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봄, 피츠버그에 살고 있는 프랭크 터컬리(63)는 자살을 시도했다. 은퇴 후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카드빚에 허덕이면서 살아가던 그는 우울증, 콜레스테롤, 당뇨, 고혈압 등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한 이유를 '사회적 고립'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건 제가 젊은 시절 꿈꾸던 삶이 아니에요. 그때는 사람들이 서로 맞추면서 살아가고, 서로를 도우려고 했어요. 빈부격차도 크지 않았죠. 저는 그런 삶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이크 머레이는 자신의 49번째 생일이 지난 지 이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던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의 부인 베키는 마이크를 '완벽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항상 잘 했어요. 학교에서는 올A를 받았죠. 무엇을 하든, 그는 잘 했어요." 하지만 2004년, 마이크가 허리를 다치면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베키가 말했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그는 부쩍 우울해했어요. 진통제가 머릿속을 바꾸는 거예요. 그는 스스로를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리즈 스탠드의 53세 친구도 2년 전, 자살을 했다. 집은 물에 잠겼고 수리가 필요했다. 발목에는 통증이 있었고, 체중 때문에 고통은 가중됐다. 배우자를 찾으려했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다. 리즈는 "모든 것이 폭발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좋은 시절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충격이었죠. 모든 게 계속해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프랭크, 마이크 그리고 리즈의 친구. 세 사람의 공통점은 '베이비부머' 세대라는 점이다.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인 1946~1964년에 태어난 이들(48~66세)을 의미한다.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가 지난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살률이 최근 10년 간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1950~1960년대 '화려한 시절', 오히려 큰 절망감1999~2000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 변화 추이를 보면 50~54세는 1999년 10만 명당 13.4명에서 2010년 19.9명으로 10년 사이 48.4% 늘어났고, 55~59세는 10만 명당 12.8명(1999년)에서 19.1명(2010년)으로 49.1% 증가했다. 이는 35~39세가 인구 10만 명당 14.4%(199년)에서 15.3%(2010년)으로 6.4% 늘어난 것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다.
특히 50대 남성의 자살률은 1999년 인구 10만 명당 20명에서 인구 10만 명당 30명(2010년)으로 50% 가까이 높아졌다. 60대 여성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명(1999년)에서 7명(2010년)으로 60% 증가했다. 인종별로는 백인이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010년 22.3명으로 가장 높았고, 10년간 자살률 변화는 미국 원주민, 알라스카인이 1999년 인구 10만 명당 11.2명에서 2010년에는 18.5명으로 65.2% 증가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살률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베이비부머의 세대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4일(현지시각) 전했다.
'나는 늙기 전에 죽고 싶어.' 1960년대, 큰 인기를 누렸던 밴드 '더 후'의 노래 '마이제너레이션'에 나오는 가사다. 이 시기 청년시절을 보낸 베이비부머 세대는 "젊음 지향적"(밥 나이트, 남 캘리포니아 대학 노인학·심리학 교수)이었다. 밥 나이트는 "우리는 다른 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면서 "많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귀가 잘 안 들리거나, 눈이 침침해지는 증상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50년대, 1960년대에는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다. 미국은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모든 가능성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은 끝났고, 소아마비 백신, 항생물질 등 '의학 혁명'은 모든 질병과 장애를 없애줄 것처럼 보였다. 경구피임약은 '성 혁명'을 가져왔고, 경제는 발전했다. 베이비부머들은 나이가 들면서 히피, 페미니스트, 반전주의자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수용했다. 자유가 흘러 넘쳤다.
이러한 '화려한 시절'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나이가 들면서 겪는 '퇴행'을 받아들이기 힘들도록 만들었다. 펜실베니아 크로저-키스톤 가정의학 프로그램에서 행동 과학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배리 제이콥스는 말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 있었다.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실현되지 않았을 때, 그들은 더 큰 절망감을 느꼈다." '끼인 세대'... 비만,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우울증 겪어 베이비부머 세대는 '끼인 세대'이기도 하다. 부모님과 자식들을 함께 돌봐야 한다. 이들이 그들 부모 세대와 비교했을 때 비만,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우울증, 이혼 등을 더 많이 경험하는 이유다.
밥 나이트는 "그들이 젊은 시절 더 많은 역경을 겪었더라면 나이가 들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모욕들에 더 잘 적응했을 지도 모른다"면서 "20세기 전반, 어려움을 겪었던 그들의 부모세대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에 비해 스트레스에 더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가톨릭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잡스는 "이전 세대는 확실한 성공의 지표가 있었다"면서 "그들은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 나라를 구했다"고 말했다.
반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존재론적인 고민들과 싸우면서 자아실현을 중시했다. 하지만 어려운 감정들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지는 못했다. 특히 남성들이 그랬다. 남성들과 비교했을 때,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고 감정을 자유롭게 공유한다. 이는 자살을 예방하는 중요한 요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은 공동체의 유대감이 강하기 때문에 백인들에 비해 자살률이 낮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분석했다.
은퇴 이후, 자살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삶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샌프란시스코 노인 자살 예방 센터 창립자인 패트릭 아보르는 "직업을 잃고, 또 다른 직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우리는 '너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너는 집을 사야 한다', '너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면서 "베이비부머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 많은 돈을 벌지 못했고,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또한 그들에게 괴로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1963년 태어난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 역시 '샌드위치 세대'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처럼 경제적·문화적 풍요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한국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이들은 IMF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제대로 된 노후 준비도 없이 직장에서 물어나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3월 펴낸 '베이비붐 세대 및 에코 세대(베이비부머 자녀 세대)의 자살 특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인구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001년 18.3명에서 2011년 40.6명으로 2배 넘게 늘어났다. 2006년 감소했던 자살률은 2008년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급속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한국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베이비부머 세대 남자 자살 사망자가 여자 자살 사망자보다 2.92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매일 평균 6.03명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