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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트만두의 아침은 까마귀 울음소리와 함께하지만 히말라야의 아침은 워낭소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마부 소년의 휘파람 소리와 워낭소리가 어우러져 침낭 속으로 타고 들어옵니다. 워낭 소리에 잠이 깨었지만, 온기가 남아 있는 따스한 침낭은 어머님의 품처럼 아늑하기만 합니다.

포터들의 고단한 삶을 통해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은 안나푸르나 다라파니(1860m)까지 갈 예정입니다. 8시에 시작한 트레킹은 거대한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계곡으로 들어 갈수록 설산 모습은 점점 멀어집니다. 트레일 주위에 있는 작은 봉우리들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설산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둔한 저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에 집착하여 작은 봉우리 뒤의 높고 아름다운 설산을 망각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마르샹디강을 끼고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트레일은 갈수록 웅장해지고 있으며 수많은 폭포와 울창한 침엽수림이 저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걷는 길에는 트레커 외에도 많은 포터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산을 오르는 그들이 없다면 트레커들은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걷는 포터의 모습
▲ 포터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걷는 포터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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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산을 오르지만, 자신의 짐조차 지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의 짐까지 가녀린 어깨에 지고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동과 기쁨 속에 걷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삶의 무게를 지고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터들의 고단한 삶, 여린 어깨 그리고 가는 종아리를 보면서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나의 욕심과 불평이 사치스럽게 느껴집니다. 

히말라야를 걷다 보면 마방을 자주 만납니다. 마방은 십여 마리 당나귀와 한, 두 명의 마부로 구성되었습니다. 마방 선두에는 덩치가 크고 화려하게 치장을 한 대장 당나귀가 워낭소리를 울리며 길을 인도합니다. 워낭소리가 들려오면 트레커는 계곡 반대쪽에 자리 잡고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계곡 쪽에 서 있으면 당나귀의 엉덩이나 짐과 부딪쳐 계곡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워낭소리는 쉬어 가라는 히말라야의 경구입니다. 히말라야는 빨리, 높이보다는 천천히, 낮은 것이 삶의 지혜라고 알려 주지만 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히말라야를 걷는 것은 나의 몸에서 나는 워낭소리를 통해 순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히말라야 마방의 모습
▲ 마방 히말라야 마방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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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제(1430m)를 지나 한 시간 정도 오르막을 올라 사타레(1680m)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히말라야 방물장수를 만났습니다. 배낭과 좌판에는 시계, 장난감, 화장품 등이 가득합니다. 마을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골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물건이니 마을에 큰 구경이 난 것이지요.

히말라야에서 만난 방물장수와 덕유산 자락의 어머니

방물장수의 모습에서 저의 어린 시절이 기억났습니다. 덕유산 자락 산골 마을에서 작은 규모의 농사를 지었던 우리 집은 농사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시골 오일장과 덕유산 골짜기 마을을 다니시며 옷 행상을 하셨습니다. 행상을 가실 때는 옷 보따리를 이고 가셨지만 오실 때는 쌀, 보리, 마늘 같은 곡식이 가득하였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히말라야에서 만났습니다. 방물장수는 비록 남자였지만, 집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한쪽 어깨에는 무거운 배낭을 다른 쪽 어깨에는 삶의 고단함을 메고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겠지요.

히말라야를 생업을 위해 걷는 방물장수
▲ 방물장수 히말라야를 생업을 위해 걷는 방물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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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레에서 탈(1700m)까지는 급경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듯이 히말라야에서도 우리의 수고와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1시간 동안 힘들게 오르막을 올랐습니다. 해발 1700m에 자리 잡은 탈(Tal) 마을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곡류천이 흐르는 강가 마을은 은빛 물결과 고운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예쁜 꽃들이 가득하며 마을 뒤편에는 거대한 폭포가 여행자들을 맞고 있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하루쯤 쉬어가고 싶은 곳입니다.

힘들게 오른 고개에서 바라 본 탈 마을 모습
▲ 탈 마을 모습 힘들게 오른 고개에서 바라 본 탈 마을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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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곳을 기점으로 위쪽은 불교를 믿는 마낭 지역이고 아래쪽은 힌두교를 숭상하는 람중 지역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 안나푸르나입니다. 세상은 편 가르기를 좋아합니다. 인종, 민족, 종교, 이념이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목숨까지 빼앗습니다. 반목하는 국가와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이곳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탈 마을 모습
▲ 돌담길 탈 마을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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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라파니로 출발하였습니다. 몸은 탈에서 하루 숙박할 것을 유혹하지만 아쉬울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이겠지요. 두 시간 쯤 걷자 오늘 목적지인 다라파니(1860m)에 도착하였습니다. 다라파니는 안나푸르나라운딩과 마나슬루 트레킹이 서로 만나는 곳입니다. 마을에는 많은 로지가 있었지만, 겨울철 비수기인지라 대부분 숙소들이 닫혀 있습니다.

다라파니 마을 입구 현수교
▲ 현수교 다라파니 마을 입구 현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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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주문하였습니다. 트레킹을 할 때 가장 고민거리 중 하나는 음식 주문입니다. 여행이란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을 두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생각해보지만, 막연하기만 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달밧'을 주문하였습니다. 달밧은 네팔의 대중 음식입니다. '달'은 콩으로 만든 수프이며 '밧'은 밥을 의미합니다.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이 선물한 흰 쌀밥과 녹두로 만든 밧이 스테인리스 접시를 가득 채우며 '아짜르(피클)'와 '짜파티(네팔리 빵)' 등이 추가됩니다. 네팔리들은 '밧' 위에 '달'을 붓고 손으로 잘 섞은 다음 손으로 먹습니다.

최인호의 <인연>, 글귀는 좋지만...

음식을 주문하고 식당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유일한 난방이 되는 식당에서 최인호의 <인연>을 읽습니다.

"요즘은 살면서 점점 이별의 순간을 맞이해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지금까지는 사람과의 만남이 많아 플러스 인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많아 마이너스 인생이 되어버린 듯싶다."

오십이 겨우 넘은 나이지만 최인호님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어느새 세상에서 인연을 맺은 많은 분이 소리 소문도 없이 떠나갑니다. 얼마 전 휴대폰 번호를 정리하다가 주인을 잃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당황하였습니다. 몇 번을 삭제하려다 그냥 두었습니다. 세상에 누군가에게 흔적을 남기고 싶은 친구의 마음이 남아 있기에 저는 아직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라파니 숙소
▲ 숙소 다라파니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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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접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는 없습니다. 휴대폰, 신문, TV 그 모든 것들이 다른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히말라야에는 걷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단순함을 경험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난롯가에서 책을 읽고 있지만, 글과 마음은 서로 제각기 놀고 있습니다. 눈으로 읽는 글들은 허공에 사라져 버리고 머리는 비워져 갑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나왔습니다. 달밧에 김치와 고추장을 섞으니 입맛이 돋습니다. 여행의 첫 걸음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입니다. 더구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허술한 로지 시설과 불편한 침낭 그리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참아야 합니다.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법입니다.

저녁을 끝내자 불안한 제 마음을 알 듯 천정에 달린 전등도 몇 번을 깜빡이다 꺼져 버렸습니다. 태양열이나 계곡에서 자체 발전하는 전기는 저녁 시간을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난로 온기에 미련이 남은 저는 초를 밝히고 소주를 마십니다.

며칠 지나지 않았음에도 세상의 일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태그:#네팔,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라운딩, #다라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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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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