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반복된 서울 강남역 일대 침수 피해는 서초구청이 삼성전자를 배려해 무리하게 하수도 노선을 변경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환경연합과 시민환경연구소는 15일 오전 중구 누하동 환경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일과 9일 강남역 하수관거를 촬영한 현장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환경연합은 지난해 9월에도 비슷한 주장을 제기했으나, 이번에는 2회의 현장조사와 설계도면 등 자료가 더해졌다. 현장에 다녀온 박창근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은 "완공된 강남역 하수관에 가보니 물이 흐르는 통로가 점점 좁아지는 등 기형적 구조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한 서초구가 삼성전자의 지하연결통로를 하수관 설계에 우선적으로 반영한 탓에, 침수방지를 위해 약 400억 원의 공사비를 들였음에도 강남역이 상습침수지역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의 지하연결통로를 피해 하수관을 공사하다보니 물이 흐르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졌고, 이것이 침수 피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었다.
강남역 하수도 들어가보니... 좁아지는 통로, 높아지는 경사실제로 <오마이뉴스> 기자가 직접 들어가 본 강남역 하수관거는 매우 기형적인 구조였다. 샛강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 보통은 작은 하수도관에서 시작해 큰 하수도관(공간)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강남역 하수관거는 물이 흘러갈수록 공간이 줄어드는 구조였다.
환경연합은 이를 '통수단면축소'라 설명하며 가로 2m, 세로 3m의 하수도 공간이 공사과정에서 각각 1.5m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하수도 높이 키 160cm의 일반 성인이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였다.
더구나 내부는 물이 흘러가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물이 흐르는 방향이 점점 수평이거나 아래로 경사져야 함에도, 강남역 하수관거는 오히려 물이 흐를수록 위로 올라가는 구조(오르막)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렇다 보니 물이 쉽게 빠지지 못하고 경사와 부딪치거나 고여 있어 썩게 된다.
현장에 동행한 환경연합 생태도시팀 신재은 팀장은 "하수도는 물이 모여드는 공간이라 흐를수록 (공간이) 커지고 경사도 있어야 하는데 여긴 거꾸로 만들어졌다"며 "강남역은 대한민국 대표거리인 만큼, 이제라도 공사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앞으로의 침수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은 관계 법령을 무시하면서까지 진행됐다. 환경연합에 따르면, 서초구는 삼성의 지하공공 보도시설(지하통로)에 대해 '지하공공보도시설의 결정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등에 위배돼 설치할 수 없음을 삼성에 통보해야 했으나 통보하지 않았다. 이들은 또한 서초구가 설계사에 지시해 하수도의 최대유량을 임의로 조정하고 공사를 진행했다며 "서초구가 '자료 조작'을 해서까지 삼성의 편의를 봐줬다"고 주장했다.
이세걸 사무처장은 "당초 하수관거(하수가 흐르는 길) 공사는 물이 일자로 완만하게 흐르는 하수관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됐으나 삼성전자가 신사옥 건설을 추진하면서 하수관 설계도 변경됐다"고 말했다. 그는 "하수관이 당초 계획대로 만들어졌다면 침수 피해도 덜 발생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삼성의 도의적 책임 지적같은 날 오전 서울시는 '맞춤형 수방대책'을 발표하고 올해 여름철 수해에 취약한 34곳의 피해를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강남역과 관련해 문승국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강남역 사거리에 삼성전자 건물이 들어오기 전 하수관로 설치 계획이 있었는데, 건물을 지으면서 하수 관로가 휘는 등 변경됐다"며 침수에 대한 삼성의 도의적 책임을 지적했다.
서울시는 침수피해가 나지 않도록 1.5만t 규모의 빗물 저류조를 인근 공원에 조성할 계획이다.
서초구청의 재난침수과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현재 다른 과로 옮겼다"며 "구청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청은 지난해 8월 말 보도자료를 통해 "서초구 강남역 일대 침수는 인근 지역에 비해 고도가 17미터 이상 낮기 때문"이라며 "강남역부터 한강으로 직송하는 대심도 지하저류터널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