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림살이 좀 어떠십니까? 정부는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서민은 더 살기 어려워 졌습니다. 금융권은 탐욕의 극치를 보이고 있고, 은행의 은밀한 돈벌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추노'에 가까운 채권 양수시장은 또 어떻습니까. <제윤경의 희망살림>은 이런 문제들은 짚어보고, 경제 뉴스를 제대로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서민 중심의 '희망적' 경제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
국민행복기금 출범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바꿔드림론에 대한 관심이 크다. 캠코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 출범 이후 최근 하루 평균 바꿔드림론 신청자가 최고 64%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바꿔드림론은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 상품을 연 8~12%의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서민금융제도이다.
카드론이나 저축은행 등의 이자율이 연 30% 전후이고 대부업 대출이 연 39%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도 안 되는 금리다. 문제는 이런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하려면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다. 4000만 원 이하의 소득자가 기존 대출을 6개월간 성실히 상환해야만 4000만 원까지 이용 가능하다.
금융위원회는 이 조건에 대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서민금융 부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사람들의 빚을 악성화시키고, 서민금융이 필요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등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서민금융의 비현실성남편과 사별 후 생계를 위해 보험영업을 하는 김씨는 바꿔드림론과 햇살론 등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하려다 최근 포기했다. 그녀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고 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그녀의 영업 소득은 월 약 200여만 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교육비 등을 감당하기도 어렵다. 대학생 자녀에게는 스스로 아르바이트와 장학금, 학자금 대출 등으로 등록금을 마련하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등학생 한 명에게 들어가는 등록금과 각종 참고서 비용, 두 아이의 용돈으로 소득의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다. 남은 절반으로 영업에 필요한 비용과 생활비를 쓰니 매월 카드결제 비용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카드 돌려막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빚이 조금씩 늘었다. 정신차리고 계산해 보니 어느새 고금리 대부업체에게만 15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 신분의 영업직이기 때문에 신용이 높을 리 없다. 카드결제금 연체 공포 탓에 TV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대부업체에 전화 걸어 몇 번 대출을 받았다. 대부업체 대출을 이용하는 채무자들이 대개 그렇듯, 한 번 대출을 이용하면 고금리 이자 탓에 또 대출 받는 악순환에 빠진다. 김씨도 처음에는 200만 원 가량 빌렸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금융비용 지출이 늘었다. 결국 생활비가 부족해졌다.
한두 달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이게 막히면 다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일이 반복됐다. 바꿔드림론을 이용해 이자 부담을 줄이려 서민금융제도의 문을 두드렸지만 본인 현실과 맞지 않는 조건이 문제였다. 6개월 이내 고금리 대출을 추가로 받은 적이 있으면 이용할 수 없다. 어떤 고금리 대출이든 적어도 6개월간 성실히 납부해야 이용 대상이 된다.
햇살론 쪽을 알아봤다. 이번엔 영업 소득에 비해 기존 대출이 과하다는 이유로 이용할 수 없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상담중 자주 만난다. 고금리 신용대출 4000만 원을 이용한 어느 맞벌이 가정이 있다. 남편 회사 임금 체불로 생긴 빚 탓에 서민금융 문을 두드렸다. 매월 금융비용 지출이 150여만 원, 부부 맞벌이 소득이 월 400여만 원이기 때문에 이자율만 낮으면 부채 상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도 '6개월 룰'에 걸리고 또 소득도 높아 이용이 불가능했다.
저소득이면서 대부업체 대출을 잘 갚으라고?결국 소득은 낮고 고금리 대출을 잘 갚는 사람만 바꿔드림론이나 햇살론을 이용할 수 있다. 생활비가 부족해 고금리 대출을 쓸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중에서 살인적인 고금리를 잘 갚는 사람만 골라 금리를 낮춰주겠다는 이야기다. 언뜻 서민금융 기금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조처 보이지만 비현실적인 설계일 수밖에 없다.
우선 소득 창출 능력이 낮은 사람에게 고금리 대출을 어떻게든 버티라고 주문하고 있다. 앞 사례로 따지면 교육비를 제외한 가처분 소득의 절반을 대출 이자로 지출하면서 6개월간 버티라는 이야기다. 고금리 대출 부담을 완화해 주겠다는 애초 취지에서 한참 벗어난 조건이다. 오히려 대부업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또다른 문제는 소득창출 능력은 있으나 고금리 대출로 부채가 악성화되는 사람을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켰다는 점이다. 당장의 월 소득이 4000만 원 이상이어도 질병 등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 금리 부담을 낮춰 주면 가계 재정이 안정되고 서민금융 기금의 부실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서민금융은 '서민'이라는 이름에 갇혀 '소득 불안정'을 처음부터 계산에 넣지 않는 우를 범했다. 결국 서민금융의 이런 비현실적인 조건은 이용 대상을 협소하게 만들거나 기금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부실하거나 실효성 없거나이런 이유 탓에 서민금융은 이용 실적이 저조하거나, 실적을 늘리면 기금이 부실해지는 함정에 빠져있다. 서민금융 상품 중에서도 은행의 '새희망 홀씨' 대출은 다른 서민금융 상품에 비해 상환능력을 까다롭게 심사한다. 그 결과 실적은 저조하지만 연체율은 2%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부실이 덜하다.
그와 비교해 햇살론과 바꿔드림론은 일정 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상환능력을 은행보다 느슨하게 살핀다. 그 결과 연체율이 햇살론은 6%, 바꿔드림론은 10%에 달한다. 기금의 부실도 문제지만 마지막 보루로 서민금융을 이용했을 사람들이 그 대출조차 연체 할 상황에 놓였을 때의 절망감을 생각한다면 높은 연체율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다.
이제라도 서민금융의 형식적인 조건을 걷어내야 한다. 좀 더 채무자 우호적인 상담 서비스를 광범위하게 제공하면서 맞춤형 채무 조정 프로그램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금은 기금대로 부실화 되고, 채무자는 채무자 대로 악성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대책을 무작정 유지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소득 창출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게는 서민금융이 필요한 게 아니라 과감한 채무 감면, 즉 법원의 파산과 회생의 문턱을 낮춰 주어야 한다. 서민금융은 소득창출 능력은 있으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고금리 대출에 허덕이는 채무자들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