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과 10일 사이에 봄비가 내린 뒤 블루베리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죽은 가지에서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블루베리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다니! '봄비는 죽은 식물도 살린다'고 하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2011년 12월 지리산 섬진강변에서 이곳 연천 임진강변으로 이사를 올 때 10그루의 블루베리나무를 가져왔었다. 섬진강은 이곳보다 훨씬 따뜻하다. 그래서 승주에 있는 깨비농장에서 남부종 블루베리 묘목 10그루를 구입하여 2010년부터 화분에 키우기 시작했다. 이듬해 블루베리는 꽃을 피우고 탐스런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이곳 휴전선 인근 연천은 추은 겨울에는 영하 25도까지 내려간다. 남부종인 블루베리는 영하 10도까지는 견뎌내지만 그 이후로는 힘들다. 때문에 이곳처럼 추운 데서는 사실상 키우기가 어렵다. 너무 추워도 안 되고, 너무 더워도 안되는 것이 블루베리 나무다.
아내와 나는 지난 겨울, 블루베리 화분을 현관에 들여 놓고 애지중지 돌보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 덕분에 추운 겨울에도 블루베리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런데 작년 6월, 104년 만에 찾아왔다는 극심한 가뭄 때문에 블루베리나무가 햇볕에 탔고 4그루는 죽었다. 아내가 서울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일주일 동안 물을 주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불볕을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타 죽은 것이다.
10그루 중에서 제일 작은 화분에 심은 어린 묘목은 완전히 죽어버렸고, 중간 화분에 심은 1년 반 생 묘목 두 그루는 고사했다. 다행해 가장 큰 화분에 있었던 마그노리아는 시들하기는 했지만 온전히 살아있었다. 역시 뿌리 깊은 나무는 생명이 강하고 끈질기다.
아내는 죽은 나무에도 계속해서 물을 주자고 했다. 혹시 뿌리가 새로 돋아나서 살아날 줄도 모르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블루베리나무에서 정말로 새싹이 돋아나고 있지 않은가!
죽은 블루베리나무에서 새싹이 움트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엘리엇의 시처럼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비가 잠든 뿌리를 흔들어 깨웠을까? 아내는 나무와 화초의 생명을 마치 자식처럼 돌본다. 거실에도 40여 개의 화초를 키우고 있는데 그 추운 겨울에도 물을 잘 주어 모두 생생하게 자라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생명은 하나다. 하찮하게 보이는 잡초의 풀잎에도 생명이 흐르고 있고, 그들만의 대화와 생각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토양학자 조지프 코캐너는 <잡초는 토양의 수호자이다>(Weeds:Guardians of The Soil)란 책에서 잡초를 땅을 살리는 마법사라고 칭송한다.
아내는 나머지 죽어 있는 블루베리나무에게도 계속 물을 주고 있다. 물을 주다보면 언젠가 침묵을 깨고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죽어있는 블루베리나무 곁에는 잡초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잡초들이 저 죽어있는 블루베리나무를 살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죽어 있는 블루베리나무를 비롯하여 모든 블루베리나무 화분에 상토를 보충하고 뒷산에서 솔잎 낙엽을 긁어다가 덮어주었다. 자연계 모든 생명은 참으로 경이롭다. 그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과 교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식물도 사랑을 준만큼 더 건강하게 성장을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블루베리나무에서는 꽃이 지며 블루베리 열매가 하나 둘 열리고 있다. 죽었다 살아난 저 여린 싹도 잘 보살펴주면 내년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