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재수정 : 28일 오전 10시 30분]정치 9단을 넘어 정치 10단, 전략가, 청문회 저승사자….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지원 의원(70·전남 목포)에게 따라 붙는 별명들이다. 가깝게는 남북관계의 경색과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있고, 멀게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등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박 의원이 보는 정국은 어떤 모습일까?
27일 낮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박 의원과 기자 10여 명이 마주앉았다. 박 의원은 우선 박근혜 정부가 북한이 제안한 6·15 남북공동행사 개최에 대해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구태의연한 행태"라며 거부한 것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남남갈등을 핑계 삼아서 남북대화를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며 "그 정도의 자정능력은 우리 국민도 가졌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지난 4·24 재보선에서) 부산 영도가 아니라 서울 노원병에 출마해 당선된 것이 바로 '안철수식 새정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철수 신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5~6개 정도 지역에 후보를 내놓고 2개만 이겨도 안철수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내달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는 것과 관련 "청와대에서 '조용히 맞이하겠다'고 했는데, 머리가 참 좋은 것 같다"며 "역대 정권 중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뭐라도 하나 내놓지 못한 대통령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박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잘 처리할 것"이라며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 역풍이 모두 박 대통령에게 간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지원 의원과 기자들이 나눈 대화 중 상호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하거나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사항을 제외하고, 최대한 날 것 그대로 요약·정리한 것이다.
- 북한의 6.15 행사 공동 개최 제안에 대해"(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이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데, 지금 남남갈등이 뭐가 있나. 어느 사회나 진보와 보수는 있는 것인데, 극좌·극우라고 해서 '극'이 늘 문제이지, 갈등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갈등을 만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 중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전 청와대 대변인)이 더 심하지. (박근혜 정부가) 남남갈등을 핑계 삼아서 남북대화를 거부한 것은 잘못이다. 그 정도의 자정능력은 우리 국민도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꼭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 표명을 해야 한다.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에 대한 유혹을 절대 못 참는다. 만약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면 모든 게 끝장난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버릇을 잡겠다고 하는 것은 판단을 잘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북한을 달래가면서 핵을 무력화 시켜야 한다. 북에 시간주면 핵은 발전된다. 미·중·일도 대화하지만 당사국인 우리라면 민간 차원이라도 대화해야 한다. 그래서 대화론자(통일부나 외교부)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꼭 강경론자(육사, 군 출신들)에게 힘들 실어주기 때문에 실마리를 못 찾는 것이다."
- 6월 임시국회 전망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여당과 싸워서 이기라고 하고, 국민은 싸우지 말고 이기라고 한다. 민주당은 그야말로 중간에 끼어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야성을 먼저 보여주고 유연성을 보여야 하는데, 민주당은 늘 유연성부터 보여주고 야상을 보이려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한길 당 대표나 전병헌 원내대표가 앞으로도 계속 잘 해나갈지 지켜봐야 한다."
- 박근혜 정부 취임 100일을 맞았는데."청와대에서 "조용히 맞이하겠다"고 했는데, 머리가 참 좋은 것 같다. 솔직히 박근혜 정부에서 지금 뭘 내놓을 게 없는 거다. 역대 정권 중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뭐라도 하나 내놓지 못한 대통령이 있었나.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취임 초기부터 인사난맥상을 보이더니, 결국 100일을 맞았지만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는 것이다."
- 민주당 내 계파 청산을 위한 방안은?"권력을 가지고 타협 잘하는 새누리당에도 계파가 있는데, 입만 가지고 싸움만 하는 민주당에 계파가 없을 수 있나. 계파를 없애겠다는 사람이 늘 계파 활동을 제일 열심히 하더라. 계파를 없애려면 자기 측근부터 만나지 말아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말이 많아서 나중에 꼭 그 말이 밖으로 샌다. 전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나한테 도와달라고 전화를 해대던 사람들이 선거 끝나니까 전화 한 통 없다. 모 의원한테 '선거 끝나니까, 김한길 대표가 전화 한 통 없더라'고 했더니, 그 의원이 "저도 김 대표를 세 번 밖에 못 봤다"고 하더라. 그래서 '당신은 왜 세 번이나 봤느냐'고 물었는데, 그 의원은 계파니까 그나마 세 번이나 본 것이다. 그렇다고 김한길 대표가 잘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계파색이 제일 강한 게 친노 아니냐. 친노가 두 번 잡아서 총·대선 졌으니까, 이번에는 당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가, (친노로부터) 김한길 대표 편든다는 얘기 들었다. 그런데 김한길이 대표 한다고 당이 망하나. 지금은 어떤 사람이 대표를 해도 어렵다. 김한길·전병헌 대표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죽는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은 회생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내부에서까지 당 대표를 공격을 하면 민주당은 완전히 죽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침묵이라도 해야 한다."
-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정치 세력화에 대한 전망은?"나는 원래 안철수의 정치 세력화에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지난 4·24 재보선 때 부산(영도)에서 출마하지 않고 서울 노원병에서 출마한 것은 잘한 것이다. 그게 바로 안철수식 새정치다. 부산 영도에 출마했다가 김무성을 상대로 선거에서 졌다면 이후 안철수는 존재감이 사라졌을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 속성상)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가 노원병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이 된 것은 잘 한 것이다. 그렇게 (선거에서) 이기는 쪽으로 가는 것이 바로 안철수식 새정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거 과정에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쪽과 연대를 했어야 했다. 후보단일화를 했어도 당연히 안철수가 됐을 것이다. 그 고리를 가지고 야당들과 연대의 문을 열어놓고 10월 재보선까지 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10월 재보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야당 후보 난립으로 힘들어진다. 최장집 (서울대) 교수가 안철수 쪽으로 가셨는데, 그 분은 원래 정당 강화론자로서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왔기 때문에 창당으로 가지 않겠느냐.
안철수 신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올인할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박원순 시장이 있으니까. 그럼 차기 대선을 노리는 김문수가 있고, 민주당에서도 누구누구 내놓을 것이다. 광주·전남과 전북에서는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경쟁을 할 것이다(안철수 신당은). 또 영남권에서 한 곳 정도는 후보를 낼 것이다. 그렇게 5~6개 정도 지역에 후보를 내놓고 2개만 이겨도 안철수 세상이 된다.
광주는 대선 후에 여론이 다시 민주당 쪽으로 넘어 왔었다. 대선 끝나고 보니까, 안철수가 별로라는 여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난 16일 (민주당이) 광주에서 '광주선언'이라는 것을 왜 하나. 좋은 점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안철수를 키워준 것이다. 언론에서도 다 그렇게 쓰지 않았나. 안철수는 계속 민주당과는 같이 안 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어렵지만 민주당은 이제 김한길 대표가 잘 해서, 안철수 신당과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 광주시장, 전남북 도지사에 안철수의 사람을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게 당당하게 승부해서 이겨야 하고, 질 것은 지고, 양보할 것이 있으면 정말 아름답게 양보해야 한다."
-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4대강 사업"박근혜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잘 처리할 것이다.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 역풍이 모두 박 대통령에게 간다. 지도자는 때로 잔인한 결정을 해야 한다. 원세훈 전 원장은 (사법처리를 피해가기) 어렵지 않겠나. 정권이 바뀌면 비주류가 주류에 대한 보복을 철저하게 하는 곳이 바로 검찰과 국정원이다. 정치보복이 가장 세게 이뤄지는 곳이 검찰과 국정원이다."
- 개혁공천은 어떻게?"최고의 개혁공천은 이른바 '3김 시대'에 이뤄졌다. (김대중 총재 시절) 정동영·정세균·천정배·김한길 등 모두 내가 공천 작업을 했던 인사들이다. 이 분들도 지금처럼 경선으로 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3김 시대' 이후 공천을 해서 당선까지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이제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았나. 청와대에 들어가면 사자우리에 갇혀 있는 사자가 된다. 청와대 밖에 있을 때와 달리 전국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젠 공천에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안철수식 새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당선 될 수 있는 사람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게 새정치고 개혁공천이다."
-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과 '박지원 기획설'의 진상은?"트위터에서 계속 얻어맞으면서도 하루에 10번 이상 글을 올린다. 얻어맞는 것 두려워하면 안 된다. 윤창중 사건에 대해서도 제가 얼마나 많이 올렸나. 그동안 악성 루머로 피해를 많이 봤다.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데, 제 아들이 미국 시민권자여서 군 면제를 받았다는 얘기도 나왔었다. 이번에도 말도 안 되는 (박지원 기획설) 얘기가 나왔다. 제가 박 대통령 방미 기간 중에 우연의 일치로 아내와 같이 미국에 있는 딸을 방문 중이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7일 저녁 8일 새벽에 그런 일(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이 일어났는데, 8일 오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들리더라. 그러다가 CBS에서 먼저 보도가 됐고, 9일 오후 2시 제가 트위터에 그 사실을 맨 먼저 올렸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 봇물이 터졌고, 더 큰 문제는 현행범을 대사관에서 도피 귀국을 시킨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고 지적하면서 트위터에다 올렸는데, 그게 한국시간으로는 10일 새벽 3시다.
그리고 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중이었는데, 트위터에 보니까, '이 새끼가 박근혜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잠도 안 자고 대사관에 프락치를 넣어서 이남기(전 청와대 홍보수석)와 짜고 한 거다'라는 말이 돌더라. 그리고 윤창중을 고소한 그분은 (박지원의) 현지처라는 루머가 나왔다. 이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저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만 전지전능한 줄 알았는데, 박지원이도 전지전능한 사람을 만들어놨더라.(웃음)
그리고 주미 (한국)대사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안호영 신임 주미대사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방미 중 벌어진 윤창준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수습방안에 대해 "가능한 대로 원만히 해결될 것이란 원칙적 이야기만 드리겠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대사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미국 현지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대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