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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길 노들역 3번출구에서 흑석동 효사정까지 올라가는 언덕. 오른쪽에는 산이 왼쪽에는 대로와 한강이 있다. 큰 대로변에 자동차도 많이 다니지만 길이 으슥해 혼자 걸어다니기는 무섭다.
귀가길노들역 3번출구에서 흑석동 효사정까지 올라가는 언덕. 오른쪽에는 산이 왼쪽에는 대로와 한강이 있다. 큰 대로변에 자동차도 많이 다니지만 길이 으슥해 혼자 걸어다니기는 무섭다. ⓒ 박선희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골목길. 괜스레 귀를 쫑긋 세우고, 앞뒤 양옆을 확인한다. 혹여나 뒤에 사람이 따라오면 발걸음도 빨라진다.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 손에 쥐고 있기도 하고, 문자나 통화를 하기도 한다. 집이 가까워져 올수록 걸음은 더 급해진다. 아무 일없이 건물 앞에 도착하면 1단계 완료.

건물 안에 들어와도 경계는 풀어지지 않는다. 허공에 손을 휘저어 천장에 붙은 안전등을 켜고, 입구나 복도가 안전한지 확인한다.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지 긴장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눈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재빠르게 방 앞에 서서 문을 따고, 방에 들어옴과 동시에 문을 잠근다. 바로 방 안에 불을 켜 침입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머지 걸쇠들을 모두 걸어 잠근다. 그제서야 귀가 완료.

골목길에 들어서고 약 5분일 뿐이지만, 나같이 혼자 사는 여성에겐 하루에서 가장 긴 시간이다. 누군가 마중이라도 나온다면 덜하겠지만, 혼자 빈집에 들어가야 하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무섭다. 성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실제로 성관련 강력범죄율이 가장 높은 시간대는 자정부터 새벽4시 사이다.

서울시에 이런 두려운 귀가 길을 도와주는 공공서비스가 등장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여성이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도록 정류장에서 집 앞까지 동행해주는 서비스다. 일명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2인 1조로 짝을 지어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바래다주고, 골목길을 순찰한다.

지난 3월 서울시가 발표한 여성안전대책의 일환이다. 여성의 안전한 귀갓길을 돕는다는 취지다. 취약지역을 순찰할 인력은 서울형 뉴딜일자리사업으로 시행됐다. 스카우트는 주중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매일 3시간 일하고, 월급 62만 원(4대보험, 야간수당 포함)을 받는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위해 5월 10일까지 시범 자치구역별로 스카우트 활동자를 접수받았고, 면접위원회를 구성해 총 495명의 스카우트를 선발했다. 이들은 종로구, 중구, 동작구 등 자치구 15개에 각 30~40명씩 배치됐으며, 6월 3일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현재 종로구와 중구, 동작구 등 15개 자치구에서 시범 실시되고 있다.

동작구 흑석지역 스카우트인 이금숙씨(59)는 "나는 아들만 둘이지만, 요즘 흉흉한 일이 많지 않냐"며 "생활에 보탬도 되고 사회에 보탬도 되니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조에서 활동하는 신문숙씨(55)는 "아직 시행초기라 신청하는 사람이 많이 없는데 널리 알려져 많이들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행 이틀째인 지난 4일 밤, 동작구 흑석동에서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와 함께 귀가해봤다. 

30분 전 전화 한 통이면 신청 완료

- P.M. 11시 45분,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서비스 신청

4일 한시사주간지의 독자모임에 참여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밤 10시, '간단히 맥주 한 잔' 비우고 나니 밤 11시 30분이 넘었다. 보통 이 시간이 넘어 자리를 일어나면 집 근처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가 끊긴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자면 배차시간 때문에 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이럴 땐 조금 멀리 있는 정류장에 내려주는 버스를 이용한다. 걸어서 15분 가량 걸리고, 길이 으슥하지만 집에 조금 더 일찍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120다산콜센터에 전화했다.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하니,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친절하게 해당지역을 확인한 후 동작구 상황실 연락처를 알려줬다. 동작구 상황실로 전화를 걸었다.

"12시 반쯤에 노들역 3번 출구 부근에서 스카우트 서비스 이용하려고 하는데요."
"네, 12시 반, 노들역 3번 출구요. 성함, 전화번호, 목적지 주소 알려주시고요. 시간에 맞춰서 노란색 조끼를 입은 스카우트 분들이 마중 나가실 거예요."

신청은 간단했다. 시간과 장소를 여러 번 확인하고, 이름, 연락처, 목적지 주소를 파악했다. 1분 만에 통화가 끝났다. 도리어 걱정이 될 정도로 접수가 간단했다.

노들역 3번 출구 스카우트들은 신청자들이 도착예정 시간 10분전부터 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노들역 3번 출구스카우트들은 신청자들이 도착예정 시간 10분전부터 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 박선희

"아이고, 아가씨가 우리 첫 손님이네"

- A.M. 12시 26분, 스카우트와 만남

접수한 시간보다 5분가량 일찍 정류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긴 오전 12시 26분, 노들역 3번 출구를 나왔더니 노란 스카우트 복장을 입은 스카우트 두 분이 있었다. 노란조끼에 노란색 캡모자를 써 어두운 밤인데도 눈에 확 들어왔다.

조끼 등에는 '여성 안심귀가스카우트'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손에는 경광봉을 들고 있었다. 스카우트는 2인 1조로 귀가길을 지원하며, 신청자의 도착예정 시간 10분 전에 만남장소에서 대기한단다.

"아이고, 아가씨가 우리 첫 손님이네."

아직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서비스 시행 이틀째라 찾는 이가 적다. 나와 동행한 스카우트 분들은 직접 신청을 받아 동행하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는 신청자가 없을 때는 대기지역 주변에서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바래다주기도 하고, 주변 골목을 순찰하기도 한다.

내게 배정된 스카우트는 중년여성 두 분이었다. 두 분은 나를 밝게 맞아주고는 신청정보를 물었다. 신청자가 맞나 확인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스카우트 두 분은 내 양쪽 뒤에서 걸었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다.

'여자가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냐'는 둥, '술마시고 늦게 다니면 안 된다'는 둥 잔소리를 걱정했는데 의외였다. 알고보니 스카우트는 신청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사적인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노들역에서 흑석동 집까지 걸어가는 길 오른쪽엔 산이 있고, 왼쪽엔 큰 도로가 있는 언덕길이다. 도로 반대편엔 한강이 보인다. 언덕을 올라오는 동안 홀로 길을 걷는 남성 3명이 지나갔다. 사방이 어둡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었지만, 셋이서 걸으니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덕길을 오르며 스카우트 아주머니가 말했다.

"여자 혼자 다니기엔 정말 무서운 길이네. 다음에도 늦게 귀가할 땐 꼭 스카우트 신청하세요. 아셨죠?"

 3일 활동을 시작한 서울시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귀가길을 동행해주고 있는 여성 스카우트 2인.
3일 활동을 시작한 서울시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귀가길을 동행해주고 있는 여성 스카우트 2인. ⓒ 박선희

확실한 에프터 서비스

- A.M. 12시 40분 집 도착

약 10분 정도 언덕길을 올라 골목길을 조금 걸어서야 집 앞에 도착했다.

"마중 나오는 사람은 없어요? 인계 확인받아야 하는데."
"저는 혼자 살아서 마중 나올 사람이 없어요.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은 2층이에요."
"2층이라고요? 혹시 모르니까 같이 들어가요. 방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갈게요."

스카우트 두 분은 빨간 빛이 나던 경광봉을 플래쉬로 바꿔 켜고 건물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건물 안에 혹시 누가 있을지 모르니 집안까지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가겠다고 했다.다행히 건물 안에도 위협을 줄 사람은 없었고,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기까지 스카우트는 복도 끝에 서서 지켜봤다.

'참 확실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동작구 스카우트 상황실이었다.

"네, 동작구 스카우트 상황실인데요. 집에 잘 도착하셨나요? 혹시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집까지 잘 도착했나 상황실에서 한 번 더 확인 하는 것이었다. 시행초기다 보니 부족한 점이나 불편한 사항은 없는지까지 점검했다. 마음이 훈훈해졌다. 귀가길을 안심하고 잘 들어갔는지 걱정해주는 사람이 갑자기 몇 명이 더 생긴 셈이었다. 오늘 처음 본 마을 주민들이었지만, 공동체로부터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스카우트 안전은 누가 책임지지?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서비스를 신청하고, 지원받는 약 1시간 동안 혼자 집에 가는 걱정과 불안은 말끔히 없어졌다. 다만 걱정됐던 것은 여성 스카우트들의 귀갓길이다.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서비스는 주중 평일 오후10시부터 새벽1시까지 제공된다. 보통 신청자가 없어도 대기지역에서 새벽1시까지 대기하며, 주변 순찰을 돌기도 한다. 그러니 이들의 귀가시간은 여지없이 새벽 1시 이후다.

이들에게 별다른 호신장비가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3일부터 서울시에서 활동하는 스카우트 495명 중 절반이상이 40대 이상인데, 지급받는 보호 장비는 경광봉과 호루라기 뿐이다.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호루라기를 부는 것 밖에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특히 여성 스카우트들은 그들이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각별한 지원이 필요해 보였다.

 서울시는 3일부터 종로구, 중구, 동작구 등 15개 자치구에서 평일 밤 10시부터 새벽1시까지 혼자 집에가는 여성의 귀가길을 동행하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3일부터 종로구, 중구, 동작구 등 15개 자치구에서 평일 밤 10시부터 새벽1시까지 혼자 집에가는 여성의 귀가길을 동행하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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