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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계십니껴!"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오전 이른 시간에 찾아올 이가 성도 외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도의 목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할머니 목소리이고 흔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닌 주인공은? 도산에 사시는 이금술 할머니입니다. 그 분은 올해 연세가 86세이십니다.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다고 말하는 분입니다. 목적어를 간접적으로도 대지 않고 무조건 오래 살아 미안하다는 거예요. 누구에게 미안한 것일까요?

마음에 단단한 각오를 하고 오신 것 같습니다. 무슨 특별히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할 말'이라? 지난 5일 주일 예배 마치고 할머니들을 댁까지 모셔드리던 중에 마을회관 앞에서 이 분을 만났습니다. 내리는 할머니들을 위해 자동차 문을 열어주면서 저에게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사장님, 며칠 전에 찍은 사진 그것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지는 믿지 않는 사람인데..."

할머니는 저에게 꼭 '교회 사장님'이라고 부릅니다. 사장님이 제일 높은 분인 줄 아는 시골 할머니여서 그렇습니다. 몇 번 "사장님이 아니라 목사님"이라고 교정시켜줘도 통 고쳐지지를 않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 할머니가 어렵게 말을 걸어온 데 대해 저간의 상황을 좀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1일 일입니다. 우리 교회 인근 마을회관 세 곳을 돌았습니다. 복음을 전할 목적이었습니다만 그 매개물로 종이접기를 준비해서 갔습니다. 어버이날도 돌아오고 해서 꽃을 함께 만들기로 하고 색종이·빨대·토막 낸 철사·눈·풀 등을 준비물로 챙겼습니다. 먼저 남전 마을회관을 돌았고, 두 번째로 도산 마을회관을 방문했습니다. 여섯 분의 노인 분들이 그곳에 계시더군요. 할머니 다섯 분에 할아버지 한 분. 그 중 교회 나오시는 성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절반이나 됐습니다. 뒤에 요양원 돌보미 아주머니까지 합류해 총 7명이 됐습니다. 강사로 참석한 저희 부부까지 합하면 총 9명이 되는 셈이었지요.

남전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꽃 만들기 작업을 마치고  남전 마을회관을 돌아 도산 마을회관에 가서 생종이로 꽃 만들지 작업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도산마을 이금술 할머니가 며칠 마음 고생을 했다는 그 사진은 정작 나오지 않았다. 이 사진은 남전마을회관에서 찍은 것이다.
▲ 남전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꽃 만들기 작업을 마치고 남전 마을회관을 돌아 도산 마을회관에 가서 생종이로 꽃 만들지 작업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도산마을 이금술 할머니가 며칠 마음 고생을 했다는 그 사진은 정작 나오지 않았다. 이 사진은 남전마을회관에서 찍은 것이다.
ⓒ 남전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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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먼저 색종이 등으로 꽃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나눠드리고 함께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누구 못지않게 재빨랐을 손들이지만 연세가 많이 드신 지금은 마음도 몸도 손길까지도 몹시 느립니다. 아내와 제가 옆에서 도와야 했습니다. 잘 만들고 잘 못 만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떻게는 모두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좋아라' 하는 할머니가 있었는가 하면 '늙은이가 이런 꽃 있으면 뭐하나'라며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손주들에게 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유독 한 분, 이금술 할머니는 사진을 찍지 않으려 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데 '사장님'이 찍는 사진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괜찮다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옆에서 할머니들이 '별 것 다 따진다'며 꽉 막힌 노인네라고 핀잔을 주자 마지못해 찍긴 찍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찜찜한 것을 지울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복음이 온 초창기, 사진이란 말도 들어보지 못했을 때 서양 선교사들이 사진을 찍어준다고 손짓했을 때 애 어른 할 것 없이 사진 때문에 혼이 빠져나간다며 거절했다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할머니는 몇 번이나 확인해 왔습니다.

"사장님, 정말 괜찮은 거지요? 우리 며느리 알면 큰일 나는데..."

할머니에게 그것이 마음에 병으로 온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나흘이나 지난 5일 마을회관 앞에서 저를 만나서 다시 확인했는데도 6일 아침 재차 교회를 방문한 것입니다. 그가 교회엔 두 번째 오는 거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추수감사절 행사 때 함께했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교회 사택에는 처음 들어와 본다고 하십니다. "사장님 내외가 농촌 교회 와서 할머니들 보살피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어서 어떻게 사나 밖에서 염려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갖출 건 어느 정도 갖추고 사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니 안심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어렵게 살아가는 아들네를 걱정하던 노모가 방문하고 괜찮게 사는 모습에 안도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이금술 할머니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사모님이 할머니들 해가 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에 짐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사진 찍은 걸 생각하면 가슴이 쿵쿵거려 어지럽기까지 했답니다. 아무것도 아닌 줄 알면서도 병을 스스로 만든 거나 마찬가지라고 처방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그 병이 견디기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우황청심환인가 뭔가 하는 신경안정제까지 사 먹을 생각을 했을까요. 생각다 못해 팔십 중반 노인네가 단걸음에 교회까지 달려오신 겁니다.

사택에 들어서면서부터 할머니는 계속 "사장님·사모님 미안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사진 찍은 것 별탈 없겠지요?"를 계속 물어왔습니다. 아내는 할머니를 안심시킬 생각으로 "별탈 없을 뿐만 아니라 그때 찍은 사진, 한 장도 안 나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동영상 상태에서 찍어 한 장도 쓸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영상을 다 지웠습니다. 사진이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입니다. 아내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주방으로 가서 커피와 떡을 내왔습니다.

음식을 들기 전에 제가 할머니를 끌어 안고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불쌍한 영혼을 긍휼이 여기시사 구원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끝나고 커피를 들면서 할머니는 늙은이가 아무 권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며느리가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며느리는 같은 마을 관음사 절에 나가서 정성을 드린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정작 본인은 교회에 나오지 못하지만, 딸 부부가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있고 대구에 사는 그들이 며칠 전 다녀갔다는 말로 목사인 저를 위로하려 했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이 교회 나온 뒤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이 부럽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교회 놀러 오는 마음으로 주일과 수요일 노년부 예배가 있을 때 나오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타부타 대답 없이 일어서는 할머니에게 가슴이 또 콩콩 뛰면 교회로 달려와서 목사님에게 기도 받으시라고 아내가 일렀습니다.

할머니가 교회로 달려오게 만든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 건지 모릅니다. 교회 마당을 한 번 더 밟고 사택을 들어가게 하시는 것도 당신께서 사랑을 주시는 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 이런 고마우신 하나님이 오늘 할머니에게도 교회 가라는 마음을 주셔서 이렇게 뛰어온 것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 마음 한결 가벼워지는군요. 이금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꽃 만들기#사진찍기#마을회관#평안을 구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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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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