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6일간의 미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의 귀국길은 시종일관 침울한 분위기였다.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 10일 오후 6시30분 성남 서울공항에 이르는 12시간 30분 동안 대통령 전용기(공군 1호기) 내부의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기자들과의 접촉을 부담스러워했다. 취재진 탑승석에 자주 모습을 비치던 출국길과는 달리 귀국길에는 제자리를 지켰다.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가 LAX 국제공항을 이륙한 후 이남기 홍보수석만이 잠시 기자들을 만났다.
이 수석도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 해외 순방 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연루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 등 방미 성과가 희석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성추행 진실 공방에 대해서는 "민정수석실에서 조사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예정됐던 박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도 없던 일이 됐다. 그동안 해외 순방을 마친 후 귀국길에 대통령이 기내에서 기자 간담회를 여는 것은 관례 중 하나였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출국일이었던 5일,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박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 방미 성과에 대해 직접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박 대통령은 출국 때는 전용기 이륙 후 기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서울공항 도착 후 환한 모습으로 영접 나온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 등과 인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기내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율 상승 곡선 그리던 시점이었는데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윤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인지한 박 대통령은 LA로 이동한 후 9일 오전(현지 시각) 창조경제 한인 간담회에 참석하기 직전 윤 대변인을 경질하기로 결정했고, 이남기 홍보수석은 이 사실은 기자들에게 알렸다.
이날 오전 10시 50분경 LA 밀레니엄 빌트모어 호텔에 차려진 프레스센터를 찾은 이 수석은 "윤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기간 중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으로 향하던 대통령 전용기에서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방미 성과가 묻히는 것도 문제지만, 이 사건이 미국 언론에도 대서특필 될텐데 국가의 품격 손상도 우려된다"며 "취임 초 떨어졌던 지지율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편 서울공항에는 나홀로 귀국을 한 윤 대변인이 자신의 호텔방에 남겨둔 짐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 전용기 안 윤 대변인의 좌석은 비어 있었고 윤 대변인의 짐만 전용기를 타고온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