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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규 의원
최우규 의원 ⓒ 이민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니까…. 가정통신문에 있는 아버지 학력난을 채워야 하는데, 사실 그대로 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요. 집 사람은 대학을 나왔는데…. 참 난감하더라고요. 이게 느지막하게 공부를 시작한 결정적 계기지요. 물론, 단 한 번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린 적은 없었어요. 늘 갈증을 느끼고 있었지요."

경기도 의회 최우규 의원이 지난 95년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이유다. 지난 5월 27일 오전 10시경, 안양시청 4층에 있는 도의원 연락 사무소에서 최우규 의원을 만났다. '초선의원 지방정치 경험담'을 듣기 위한 만남이었는데, 엉뚱하게도 대화 초기에 잠시 한담처럼 나눈 '살아온 이야기'에 꽂히고 말았다. 이유는? 흥미롭기 때문이다.

소년 최우규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일찌감치 학업을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삼십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검정고시에 도전하게 된다. 그의 공부 실력은 놀라웠다. 단 1년만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논스톱 패스했다. 나이 먹고 공부를 하니, 어렸을 때 보다 훨씬 쉬웠다고 한다. 나이를 먹고 공부하면 굉장히 힘들다는 '일반적 사실'을 뒤집는 놀라운 발언 이었다. 아니, 그 보다는 새롭고 놀라운 '학설'이라고 해야 하나.

"옛날에는 이해가 안 가던 게 나이를 먹고 하니까 쉽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그렇게 어렵던 구구단 8단이 6학년 때 하면 참 쉬운 것과 같은 원리죠. 나이를 먹고 (공부를) 하니까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어요. 어떤 책을 보던 이해가 참 빨랐어요. 그래서 내친김에 그 이듬해인 96년도에 대학에 입학했고,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가게 된 거죠. 그 당시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농담 반 진담 반 '인간승리'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

이렇게 쭉 공부를 해서 그는 2002년에 석사학위, 2005년에 박사 학위(경제학)를 받았다. 2002년, 석사 학위를 받은 이후부터는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가정 통신문에 있는 학부모 학력난이 두려워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 단 7년 만에 대학 강단에 섰으니, 그야말로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 이후 그의 직업은 지난 2010년 경기도의원에 당선 될 때까지 쭉 대학 교수였다.

이 정도면 '인간승리'라고 할 만 한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엄청난 에너지가 나왔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 묻다보니 '어떤 일을 하던 최선을 다 하자'라는 그의 좌우명이 귀에 딱 걸렸다.

"좌우명이 있기는 한데, 글로 써서 벽에 걸어 놓은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늘 이 말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애들 이름도 큰애는 '선' 둘째는 '다해' 셋째는 '하라'입니다. 제 성을 앞에 붙여 놓으면 '최선을 다해 하라'이지요. 저는 무슨 일을 하던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늘 아쉬움은 남지만,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 했는데도 늘 아쉬움은 남지요. 왜 공부를 좀 더 일찍 시작 하지 못했을까, 정치를 왜 좀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지요."

도의원 권한,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데 놀라

 경기도청 노조, 베스트위원 시상식
경기도청 노조, 베스트위원 시상식 ⓒ 경기도의회

3년간의 지방정치 경험담은 '살아온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 시작됐다. 최우규 의원은 도의원으로 살아온 지난 3년이 '정치를 왜 좀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도 의원이 되기 전에는, 도의원 권한이 이렇게 큰지를 몰랐어요. 밖에서 생각했던 것 보다 권한이 훨씬 크다는데 일단 놀라면서 도의원 생활을 시작했지요. 조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예산을 심의할 수 있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권한입니다. 권한이 크다 보니까 공부 할 것도 참 많았어요. 업무 파악하는 데만 2년이 걸린 것 같아요. 배우느라 정신없었고, 일에 치여서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왜 좀 더 정치를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아쉬울 정도로 소중한 시간 이었습니다."

3년간의 의정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상급식 예산을 통과 시키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무상급식 예산을 세워주는 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도와 경기도의회 새누리당 의원들 반대에 부딪쳐서 참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은 통과시킬 수 있었는데, 예산이 막 통과되는 순간에 '내가 도의원이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주당 의원들이 합심해서 이루어 낸 성과죠."

그의 좌우명대로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에 3년간의 의정 활동 중 후회가 되는 일은 없지만 아쉬운 순간은 있었다고 한다. 지난 5월 17일 임시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경기도 교육청이 요청한 학교용지분담금예산안을 통과 시키는 순간 이었다.

"학교용지분담금은 경기도가 교육청에 줘야 할 돈입니다. 주면 되는데 안 주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김문수 도지사하고 허재안 도의회 의장이 각서까지 쓰면서 매 년 얼마씩 주기로 한 것인데, 새누리당 의원들이 예산 통과를 반대한다며 퇴장을 해 버렸어요. 제가 예결 위원장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 해 보아도 어이가 없습니다. 정치가 이러면 안 되는데…. 참 아쉽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 또한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

"꾸준히 해오긴 했지만, 너무 바빠서 주민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요. 그게 좀 아쉽지요, 주민들이 하는 소리를 귀담아 잘 들은 다음에 그 의견을 도정에 반영해야 하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주민들과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의원들도 이 문제를 참 힘들어 합니다. 도의회에 나와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주민들 얘기 들을 시간이 없고, 주민들 얘기만 열심히 듣다보면 의원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게 되고, 이거 적절하게 조절 하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최우규 의원은 상복이 많다. 안양시는 감사패를, 경기도 교육청은 감사장을, 한국지방자치 학회는 우수조례 우수상을 주었고, 경기도청 노조는 그를 베스트 위원으로 뽑았다.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좋게 봐 줘서 그런 것 같다"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하하 비결은 뭐…. 열심히 했다고 인정해줬다는 게 기분 좋을 뿐이죠. 교육청에서는 무상급식, 혁신학교 잘 됐다고 평가 하면서 그 공로 인정해 준 것이고. 제가 무상급식 혁신학교 추진 특별 위원장을 했거든요. 다른 상도 모두 비슷한 이유입니다. 우수 조례상은 광릉 숲 지원 조례에 대해 나름대로 좋게 평가를 해서 받았는데, 하여간 뭐 심사위원들이 좋게 봤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지난 3년간의 의정활동을 최 의원은 나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각 기관에서 앞 다투어 상을 준 것을 보니 지난 3년 간 꽤 많은 성취를 이룬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성취 를 이룬 바탕에는 '최선을 다 한다'는 그의 좌우명이 있었다. 거기에, 좌우명으로 아이들 이름을 지을 정도의 적극성이 더해져 지금의 최우규를 만들었을 것이다. 초선의원 최우규의 남은 임기 1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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