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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부산 민주공원의 풍경은 여느 휴일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삼삼오오 모여든 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수박을 먹고 있었고, 연인들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어놀며 꺄르르 웃어댔다. 5·18의 부산 민주공원은 가정의 달의 화목함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민주항쟁의 역사를 기록한 전시관 앞에서는 뚝 끊겨 있었다.

민주공원 주위 벌판에선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민주공원주위 벌판에선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 이주영

안으로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1층 로비에서 의자에 앉아계신 아주머니 몇 분을 만났지만 화장실을 다녀오신 듯했다. 아주머니의 말소리는 1층 전체를 울렸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큰 것이 아니라 발소리 하나도 크게 울릴 만큼 로비가 적막한 탓이었다. 중극장과 소극장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민주항쟁의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5·18임에도 별다른 기념 공연은 없었다.

뜻기림횃불 민주의 횃불이라고도 불리며 민주항쟁의 공유를 상징한다
뜻기림횃불민주의 횃불이라고도 불리며 민주항쟁의 공유를 상징한다 ⓒ 이주영

로비를 통과하면 횔체어를 탄 장애인들과 보행약자를 배려한 원형계단이 펼쳐져 있다. 지하 1층에서 4층을 오르는 주 통로를 원형 모양의 달팽이 꼴로 만든 곳이다. 중앙에 있는 웅장한 크기의 민주횃불 조형물과 이를 둘러싼 원형계단은 민주공원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원형램프'다.

원형계단을 한 층 올라 2층으로 들어서면 '늘펼쳐보임방'이라는 상설전시실이 있다(민주공원의 각 시설과 장소는 대부분이 한글이름이다). 표를 끊고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얼마냐고 묻자 '100원'이라는, 조금은 무안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갑을 뒤져 100원을 내밀고 건네받은 표와 함께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전시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작 100원을 내고 전시실 전체를 빌린 듯한 느낌은 좋지 않았다.

헌법 제 1조 바로 앞에는 '부산민주항쟁 길눈이'라는 역사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헌법 제 1조바로 앞에는 '부산민주항쟁 길눈이'라는 역사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 이주영

전시장을 들어서는 바로 옆 벽면에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해방 이후 1960년 4월 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5·18민중항쟁, 1987년 6월민주항쟁의 역사가 얻고자 했던 그 한 문장이 가슴에 깊게 박혀왔다.

민주항쟁의 역사가 기록된 전시물들을 따라 둘러보다 보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민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골목진 코너를 돌아보면 민주항쟁의 역사를 생생히 담고 있는 사진이 영상으로 편집돼 전시돼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비췸마당'이라는 방이 나온다.

비췸마당 큰 스피커가 양쪽에 설치되어 있어 민중가요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장소다.
비췸마당큰 스피커가 양쪽에 설치되어 있어 민중가요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장소다. ⓒ 이주영

'눌러주세요'라는 버튼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면 발길이 없어 한 번도 빠져나오지 않은 듯한 서늘한 에어컨 공기가 몸을 감싼다. 원하는 민중가요를 틀어 감상할 수 있게 해놓은 방은 편안한 감상을 위해 곳곳에 푹신한 방석이 놓여있었지만 사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고 방안 가득 울려 퍼지는, 사람 없는 고요한 전시장 안 곳곳에 펼쳐질 그들의 소리를 느꼈다. 마음이 허했다.

민주항쟁전시관을 빠져나와 전망대를 올랐다. 푸르게 펼쳐진 공원과 깨알같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민주항쟁전시관 안의 고요함과는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전망대 위에는 '민주공원'이 적힌 깃발이 펄럭이고 높게 솟아있는 '민중 횃불'의 조형물이 하늘 조각을 품고 있었다.

민주공원 깃발 봄바람을 맞아 힘차게 펄럭인다
민주공원 깃발봄바람을 맞아 힘차게 펄럭인다 ⓒ 이주영

전망대에서 내려오자 아이의 손을 잡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는 가족을 만났다. 화장실 혹은 식당을 향하는 발걸음일지 모르지만, 아이의 '뾱뾱' 거리는 발소리는 경쾌했다. 1층 로비를 다시금 통과해 나오는 길에 검은색의 책자를 발견했다. 횃불에 그을린 듯 새까만 표지의 그 책자를 꺼내 들자 민주공원의 고요함과 적막함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민주공원 예산이 52.7% 삭감돼 소식지 발행을 잠정 중단합니다."

지난해 연말 부산시의회에서 민주공원에 집행될 예산이 절반 이상인 53%를 삭감된 채 부산시의회 본 회의를 통과됐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와 올해 봄 전시관에서 사진전을 열기로 했던 사진가 이동문씨의 호소가 담긴 글과 함께 부산시의회 게시판에 올려진 민주공원 예산 삭감을 반대하는 시민의 글이 책자 가득 메워져 있었다. 1월 30일 마지막으로 발행 된 그 책자는 여전히 민주공원의 예산을 원상 회복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일방적인 민주공원의 예산삭감에 따라 그동안 민주공원에서 진행된 사업은 폐지되거나 축소가 불가피해졌으며, 공원의 시설 운영과 관리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역 예술가들이 1인 시위를 벌이고 노조에서도 잇따라 집회를 열고 대책을 호소하고 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직원들의 생활고는 물론이거니와 민주공원의 폐쇄 위기는 말그대로 부산민주항쟁 역사 보존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원안에 사람들의 여유로운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부산시민 중 민주공원의 폐쇄 위기를 알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싶다. 민주공원은 시민의 나들이 장소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민주'라는 이름의 함의가 두드러지는 곳이다.

부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도시
부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도시 ⓒ 이주영

전국 유일의 '민주 공원'이 폐쇄위기에 놓여있다. 5월 18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그 날 민주화의 숨결이 살아있는 민주공원은 무심하게 평화로웠다. 민주공원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역사와 가치를 공유'하고자 설립된 민주공원의 참뜻을 되새겨야 한다. 민주공원에게 큰 관심의 횃불이 필요한 때다.


#민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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