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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라디오를 읽었다. 라디오는 듣는 것인데, 어찌 읽었다고 썼을까. 책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와 김미라의 라디오 에세이 <오늘의 오프닝>이 그것.

읽기는 김미라의 라디오에세이를 먼저 읽었는데, 두 권 모두 라디오를 통째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한번 듣고 지나가면 그만인(물론 요즘은 홈페이지에서 다시 듣기도 할 수 있고, 앱으로 다운 받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지만) 휘발성(?) 매체 라디오를 평생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기분이랄까.

곁에 두고 계속 읽을 수 있는, 라디오 같은 책 두 권

김미라 방송작가의 <오늘의 오프닝>
 김미라 방송작가의 <오늘의 오프닝>
ⓒ 페이퍼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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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의 라디오 에세이 <오늘의 오프닝>을 먼저 보자. 김미라는 라디오 방송작가다. 스스로 '매일 글 쓰는 사람'이라 칭하고,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라디오'를 꼽는 그가 '生의 오프닝'이라 불릴 만한 글을 엮은 것이 바로 책 <오늘의 오프닝>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하루하루 새롭게 넘어가는 오프닝 멘트가 신선하다. 때로는 영화를, 때론 날씨를, 때론 시를, 때론 음악을 시의적절하게 풀어나가는 김미라 작가의 '썰'은 재밌고 때로 유익하다.

책이 아닌,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덴마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우면서 재밌었다. 사람의 지혜만한 책이 있을까 싶어, 그 아이디어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한번 세게 때려보세요'란 글 역시 유쾌했다. 1960년대 만들어진 가전 제품의 사용설명서 내용을 다뤘는데, 제품이 고장 났을 때 이런 저런 방법을 다 써봐도 고쳐지지 않으면 한번 세게 때려보라고 써 있다는 것.

그러면서 작가는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복잡해질 때는 그렇게 해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원시적으로 해결해보는 거지요'라고 썼다. 충분히 공감했다. 이런 이야기를 라디오가 아닌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라디오가 아닌 책 속에 코를 빠뜨리고 몰입해 읽었다.

사자는 육식동물인데... 샐러드를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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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에 만난 것이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였다. 사자는 육식동물인데, 샐러드를 좋아한다니. 제목의 엉뚱함은 하루키 특유의 유머를 발견해 줄 힌트쯤 되시겠다(하루키가 알면 서운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재밌는 듯).

사실 이 책은 일본 잡지 <앙앙>(앙~은 팝아티스트 낸시랭의 전매특허인 줄 알았더니 ^^)에 연재된 '무라카미 라디오' 에세이를 묶어 낸 것이다. 라디오 방송과는 상관없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법한 내용들을 묶었다.

책 곳곳에서 썰렁하다 못해 '쿨'한 그의 유머가 '툭툭' 묻어난다. 대작가(?)치곤 '참 소심하다' 싶은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소심함의 범주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기에 반갑기도 했고. 

팁 문화가 없는 일본인이 외국 여행을 갔을 때 겪는 애로사항이랄지, 언제부터 소설가를 작가님이라고 부르게 된 건지 궁금해 하는 거랄지, 2등이 되는 게 1등이 되기 보다 훨씬 어려운데, 2등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없다든지 하는 '누가 그런 것에 대체 관심이나 있을까 싶은' 내용을 '뻔뻔'하게 (독자들도 재밌어 할 거라고, 아니어도 그만이고) 글로 푸는 재주는 하루키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두 권의 책 덕분에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길이 즐거웠다. 라디오를 즐겨 듣던 시절, 노래는 짧고 멘트가 길어질 때면 짜증도 좀 났었는데, 왜 그랬나 싶다. 정보와 감동 그리고 유머까지 있는 이 소중한 문장들을 왜 몰라봤는지. 늦게나마 생에 소중한 것들을 '콕' 짚어주고 간 이들 라디오가 참 귀하고 고맙다.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아도 낄낄 댈 수 있는 여유, 잠시나마 눈가에 촉촉한 물이 맺었다 풀어지는 기분이라니. 같이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바란다. 가는 봄, 충분히 봄을 즐기는 동안 옆에 놓고 봐도 좋을 책으로 강추다.


오늘의 오프닝 - 하루 한 끼, 당신의 지성을 위한 감성 브런치

김미라 지음, 조정빈 사진, 페이퍼스토리(2013)


태그:#라디오, #김미라,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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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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