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나 경과세국 관련 과세 제도 같은 법 제도들이 먼저 실효성 있게 정비돼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행정이 따라갈 수 있지요."(김유찬 홍익대 교수)시민사회 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조세피난처를 악용한 역외탈세 근절책으로 관련 법규의 재정비를 꼽았다. 29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역외탈세 근절 방안 긴급 토론회'에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미 일어난 탈세를 적발하기 위한 대책 이외에도 다양한 제언이 이어졌다. 한시적으로 세율을 감면해주는 '햇볕정책'을 이용해 이미 조세피난처에 가 있는 자금을 국내 경제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다. 또한 최근 역외탈세 적발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세청의 적극적인 조사를 강제하기 위해 청와대 직속으로 역외탈세 적발 기능을 가진 별도 기구를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낮은 세율로 한국으로 들여올 수 있게..."'햇볕정책'도 필요"
역외탈세는 지난 22일 <뉴스타파>가 세계 각지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 245명의 명단을 확보했다고 발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주제다. 그러나 이미 지난 2009년부터 관련 주무부처인 국세청에서 역외탈세와 관련된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해왔을 정도로 해묵은 문제이기도 하다.
강병구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은 "조세도피처(조세피난처)의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 문제와도 배치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복지정책에 필요한 재원 135조 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내세우고 있는데 그 맥락에서 볼 때 역외탈세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아시아 대표는 역외탈세 문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세계 각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는 조세정의네트워크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부자들이 조세피난처에 숨겨두고 있는 돈은 약 7790억 달러, 한화로 888조 원 상당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대표는 "2011년 러시아 연방은행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납세자(개인 및 법인)가 가진 해외 계좌가 20만 개가 넘는데 이중 50% 이상이 현지 영업 흔적이 없는데 여기에 예치된 자금이 1년 러시아 예산이 절반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EU의 경우는 GDP의 2~3% 정도가, 미국의 경우 조세피난처에 예치된 미국 1000대 다국적기업 자금이 1조7000억 달러가량"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좋은 사례들에 대해 소개했다. 한국이 독단적으로 하는 방안이든 여러 국가간 공조가 필요한 방법이든 먼저 역외탈세 방지책을 실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해외금융기관 계좌신고제(FTACA)'와 '포괄적정보제출 명령'의 두 가지 법제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금융기관 계좌신고제는 2010년부터 도입한 제도로 이 법에 따르면 모든 미국인들은 만 달러 이상 예치된 해외 금융계좌를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외국 금융기관들은 5만 달러 이상 예치된 미국 기업의 금융계좌에 대한 정보를 국세청에 내야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외국 금융기관은 미국에서 벌얻르인 금융수익의 30%를 벌금으로 내게끔 돼 있다.
"'햇볕정책'도 고려해볼 만 합니다. 미국은 최대 과세가 35%인데 2004년에 미국 연방정부가 조세특령을 줘서 5% 정도 세율로 해외자금을 들여올 수 있게 했거든요. 그때 3700억 달러 정도가 미국으로 들어왔지요."박용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부소장은 "한국 역시 자진신고 환경을 좀 더 엄격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은 거주자 또는 내국법인이 보유한 해외금융계좌 잔액의 합이 1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 그 금융계좌정보를 관할 세무서에 신고하는 해외계좌 신고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박 부소장은 "역외 발생탈세는 조사가 어려우니 자진신고 환경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1만 달러(1100만 원) 수준까지 낮추지는 않더라도 1억 원까지는 기준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3~4년 된 해외 법인, 탈세 가능성 높아"국세청 관련 사건 취재를 여러 건 경험한 <신동아> 한상진 기자는 "만든 지 3~4년이 지나면 없어지는 해외 법인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컨설팅이나 해외시장을 개척한다는 명목으로 해외 법인을 만들고는 몇 백만달러씩 투자하다가 갑자기 폐업을 하는데 그러고 나면 투자금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돈들은 해외에서 콘도미니엄 사고, 부동산 사는데 쓰여졌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덧붙였다.
"이런 기업들은 현지에서 영업 흔적이 거의 없어요. 대기업 오너들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기업들이 많고요. 효성 아메리카 같은 기업은 폐업하기 일주일 전까지 '투자'라는 명목으로 수백만 달러가 건너갔어요. "이 기자는 "국세청에 왜 조사 안하느냐고 물어보면 '해외 과세권이 미치지 않는 사업에 대해서 해명을 요구할 방법이 없다'고 답변한다"며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이런 측면과 관련해 과세 당국의 노력을 촉구했다. 현행법 중 경과세국 관련 과세제도를 이용하면 국세청이 포괄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데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과세국 과세제도란 국내 법인이나 개인이 법인세가 15% 이하인 해외에 법인을 만들어 소득을 쌓아두고 있을 경우 그것을 국내인에 배당한 것으로 간주해서 과세하는 제도를 말한다.
김 교수는 "요즘도 조세피난처들과 정보교환 협정을 맺어서 과세 노력을 한다고 하고 있는데 조세피난처 자체에서 자국에서 설립되는 회사에 정보를 요구하는 게 없다"며 "정보가 하나도 없는데 교환협정을 맺어서 뭘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국세청의 (역외탈세 적발) 활동을 어떻게 강제할 것이냐가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몇 년 전부터 역외탈세 적발을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실적을 보면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적발된 사례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홍 연구위원은 "역외탈세 해결 안 되면 국민정서상 증세는 거의 불가능해진다"며 "국세청과 같은 일을 하는 소규모 기관을 청와대 직속으로 두고 중복으로 같은 일을 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니까) 국세청 통제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