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달을 품은 슈퍼맨>(5월 10일부터 9월 1일까지, 대학로 공간아울)의 지하연습실. 배우들의 명랑한 빛이 문밖까지 새어나왔다. 발랄한 음악과 경쾌한 웃음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취재수첩을 들고 멍하니 그들을 바라본다. 배우들의 중심에 뮤지컬 배우 문혜원이 있었다.
문혜원은 '뷰렛'이라는 밴드의 보컬로 음악을 시작했다. 그는 뮤지컬 <서편제> <셜록 홈즈> <노트르담 드 파리> <헤드윅>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했다. 그런 그가 소극장 뮤지컬이자 창작 뮤지컬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햇살이 청량했던 지난 4월 30일 오후, 서울 대학로 지하연습실 근처 카페에서 문혜원 배우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대극장 뮤지컬과 소극장 뮤지컬의 차이, 이겁니다
- <달을 품은 슈퍼맨>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소극장 뮤지컬인데, 어떻게 이 뮤지컬에 참여하게 됐나요?
"<달을 품은 슈퍼맨>은 뮤지컬 배우 추정화 선배가 처음으로 작가·연출가로 도전한 작품이에요. 추정화 연출은 지난 1997년 배우로 데뷔해 20년 가까이 무대에 서온 베테랑 배우죠. 추정화 연출과는 창작 뮤지컬 <밀당의 탄생>에서 함께 무대에서 오르면서 만났어요.
함께 무대에 선 인연으로 추정화 연출이 제게 <달을 품은 슈퍼맨> 출연을 제안했어요. 저는 그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에 함께하는 모든 배우는 추정화 연출을 중심으로 모였어요."
- 문혜원 배우는 대극장 뮤지컬 중극장·소극장 공연을 모두 했잖아요. 대극장 공연과 비교했을 때 소극장 공연의 장점은 뭔가요?"소극장용 창작 뮤지컬의 경우, 초연이면 다 같이 만들어가는 게 의미가 커요. 저는 함께 작업하며 생기는 협동 정신이 좋아요.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라이선스 작품은 이미 동선 하나까지도 모두 정해져 있거든요.
대극장 뮤지컬의 매력은 오케스트라와 세트가 어우러진 웅장함이에요. 하나의 아리아를 감동적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소극장에서는 세밀한 연기를 요구하고, 대극장 뮤지컬은 노래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랍니다."
- 가수와 비교했을 때 뮤지컬 배우의 매력은 뭔가요?"저는 운이 좋은 경우예요. 이미지로 캐스팅이 잘 됐죠. 저는 처음에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고,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뮤지컬을 하게 됐어요. 고생을 많이 했어요. 밴드에서 쓰던 무기가 포크와 나이프였다면, 뮤지컬에 필요한 것은 숟가락과 젓가락이었어요. 똑같이 밥 먹는 도구인데, 저는 숟가락, 젓가락질을 할 줄 몰랐던 거예요. 처음에 배우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재능이 없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그래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밴드에서는 '나는 잘할 수 있어'라는 자존감이 있었다면, 여기서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어요. 해내고 싶은 욕구가 생겼죠.
밴드 무대에서는 나 자신을 무대에 세우고 자유롭게 노래하면 돼요.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정해진 캐릭터 안에서 연기와 노래를 함께 해야 해요. 처음에는 그 점이 제약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아닌 그 캐릭터가 되는 데 매력을 느꼈어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는 팜므파탈이 될 수 있고, 뮤지컬 <셜록 홈즈>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가 됩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20대에는 음악으로 '성공'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긴 호흡이 생겼어요. 배우는 평생 내가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으로 비유하자면, '3개월 반짝 운동해서 몸짱이 될 거야'가 아니라 '운동을 하면 내 건강에 좋으니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거죠. 배우 생활 자체가 내 삶이 되면 좋겠어요."
끈끈함으로 뭉친 창작 뮤지컬 <달을 품은 슈퍼맨>
- 문혜원 배우가 <달을 품은 슈퍼맨>에서 맡은 배역을 소개 해주세요."이름은 '길선희'이고, '써니'라 불려요. 어릴 때 전남 보성에서 살다 상경한 시골 처자죠. 보성에서 녹차 밭을 하다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들어서면서 집안에 빚이 쌓입니다. 빚을 갚으려 동대문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집에서는 인형 눈도 붙여요. 아침에는 지하철에서 김밥도 팔며 학교를 다닙니다. 희망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는 굳세고 털털한 친구예요. 가수의 꿈을 가지고 있죠."
- <달을 품은 슈퍼맨>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지적장애 남성이 주인공이에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달동네는 고달프고 살기 힘들어 보이죠. 작품은 달동네 사람들이 보기와는 달리 훨씬 따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있어요."
- 이 뮤지컬의 매력을 자랑한다면?"모든 배우가 실력 있는 분들이에요. 배우의 각양각색 연기를 보는 맛이 있죠. 연기를 잘할 뿐만 아니라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 무대에 오릅니다. 휴먼드라마로 잔잔한 감동을 주지만, 실컷 웃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창작뮤지컬은 연습과정 중에도 수정을 거듭하며 만들어요. 이런 현실 때문에 무대에 오를 때까지 곡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죠. <달을 품은 슈퍼맨>은 연습 첫날부터 곡이 정해졌어요. 곡의 완성도가 좋아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가면서 흥얼거릴 수 있을 거예요.
솔로곡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써니'가 동대문을 헤매며 부르는 밝고 재미있는 노래예요. '써니'는 복잡한 동대문에서 라면을 배달하며 매장을 못 찾아 갈팡질팡하죠. '써니'는 이렇게 노래해요.
모두가 똑같아 보여. 다닥다닥 붙은 가게. 어디가 어딘지 정말 모르겠어. 너무 복잡한 거리. 눈이 뱅글뱅글 도네. 울지마. 정신을 차려. 난 찾을 수 있어. 난 해낼 수 있어. 이 복잡한 거리에서 이쪽으로 쭉 가면 231번. 오른쪽으로 꺾다 보면 242번. 왼쪽! 대각선! 다 왔다! 239번! 배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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