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가 30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면서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과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를 압수해 간 것에 대해 "그럼 전태일 동상 앞에 꽃을 바친 박근혜는 이적 행위를 한 건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 교수는 <전태일 평전>과 <의자놀이>는 오히려 경찰이 열독해야 할 '필독서'라며 권장하면서, "이런 1970년대 수준의 경찰에게, 경찰숙원과제인 수사권 독립을 부여하긴 참 난감한 일"이라고 경찰에 면박을 줬다.
사건은 이렇다.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28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전국공무원노조 경기지역본부 이홍용(47) 사무처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다. 그런데 경찰이 <전태일 평전>과 <의자놀이> 등을 압수해 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당장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김중남)가 반발했다. 이날 성명을 통해 "경찰이 이홍용 사무처장을 급습해 몸수색을 실시했고, 영장을 확인한 후 변호사 조력을 받겠다고 요구했으나 이를 묵살하고, 경찰은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 등을 입증하겠다며 집과 사무실, 그리고 개인휴대폰까지 압수하는 폭거를 자행했다"며 즉각 수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공무원노조는 "경찰이 평온한 가정집에 들이닥쳐 압수해간 물건은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에 정식으로 등록된 출판물이 대부분"이라며 "<전태일 평전> 등의 압수 출판물들이 국가보안법 혐의의 증거물이라면 대한민국 자체가 이적단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와 관련,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28일 트위터에 "경찰, <전태일 평전>, 공지영의 <의자놀이> 등을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혐의로 압수했다고"라며 "이런 1970년대 수준의 경찰에게, 수사권독립(경찰숙원과제)을 부여하긴 참 난감한 일"이라고 경찰에 면박을 줬다.
한인섭 교수는 30일에도 트위터에 "경찰이 <전태일 평전>(조영래 저)을 이적표현물 혐의로 압수했다는데~"라며 "그럼 전태일 동상 앞에 꽃을 바친 박근혜는 이적행위를 한 건가. 신고해야 하나?"라고 경찰에 곤혹스런 일침을 가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후보는 작년 8월28일 전태일재단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유족의 반발로 무산되자, 평화시장 앞 전태일 열사를 기리며 동상 앞에 국화 꽃다발을 놓았다.
한 교수는 "전태일의 치열했던 삶과, 조영래의 심혼이 집중된 역저 중의 역저. 그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라고 씁쓸해하며 "경찰은~무슨 짓을 한 것인가. 압수한 자들은, 그 책을 필히 읽어보시길"라고 질타했다.
그는 또 "압수한 경찰에 대해, 가족과 출판사 등 1차 이해 당사자들은 정신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할 만. 독자와 국민들이 입은 불쾌감과 피해감에 대해서는 어떻게?"라고 개탄했다.
한 교수는 "<전태일 평전>, <의자놀이>~ 이 두 책은 경찰이 시민 친화적 이해심을 갖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권장하며 "집회시위, 노동관련 경찰에겐 특히나 더. 열독하세요"라고 충고했다.
한편, <전태일 평전>은 인권변호사의 대부인 조영래 변호사의 역저.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20대 재단노동자 전태일은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산화했다. 그때 나이 22세.
조 변호사는 이런 전태일 열사의 노동운동의 삶과 죽음을 조명했다. <전태일 평전>은 가히 국민도서라 불릴 정도로 많이 읽혀 설명이 필요 없는 책이다. 전태일 열사에 대해서는 영화와 수많은 연극으로 회자되고 있다.
아울러 조영래 변호사는 1965년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천재지만 판사·검사라는 보장된 길이 아닌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90년 12월 마흔 셋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 변호사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과 함께 법조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이다.
작년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제조기'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도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
공지영 작가의 첫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는 2009년 쌍용자동차 2646명의 해고 발표 이후 시작된 77일간의 뜨거운 파업의 순간부터 22번째 죽음까지 작가적 양심으로 써내려간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담은 책.
인간사냥과도 같은 경찰의 진압으로 파업이 끝나고, 어제까지 함께 울고 웃으며 일했던 동료들이 의자에서 쫓겨난 자와 의자를 잡은 자 두 편으로 나뉘게 되기까지의 잔혹한 의자놀이와 연이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