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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福岡)의 거대한 쇼핑몰 캐널시티를 지나 북쪽으로 길을 건넜다. 어젯밤에 불을 밝혔을 골목의 술집들은 모두 조용히 잠들어 있다. 큰 길가에 면한 호텔의 식당들은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오는 손님들을 맞을 준비에 바쁘다. 아침 공기는 아직도 제법 쌀쌀하지만 여행 하기에는 좋은 날씨이다.

구시다신사 남쪽에는 계단을 올라 신사에 이르는 작은 입구가 있다.
▲ 구시다신사 입구 구시다신사 남쪽에는 계단을 올라 신사에 이르는 작은 입구가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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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근한 구시다신사(櫛田神社, 일본 현지에선 '구시다진자'라고 부른다)의 출입문은 신사 서쪽에 면한 정문이 아니라 신사 남쪽의 작은 계단이 있는 문이다. 구시다 신사 입구 계단 옆에서 야키모찌(焼き餅)를 파는 유명한 가게는 아쉽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신사 입구에는 후쿠오카의 각 단체에서 기증한 하얀 종이 등이 2줄로 빼곡하게 걸려 있다.

구시다신사는 헤이안(平安) 시대인 757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신사이다. 현재 신사에 전해지는 신사의 건축물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뜻에 따라 후쿠오카의 초대 번주(藩主)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개축하였다. 구시다 신사의 하카다 수호신은 '오쿠시다상(お櫛田さん)'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후쿠오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구시다신사는 하카타를 지켜주는 수호신들을 모시고 있는데, 이 신들은 불로장생과 상업 번성을 돕는 신이다.

수령 천년의 부부 은행나무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 구시다신사 은행나무 수령 천년의 부부 은행나무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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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안은 마치 큰 저택의 정원 같이 조용하고 단정하다. 신사의 역사를 알려주려는 듯한 거대한 은행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현(縣) 지정 천연기념물인 부부 은행나무다. 은행나무 한 쌍이 밑둥을 붙인 채 사이좋게 가지를 뻗고 있어서 부부 은행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무려 천년이 넘었다. 조금이라도 신기하고 전통이 있으면 숭상하고 복을 비는 일본인들이 이 천년의 나무를 그냥 둘 리 없다. 누가 봐도 신령스러워 보이는 천년 은행나무 앞에는 나무의 신령함에 기대어 부부(夫婦)의 복을 빌려는 에비스신사(惠比壽神社)가 자리를 잡고 있다. 

장사들이 들어넘기면서 힘자랑하던 돌이다.
▲ 힘돌 장사들이 들어넘기면서 힘자랑하던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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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에는 쌀 한가마니 크기는 되어 보이는 바위돌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다. 후쿠오카현의 문화재로 지정된 힘돌, 역석(力石)이다. 돌 위에 사람 이름이 쓰여 있는데, 이 돌을 든 스모선수들의 이름이다. 예로부터 스모 선수들이 큰 돌을 몸 위에 들어 올려 힘자랑을 했는데 그 힘돌들을 이 신사에 바친 것이다.

이 힘돌의 문화는 여몽연합군이 규슈를 공격하였을 당시에 군함의 닻으로 썼다고 알려진 닻돌이 이 신사에 전해진 데에서 유래한다.

스모선수로서 괴력을 자랑한 장사였던 도비우메(飛梅)가 61세의 나이였던 1830년에 바친 힘돌과 함께 2010년까지 요코즈나(横綱)였던 아사쇼류 아키노리(あさしょうりゅう あきのり)가 바친 돌도 있다. 그 앞에 아무나 시범적으로 들어볼 수 있는 시석(試石)이 있어 개인의 힘자랑을 할 수 있지만 아침부터 일본의 신사에서 힘을 빼기는 싫었다.

마츠리에서 이 거대한 가마가 후쿠오카 시내를 행진한다.
▲ 기온야마카사마츠리 가마 마츠리에서 이 거대한 가마가 후쿠오카 시내를 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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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일본 3대 마츠리 중의 하나인 '기온야마카사마츠리(祈園山笠祭り)'가 후쿠오카에서 열리는데 마츠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오이야마(追山)가 시작되는 곳이 이 신사이다. 이 신사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짊어진 7개의 가마가 5분 간격으로 차례로 출발하여 5km 코스를 돌면서 순위를 가리는데, 인형을 가득 실은 거대한 가마가 후쿠오카 시내를 행진한다면 엄청날 것이다. 이 거대 가마의 행진은 770여 년 전, 가마쿠라(鎌倉) 막부(幕府) 시절 하카타 일대에 유행했던 전염병 퇴치를 기원하며 가마를 메고 동네를 돈 것에서 유래하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후쿠오카의 '기온야마카사마츠리'에서 사용되는 장식물 가마, 카자리야마(飾り山)가 전시되어 있다. 이 가마는 마츠리에 사용되는 인형으로 치장된 화려한 가마다. 마츠리에 사용되는 이 가마는 1년 내내 구시다신사에 보관되고 있어서 축제 기간이 아닌 지금도 가마를 볼 수 있다. 마츠리가 끝나면 가마 장식물은 모두 해체되지만 구시다신자에서는 카자리야마 한 개를 특별히 해체하지 않고 전시하고 있다.

진한 화장에 눈을 치켜 뜬 도깨비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다.
▲ 기온야마카사마츠리 가마 진한 화장에 눈을 치켜 뜬 도깨비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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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마는 한 컷에 사진을 담기가 어려울 정도로 큰데 이 큰 가마를 들고 뛴다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구시다신사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남성적인 마츠리, 기온야마카사마츠리가 이곳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후쿠오카에서 가장 유명한 신사가 되어 있다. 

기온야마카사의 장식 가마는 무게가 1톤이나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배 모양의 구조물 위에 인형과 장식물로 가득 구성되어 있는데 장식 가마의 높이도 10m를 넘는다. 진한 화장을 한 도깨비 인형들이 높은 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위압감이 느껴진다. 인형들의 이 위세는 아마도 하카타 사람들의 기질을 닮아 있을 것이다.

장식인형 중 가장 위에 자리한 하카타 전통 도깨비 인형의 눈빛은 섬뜩하다. 인형들의 옷의 색상과 문양은 더 할 수 없이 화려하지만 각 인형들의 표정은 고압적인데다가 모두 화난 것 같고 차가워 보인다.

장식 가마는 악귀를 물리쳐 준다는 남자 도깨비 장수들이 층을 이루고 있다. 장식 가마는 한쪽 면만 장식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장식 가마의 뒤쪽을 보니 화려한 색상의 옷을 차려입고 진한 화장에 눈을 치켜 뜬 여성 도깨비들이 가득 장식되어 있다.

불로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샘물이다.
▲ 영천학 불로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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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본전 앞에 보니 이 신사의 또 한 가지 명물이 있다. 신사 본전 땅 밑에서 신령스럽다고 믿는 샘물, 영천학(靈泉鶴)의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이 샘물 한 모금은 자신의 불로장수, 두 모금은 가족의 불로장수, 세 모금 마시면 친척과 친구의 불로장수가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물에 철분이 함유되어 있는지 온천수 같은 비린 맛이 난다.

육중하게 꼬인 시메나와는 사람과 신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 본전 동아줄 육중하게 꼬인 시메나와는 사람과 신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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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본전 처마 아래에는 큰 동아줄인 시메나와(しめなわ, 注連繩)가 육중하게 꼬여 있다. 이 동아줄은 사람과 신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고, 그 아래에서 참배자들이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참배자들은 신전의 헌금함에 헌금하고, 길고 두꺼운 줄을 흔들어 종을 친 후 2배를 한다. 종은 흔들릴 때마다 신사에 은은한 종소리를 퍼뜨리고 있다. 참배자는 다시 박수를 2번 치고 마지막으로 1배를 한다.

길고 두꺼운 줄을 흔들어 종을 치고 있다.
▲ 신사참배 길고 두꺼운 줄을 흔들어 종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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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경내를 돌던 나는 한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은 신사 경내의 많은 보물을 엄선하여 보관하고 있는 하카타 역사관이다. 입장료까지 받고 있는 이 신사는 구한말 우리의 슬픈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침전에서 벌어졌던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했던 일본인 도 가쓰아키(藤勝顯)라는 자가 시해에 사용한 칼, 히젠토(肥前刀)가 이 역사관에 보관 중이다. 그 칼은 후쿠오카 히젠 지역의 유명한 장인이 오로지 사람을 베기 위해 만들었다는 칼이다.

도 가쓰아키는 황후의 침전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직접 살해한 3명의 일본 낭인 중 한 명이다. 넘어진 명성황후가 첫 번째 칼에 맞은 후, 도 가쓰아키가 곧 이어 달려들어 두 번째로 칼을 댐으로써 명성황후를 절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히젠토의 나무 칼집에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을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을미사변 당시 일본의 작전명이 '여우 사냥'인데, 칼집의 문구는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는 뜻이다. 이 원흉은 구시다 신사에 이 칼을 기증하면서, '한국의 왕비를 찌른 칼'이라는 기록까지 함께 남겼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 하카타 역사관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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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를 살해한 이 원흉은 명성황후의 마지막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13년간 후회와 고통 속에 살다가 1908년에 히젠토와 함께 명성황후를 형상화해서 만든 관음상을 이 구시다신사에 바쳤다. 그가 정녕 후회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명성황후의 그 눈빛은 평생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신사에서 마치 기념물같이 보관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칼은 한일 간의 파장을 염려하여 이례적으로 한 번씩 공개기간을 정해서 공개하고 있고 사진촬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명성황후를 이 칼로 살해했다고 자백했는데도 유료로 입장하는 역사관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을 우롱하는 일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칼의 존재에 대해 공분할 것이다.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도 이곳에 서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게다가 이 칼을 사용했던 원흉이 이 신사 안에 기부를 하고 자신의 복을 기원했다고 하니 이 신사에 서 있는 것이 여간 불쾌한 게 아니다.

한국어로 된 오미쿠지가 있지만 한국인이 이 신사에서 복을 기원할 일은 아니다.
▲ 오미쿠지 한국어로 된 오미쿠지가 있지만 한국인이 이 신사에서 복을 기원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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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길흉을 점치기 위해 뽑는 신사 본전 앞의 오미쿠지(おみくじ)를 보고 있자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소원을 비는 한국인들이 많은지 오미쿠지의 다양한 언어 중에 한국어로 된 오미쿠지가 있다. 남의 나라 황후를 처참하게 죽인 칼을 자랑스럽게 보관하고 유료 제비뽑기로 뻔하고 좋은 운세를 보여주는 이 신사가 과연 종교시설인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면 이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한국어 오미쿠지를 뽑거나 참배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일본 여행을 하다보면 한일간의 불편한 역사의 현장을 가끔 만난다. 예절 바른 일본인들을 만나며 감탄하다가도 그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접하면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일본여행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역사적 관점을 만나면서 안타까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규슈, #후쿠오카, #구시다진자,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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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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