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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의 싸움은 거대한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옳지 않은 인간, 돼먹지 못한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일상적인 일과의 싸움이었어요. - <환상> 서문 가운데

박종태씨가 낸 자서전 <환상>
 박종태씨가 낸 자서전 <환상>
ⓒ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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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삼성전자 노동자 박종태씨의 이야기를 담은 책 <환상> 출판기념회 자리가 열렸다. 박종태씨는 1987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2007년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사원을 위해 성심성의껏 일을 한 것이 도리어 회사 눈 밖에 나게 됐고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소신을 사내 인트라넷 '싱글'에 올렸다가(그것도 15분 만에 삭제당했지만) 2010년 해고되었다.

해고되기 전 이미 부당 해외발령, 왕따, 빈 책상 근무 등 모진 수모를 겪으며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얻고 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해고된 지 3년째. 삼성은 그가 하루빨리 지치기를, 심한 정신적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하기를 기대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자신이 23년간 경험해온 것, 바로 삼성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세상 사람들이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세련되고 스마트한 이미지에 가려진 삼성 노동권의 현주소를 세밀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출판기념회 자리는 사뭇 숙연했다. 책 출간을 축하한다는 말 대신, 연대사를 하고 힘을 합치자는 말이 오갔다. 강요된 순종을 거부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진짜 노동자로 살고자 했던 그의 행위들은 삼성 안에서 불온시되었고 생존권을 박탈당했기에, 진정한 축하는 삼성의 노동권이 바로 세워지는 날, 박종태씨가 보란 듯이 복직을 하는 날에야 할 수 있는 말이기에, 사람들은 축하한다는 말을 아꼈다. 박종태씨는 현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에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역사적인 노동조합,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2011년 7월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서 삼성노조 조장희 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백승진 사무국장(가운데)이 삼성노동조합 설립신고을 한 뒤 접수증을 들어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2011년 7월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서 삼성노조 조장희 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백승진 사무국장(가운데)이 삼성노동조합 설립신고을 한 뒤 접수증을 들어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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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에서 조리사 등으로 일하다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한 4명의 노동자도 '삼성지회'의 든든한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또한 '무노조왕국'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겪은 풍파는 남다르다.

이들은 에버랜드의 환상적 축제와는 동떨어진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일터를 바꾸고자 2008년 1월부터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회사에서는 곧장 이런 움직임을 눈치 채고 갖가지 방법으로 회유하였지만 이미 끝까지 가자는 결심을 한 이들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2011년 7월 역사적인 '삼성노동조합' 설립필증을 받아낸 날 조장희 부위원장(현 삼성지회 부지회장)은 해고되었다. 남은 3명의 조합원들도 얼토당토 않은 일들로 징계를 연거푸 당했다.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에버랜드 곳곳에 성능 좋은 CCTV가 증설되고 미행, 감시는 집요했다. 현재도 징계와 고소고발 등 삼성의 법적 탄압으로 걸린 30여 건의 소송을 대응하느라 평균 주 1회는 법원을 오가고 있다(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잠시 광고를 하자면, 삼성지회는 오는 5월 10일 소송비용 마련을 위해 후원주점을 연다).

보통의 사람들이 평생에 한 번 가볼까 말까 한 법원을 주 1회 드나드는 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에도 열심히 연대를 하는 이들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밝다. 자신감이 넘친다.

이 자신만만하고 멋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삼성에서 노조는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통념을 깨고 날마다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올 3월에는 금속노조에 가입을 하여 '금속노조 삼성지회'로 노조 명칭도 변경되었다. 모진 탄압을 뚫고 삼성 노동권의 새싹을 틔운 이들을 보면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강철새잎'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6년 동안 들어온 말...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혹자는 '왜 그 고생을 하면서까지 노동조합을 하려 할까?'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삼성에서 죽고 병들어간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힘들고 어렵더라도 노동조합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열아홉에 삼성반도체 공장에 입사해 스물셋에 백혈병으로 숨을 거둔 고 황유미씨.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 어르신은 6년째 딸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기회만 주어지면 늘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노동조합에서 몸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고 내 딸이 죽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6년 동안 들었지만 지금도 이 말은 질릴 수 없는 말, 틀리지 않은 말, 너무도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노동조합이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아니다. 다만 노동자가 일터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최소한의 권리라는 노동법이 그림의 떡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장치이다. 특히나 한국사회를 부패와 편법으로 물들인 삼성에는 꼭 필요한 장치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삼성지회를, 삼성 노동권을 응원해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반올림, #삼성, #반도체, #산재, #백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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