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국의 붉은별> 표지
▲ <중국의 붉은별> 표지 <중국의 붉은별> 표지
ⓒ 두레

관련사진보기

"모험, 탐사, 발견, 인간의 용기와 연약함, 환희와 승리, 고통, 희생, 충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점철하는 수만 명 젊은이들의 꺼질 줄 모르는 열정과 결코 좌절하지 않는 희망, 그리고 그저 경이롭기만 한 혁명적 낙관주의 이것들 모두가, 아니 그 이상의 것들이 근대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웅장한 이 장정의 역사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애드거 스노우)

1934년 국민당군은 장시성에 자리 잡은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을 봉쇄하고 지구전을 벌였다. 수세에 몰린 홍군은 필사적인 후퇴 전술로 중국 대륙을 9000여 km를 돌아 산시성에 이르는 대장정을 감행, 1936년 옌안에 새로운 근거지를 찾게 된다. 같은 해 31세의 미국 언론인 에드거 스노우는 홀홀단신으로 옌안으로 잠입했다. 놀라운 기자 정신이었다.

스노우를 처음 맞이한 홍군의 지도자는 훗날 중화인민공화국의 1대 총리가 되는 저우언라이다. 그는 홍구의 '첫 외신기자'에게 여행계획을 직접 짜주는 등 협조적이었다. 그 협조 아래 스노우는 마오쩌둥 등 홍군의 지도자뿐 아니라 이름 없는 홍군들과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몇 달간이 관찰기는 이 책으로 정리됐다. 이 르포는 혼자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입체적이고 풍부한 데다가 <삼국지>를 읽는 것처럼 호방한 재미가 넘친다.

마오쩌둥과 홍군의 지도자들의 헌신

그런데 우리는 마오쩌둥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오는 한국전쟁에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수백만의 군대를 파병했고, 어처구니없는 정책으로 대기근을 불러와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마오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은 중국공산당으로부터도 '극좌적 오류'라는 평가를 들었을 만큼 철저히 실패했고 중국인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9000km 대장정을 이끈 '혁명가 마오'의 모습이 생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악인의 삶이라고 늘 악으로 가득 차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대장정을 이끌던 혁명가 마오는 이상과 현실감각을 두루 갖춘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스노우와의 마오의 회견문을 보면 이 당시 마오는 홍군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어떻게 국공내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지도 알고 있었다.

마오와 홍군 지도자는 그들의 혁명에 헌신하고 희생했다. 마오의 첫 부인 양카이후이는 백군에 잡혀 총살당했다. 마오와 둘째 부인 허쯔전 사이의 다섯 아이 중 네 명이 사망하기도 한다. 마오쩌둥·저우언라이·팡더화이 등은 사병과 똑같이 생활했고 모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홍군 장교들의 헌신도 대단했다. 홍군 장교들은 "진격하라"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 국민당을 지도했던 미국장교 조지프 스틸웰의 증언이다.

홍군 지도자들의 대범함과 조직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팡더화이 사령관은 백군이 뿌린 삐라들을 수 천장 모아서 '이면지'로 활용했다. 그런데 그 '삐라'의 내용이 마오쩌둥·팡더화이 등을 체포하면 상금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팡더화이는 그 뒷장에 자신들의 선전문을 인쇄했다. 웬만한 자신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스노우가 만난 이름 없는 홍군들을 보면 불가능한 일 같지만은 않다.

홍군이 현대 중국을 보면 뭐라고 할까

스노우는 홍소귀(10대 홍군을 뜻하는 말로 붉고 어린 귀신이라는 의미)들에게서 중국의 희망을 봤다. 그는 "소귀들은 어떻게 보아도 크게 잘못된 점을 찾기 어려운 붉은 중국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였다"며 "그들을 보면 중국이 결코 희망 없는 나라가 아니며, 어떤 나라도 이런 젊은이들이 있으면 결코 절망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고 적었다.

스노우가 만난 한 홍소귀의 나이는 고작 15세였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이미 4년 전부터 홍군으로 싸웠다는 점이다. 이 홍소귀는 "홍군을 좋아하느냐구요? 물론 좋아하지요. 홍군이 그들(농민)에게 땅을 주고, 지주와 세금징수원 같은 착취자들을 몰아내주니까요"라고 말했다. 스노우에 따르면 이 소년들은 대부분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고 노예들도 있었는데 모두 자기 의지로 홍군에 가담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매우 행복한 듯했다. 또 아마도 이들은 의식에 눈뜸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중국 프롤레타리아트들로서는 내가 만난 최초의 집단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순종 속에서 만족을 구하는 일이 보편화되어 있는 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을 통해 얻는 더 깊은 의미의 만족감은 좀체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에서 살게 된 지 7년 만에 스노우는 이렇게 적었다. 마오는 스노우에게 "홍군과 소비에트 정부가 그들 지역 내에 있는 모든 인민을 바위덩이처럼 단단하게 결속시킨 탓, 자신의 이익과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는 탓"에 홍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군의 승리는 기적이었지만 그들은 그 기적을 위한 포석을 하나하나 깔아왔다. 홍군은 인민의 자발적인 의지를 끌어낸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래서 홍군은 모병을 고집했고 또 스노우가 "청교도적이다"라고 평할 만큼 엄격한 규율을 지켰다. 백군이 마을을 일상적으로 소개하고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과 비교해서는 홍군은 대민접촉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 덕분에 홍군은 9000여 km를 이동하는 와중에서 중국인들의 신망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대장정이 끝난 지 77년이 흘렀다. 오늘의 중국은 홍군들이 꿈꿨던 중국과 한참 거리가 멀다. 현재 중국은 빈부격차·인권탄압이 가장 심한 국가다. 인민의 국가라기에는 무색한 점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오쩌둥과 대장정은 중국사회의 통합기제로 작용한다.

홍콩 <성도일보>에 따르면 중국은 12월 26일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을 맞아 인민대회당에서 추모행사를 열 계획이며,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 자리를 빌려 마오쩌둥 사상을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외부에 밝힐 것이라고 한다. 좋게 보면 중국인들이 아직도 홍군의 이상을 갖고 있다는 뜻이고 나쁘게 보면 철저한 기만일 것이다.


중국의 붉은 별 - 개정판

에드가 스노우 지음, 홍수원 외 옮김, 두레(2013)


태그:#중국의붉은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