫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일 년에 한 번, 2주의 파노라마

일 년에 단 한 번, 2주 동안 생업을 팽개치고 여행을 시작한 것도 어언 10년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 아이를 맡기고 여행을 떠나는 우리 부부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아이가 불쌍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시댁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가득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돈 모을 줄을 모른다는 둥, 너희가 지금 그렇게 돈을 쓸 때냐는 둥  사람들의 빈정거림이 섞인 우려도 귀가 따갑게 들었다.

일부러 무시하긴 했지만, 사실 2주 동안의 여행을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손실도 항상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일 년의 단 2주, 그 여행의 흔적이 10여년을 지났다. 이제 주위에서도 아무말 하지 않게 되었고, 아이도 부모의 여행길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우리들에게 인생의 몇 안 되는 진정한 즐거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참으로, 작은 것이지만 오랜 시간과 투쟁을 통해 얻어낸 성과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여행지가 유럽이 되면서부터 우리의 주머니는 한층 빈곤해졌다. 처음 유럽에 나온 작년과 마찬가지로, 지금 여행용 가방의 하나를 몽땅 차지하고 있는 것은 먹거리들이다. 비싼 유럽의 물가에서 한 끼만 사먹어도 3~4만 원은 그냥 나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잠을 자면서 아침과 저녁 끼니까지 해결되는 한인 민박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맛깔스러운 한식을 차려내는 그녀의 존재는 말할 수 없이 귀중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음식은 콜로세움만큼이나 소중하고 포로 로마노를 더욱 빛나게 했으며 여행의 행복을 몇 곱절로 키워주는 생명수나 다름없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찬탄한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로마에서의 며칠은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원래 사람 많은 곳을 나는 질색한다. 그러나 로마는 어디를 가나 인산인해였다. 그 엄청난 인파, 관광객들. 트레비 분수에서는 단지 몇 발자국을 떼는 것이 힘들 지경이었고,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파도에 휩쓸려 실려가는 형편이었다. 잠시의 정지시간도 가지기 힘들었다. 베드로 대성당의 광장을 빠져나올 때, 그 성당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경탄하면서도, 광장을 가득 메우다시피 한 그 사람들 사이를 얼른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읽고 온 책들과 인터넷의 정보들도 만만치 않았다. 로마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책들도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러한 지식이 이제는 여행의 즐거움을 이전만큼 배가시켜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화려한 유적 뒤의 조그만 동네 성당들이 편안해지고 시끌벅적한 관광지의 소음보다 한적한 뒷골목의 돌길이라던가, 낡고 오래된 가게에서 파는 한 잔의 와인이 더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런 오래된 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충만해짐을 느낄 수 있다.
▲ 아름다운 로마의 뒷골목들 이런 오래된 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충만해짐을 느낄 수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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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정, 그녀를 행복하게 하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숙소의 밥시간이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그녀의 화가 난 표정을 보지 않도록 세심히 주의하여 내가 먹은 그릇을 치움은 물론이고 새로 온 사람들에게도 싱크대까지 그릇을 날라야 한다고 당부를 해 두었다. 언제부터인가,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그 마음 자체가 나의 유치한 허세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쓸데없는 동정심이라고 여기며 무시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그런 마음은 허세도 아니고 동정심도 아니었다. 고마운 밥을 차려주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일 뿐이다.

그녀는 무엇에 행복해 할까. 저녁시간, 그녀의 새로운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녀는 식당 한 켠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로마에 온 지난 며칠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넉넉하고 다정한, 수줍기까지 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의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행복에 겨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로마를 떠나오는 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새벽부터 아침 밥상을 차리고 마룻바닥을 닦느라 분주한 와중에서도, 그녀는 틈만 나면 핸드폰을 켜고 이어폰을 꽃은 채 한국 드라마에 온 정신을 팔고 있었다. 힐끗 보니 <장옥정 사랑에 살다> 였다. 자신의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중의 사랑, 지독히도 운명적인 그 사랑의 꿈이 그녀의 삶에 위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를 보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마음이 애잔해진다.

동네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살아있는 성스러움의 생생함을 접할 수 있다.
▲ 쉽게 접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작은 성당들 동네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살아있는 성스러움의 생생함을 접할 수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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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디아스포라, 혹은 세계화

로마 테르미니역 근처에는 중국인과 흑인들이 많이 산다. 늦은 밤 시간이 되면 테르미니 역의 구석자리는 온통 노숙자들의 차지다. 그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지. 어떤 이야기가 그들의 삶에 작은 위안을 주고 있을지.

금요일이다. 로마를 떠나 피렌체에 도착했다. 역시 한인 민박이다. 미리 예약을 했음에도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찾았다. 결국 민박집의 종업원이 우리를 찾아 나왔다. 나의 짐을 들어주는 젊은 남자의 말투, 틀림없는 조선족이다. 아니면 탈북자일까? 로마에서 시작된 물음이 피렌체에서도 이어진다. 어쩌다 이 먼 곳까지 왔느냐고.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냐고.

잠시의 만남과 인연,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삶이 교차하는 곳. 남한의 여행자들과 조선족, 혹은 탈북자일지도 모를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젖먹이를 안고 구걸하는 동유럽의 집시들과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중국인들, 또 한편에서는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 로마와 피렌체는 이 세상의 축소판과 같았다. 그 수많은 인생들이 피워 올리는 거대한 삶의 용광로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현재 여행중입니다. 여행중에 쓴 글을 약 5-7편 정도 연재로 쓸 생각입니다.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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