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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유가 누군가의 고혈이라면...
 
 내가 하는 일의 상대는 인생전체가 걸린 문제이므로 퇴근을 앞당길 수 없다는 이우룡변호사
내가 하는 일의 상대는 인생전체가 걸린 문제이므로 퇴근을 앞당길 수 없다는 이우룡변호사 ⓒ 이안수

지난 토요일(5월 18일) 이우룡·조윤경 부부가 고등학생 아들과 장인어르신을 모시고 오셨습니다.

극진하게 어르신을 챙기는 모습에서 아들은 자연스럽게 효심을 이어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부인은 캘리그라피로 헤이리에서의 전시에 참여하고 있었고 낮에는 방문객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메시지를 써주는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부부간의 화목과 어르신에 대한 효심을 통해서도 행복이 충만한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렇듯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그 여유가 큰 부러움이었습니다.

저녁에 저와도 잠시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르신은 동서양의 문화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에서도 균형 잡힌 시각을 잃지 않았습니다. 조광현 어르신은 KBS 기자를 비롯, 평생을 언론인으로 보내신 분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다른 따님 집에 다니러 가신 이유로 함께하지 못한 조 선생님의 부인은 원로 극작가이자 여류소설가인 송숙영 선생님이셨습니다.

다음날 체크아웃 전에 다시 서재에서 잠시 저희 가족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르신이 말씀하셨습니다.  

"편안하게 잘 묵었습니다. 이 선생님처럼 문화와 예술의 정취가 가득한 곳에서 창작활동으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할 바입니다. 과도하게 물질문명을 추구해 와서 부자가 되었지만 부의 성취가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살인하고 부자가 자살하는 것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물질문명대신 정신문명을 추구하고 있는 이 마을사람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어르신은 처음 헤이리를 방문하셨음에도 하룻밤 헤이리에 함께하는 시간만으로도 헤이리가 지향하는 바를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이우룡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몇 달 만에 처음 쉬어보는 휴일이었습니다. 참 좋은 경험했습니다."  

저는 이 선생님의 말씀에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제게 큰 부러움이었던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는 예외 중의 예외였던 것입니다.  

- 아니, 그동안 휴일도 없이 바쁘셨다는 것입니까?
"그럼요. 이렇게 휴일을 가족과 함께할 수 있었던 어제와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 어떤 일을 하시기에 그렇게 바쁘신 건가요?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지만 지난 20년간을 판사로 일했습니다."  

- 판사가 그렇게 바쁘다는 겁니까?
"밤 10시전에 퇴근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도대체 어떤 일이 그렇게 판사들의 발목을 잡는 겁니까?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료를 살펴야합니다. 공소자료를 검토하는 것은 물론 그 자료의 진실성 여부를 검증하는 더 많은 조사를 해야지요. 공소자료라는 것은 항상 검찰의 공소에 부합하는 내용만을 기술한 것이니까요." 

- 사실 공소자료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일듯 싶습니다.
"검사에게 유리한 자료에 이끌려가서는 안되지요. 그래서 2006년에 이용훈 대법원장님께서 '검사의 기록을 던져버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셨습니다. 수사기관의 조서로 유무죄를 판단하는 수사기관에 충실하지 말고 법정에서 직접 판단하라는 공판중심주의를 선언한 것이지요. 항상 자료는 위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또한 피고의 진술에 대해서도 그 진술 이면을 보는 능력을 가져야해요. 피고의 입이 아니라 사실과 진실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져야합니다."  

- 오판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치열해도 지나치지 않겠군요. 이 모든 노력들이 판사들의 퇴근을 붙잡는 요인이고….
"우리나라의 판사 일인당 주어지는 재판수가 월 300건 정도입니다. 그 하나하나를 판단하기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과의 싸움인 거지요. 판결문의 작성도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고요."

- 우리나라에 판사가 과로를 해야할 만큼 그렇게 분쟁사건이 많다는 겁니까?
"어떤 사안에 대해 역지사지하는 이해가 중요한데 그런 이해와 관용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법원으로 가는 발걸음을 줄이는 중요한 요소이지요. 또한 분쟁이 발생하면 서로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를 굽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정이나 중재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재판건수가 줄지 않는 거지요."  

- 휴일도 반납한 시간과의 싸움은 판사시절 뿐만 아니라 변호사인 지금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건가요?
"저는 민사사건을 담당하다가 지금은 형사사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만 판사로서 재판에 임할 때나 변호사로서 변호업무에 임할 때나 변하지 않는 저의 신조가 있습니다. "내게는 일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인생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일이 판사로서의 월급이나 변호사로서의 수임료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은 그 결과가 한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가한 것이 제 여유가 아니라 남의 핏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제가 휴일을 챙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지를 알 수 있지요."     

"아플 틈이 없는데 어떻게 아프겠어요?"  
 
 아플 틈이 없어서 아파보지 못했다는 나승대사장
아플 틈이 없어서 아파보지 못했다는 나승대사장 ⓒ 이안수

지난 일요일(5월 19일) 해거름에 나승대사장님 부부가 오셨습니다. 만약 제가 시간이 된다면 함께 저녁식사나 하자는,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가벼운 발걸음이셨습니다. 저는 모티프원을 리프레쉬하는 일을 미처 끝내지 못해 나 사장님 부부와 함께 외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지만 휴일 오후 부부가 함께하신 그 모습이 제게는 참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상황에 저의 아내는 저를 돕느라 여전히 고무장갑을 낀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사장님 부부의 이런 여유는 더욱 시새움 나는 일이었습니다.   

"두 분이 함께 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하지만 나 사장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처와 휴일을 함께 보내보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저는 올해들어서 한 번도 휴일에 쉬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겠다고 들르신 때의 여유 있는 저녁시간이 사실 올해 들어 처음 있었던 겁니다. 저는 몇 년간 나 사장님을 지켜보면서 각종 산업 및 목공공구를 공급하는 오늘날의 oo상사를 어떻게 일구었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나 사장님은 위로 딸만 다섯을 둔 집안의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었지만 아버지가 11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집안이 기울고 급기야는 어머님의 허드렛일과 봇짐장수일이 온 집안의 호구지책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놓였습니다. 누나들과 함께 어머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끼니를 굶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을 보낸 과거가 있었습니다.  

나 사장님의 26년간의 치열한 삶은 오늘날 oo상사를 업계에서 크게 신뢰받는 회사로 키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나 사장님을 만난 것은 6년 전쯤이었고 그때는 이미 버젓한 회사의 대표로서의 모습이었습니다. 나 사장님께 그렇게 척박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은 제가 꼬치꼬치 캐물어서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번듯한 사업을 일구었고 가정에서도 여유를 누릴만한 형편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함께하는 휴일을 가진 것이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휴일이 없으시도록 바쁘신 거예요?
"지난 세월에도 공휴일을 휴일로 맞을 만큼 제게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특히 올해 들어서는 책임감이 더욱 저를 짓누른 시간이었습니다. 본사와 창고를 옮기는 일을 계획하고 설계해야했고, 평일에는 고객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정상적으로 맞아야했고 휴일에 수천가지의 공구와 장비들을 옮겨야했습니다. 또한 목공사업을 새로 시작하기도 했고…."  

- 그렇게 무리를 하면 몸에 탈이 생기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감기약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몸살 한 번 앓아본 적이 없고요." 

- 6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병원에 가 본적이 없으시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번 일요일에 회사에 나가지 않은 것은 지난 밤에 일본 출장에서 막 돌아왔는데 너무 피곤하더라고요. 일본에서의 일정이 지나치게 타이트했거든요." 

- 이렇게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시고도 병원 한 번 안 가실 만큼 건강할 수 있는 비결이 있으세요?
"아플 틈이 없는데 어떻게 아프겠어요? 병도 뚫고 들어올 틈이 있어야 생기지요."  

"공부하다 죽어라!"
 
 형벌 같은 장좌불와의 수행을 마다 않았던 큰 스님들. 그 분들의 정진이 우리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유효함을 확인합니다.
형벌 같은 장좌불와의 수행을 마다 않았던 큰 스님들. 그 분들의 정진이 우리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유효함을 확인합니다. ⓒ 이안수

최근 몇 년 사이에 제게도 저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점점 더 절실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모티프원의 일반적이거나 고유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도 하루에 8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노동입니다. 하지만 저의 고유한 일과는 상관없지만 저 혹은 상대의 필요에 의해 다양한 사람들을 대면해야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뜻을 세워 진행하고 있는 일들도 만만치않은 시간을 필요로합니다. 주변의 변화를 관찰하고 촬영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낮 동안 혹은 저녁시간에 제게 일어나는 이런 모든 일들이 홀로 저 자신을 응시하는 사유의 시간이 없다면 한낱 범람한 강물에 휩쓸린 나무토막에 불과한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큰 스님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저를 경이롭게 한 것은 장좌불와(長坐不臥(장좌불와 : 눕거나 벽에 기대지 않고 앉아서 수행함)였습니다. 무엇이 이 분들을 몇 년간, 혹은 수십년간을 이렇게 치열한 형벌 같은 수행으로 내몰았는가? 

큰 스님의 수행에 갈급(渴急)했던 각각의 사정을 단지 짐작할 뿐입니다. 

부처님은 윤회에서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을 '맹구우목(盲龜遇木)'에 비유했습니다(잡아함경(雜阿含經)). 즉 깊은 바다 속에서 영겁으로 사는 눈 먼 거북이가 100년에 한 번씩 물위로 올라와 숨을 쉴 때 바다위에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 그 구멍에 목을 넣고 잠시 쉴 수 있는 확률입니다.  

또한 조갑상토(爪甲上土)로도 비유하셨습니다. '손톱 위의 흙'이란 뜻의 이 말은 부처님께서 손톱 위에 흙을 올려놓고 손톱 위의 이 흙과 발밑 대지의 흙 중에 어느 것이 많은지를 비구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시길 사람이 다시 인간계로 태어나기는 온 대지의 흙을 통틀어 손톱 위의 흙보다도 적다고 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인간'을 뜻하는 말로 '마눗사', '뿍깔라', '뿌리사' 등이 있습니다. '둘라밤'이라는 말도 인간을 뜻한다는데 '얻기 힘든 기회'라는 속뜻이 있다고 합니다.   

큰 스님들께서는 바로 인신난득(人身難得), 즉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어렵게 사람으로 태어난 기회에 대해 증득(證得)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장좌불와의 극한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구도의 궁극에 도달했던 분들이 남긴 말씀에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공부하다 죽어라!" 

또한 인간의 가장 큰 죄를 '인생을 낭비한 죄'로 꼽습니다. 

구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이며, 판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옳은 판결로 억울함을 면해주는 일이며 사업하는 사람에게 중한 것은 고객의 만족지수를 극대화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우룡 변호사나 나승대 사장에게서 장좌불와의 치열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다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에 대한 무서움입니다. 장좌불와의 마음으로 새벽까지 절대고독 속으로 저를 내몰아야겠다고 다시 절실한 마음을 고쳐서 세우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이우룡#나승대#장좌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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