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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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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식에 다시 나타난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님.

먼저 5.18 기념식에 참석한 데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 한 번 참석한 이후 퇴임할 때까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기념사조차 내놓지 않은 일에 많은 이들이 깊은 절망을 했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현직 대통령으로 5년 만에 5.18 기념식에 참석함으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통령님과 정부의 기본적인 인식이 이전 정권에 비해 진일보 했다는 생각에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 싼 갈등으로 인해 5.18 유가족이 참석하지 않는 등 반 쪽짜리 행사가 되고 만 것은 이게 대통령님과 현 정부가 보여 줄 수 있는 포용력의 한계인가 싶어 아쉽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낭독한 기념사 역시 평가 받을 만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고, "유족 여러분, 그리고 광주시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대통령님 역시 "가족들과 광주의 아픔을 느낀다"는 대목에서 가슴 속 뭉클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영령들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어 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그 희생과 아픔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는 그 대목에서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의 기념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건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그 다음 대목부터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왜 저런 말이 5.18 기념식에서 나와야 하는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민주주의의 큰 진전을 이뤄냈지만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갈등의 골은 메워지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제대로 진단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의 그 다음 연설은 "저는 이제 새로운 국가발전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로 넘어갑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 등 주요인사들이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 등 주요인사들이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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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깊어지는데 뜬금없이 웬 '국가발전'?

얼마 전 종편 채널에서는 5.18 당시 북한군이 광주 시민군 행세를 했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이름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광주 시민의 시체를 두고 "홍어를 말린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구요.

33년 동안 갈등의 골이 메워지기는커녕 최근 들어 더 깊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은 그 메워지지 않은 골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대책도 내 놓지 않고 뜬금없이 "국가 발전"을 이야기 한 겁니다.

현재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5.18 가치 훼손 시도는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된 정부차원의 5.18에 대한 가치 폄훼의 결과물입니다. 현정부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구요.

"5.18 국립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가족들과 광주의 아픔을 느낀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제 5.18의 가치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부터 이야기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대통령님은 5.18 정신과 동떨어진 "국가 발전"에 대한 이야기만을 계속 했습니다.

"저는 이제 5.18 정신이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행복이고,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전 이 대목에서 대통령님의 역사의식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18 정신은 군부 세력에 의한 왜곡된 역사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고, 이 나라에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권력을 강탈한 전두환 군부 세력에 대한 저항이었고, 그 세력의 지시를 받은 우리 군인들에 의해 광주시민이 학살당한 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자던 "새마을 운동"과 헷갈릴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경제 민주화를 이루고,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지만, 거기에 5.18 정신을 억지로 갖다 붙일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 길에 민주화를 위해 고귀한 희생과 아픔을 겪으신 여러분께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 주실 것을 부탁"해 봐야 5.18 민주영령과 광주시민들은 뜬금없이 여길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한길 민주당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박 대통령, 강운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지사.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한길 민주당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박 대통령, 강운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지사.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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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국민통합을 원하신다면...

대통령님께 부탁합니다.

대통령님께서 진정 5.18 정신이 국민통합으로 승화되기를 원한다면, 지난 정부부터 이어진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폄훼를 우선 멈추어 주십시오.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의도적인 모욕을 가하고 있는 종편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조사를 통해 그들의 위법행위를 가려 주시기 바랍니다.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추징금을 모두 회수하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과도한 예우 역시 그만 두길 바랍니다.

그것만이 5.18 영령 앞에서 명복을 빌고, 위로를 전하고, 함께 가슴 아파했다는 대통령님의 진심을 확인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대통령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태그:#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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