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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다른 언론사의 조세피난처 추가 취재에 대해 "다들 정부 부처 보도자료를 받아써서 넘기는 방식으로 이 자료들 다루는 것 같아 아쉽다"며 "공개된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이 낸 해명자료의 허점을 좀 더 취재해보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다른 언론사의 조세피난처 추가 취재에 대해 "다들 정부 부처 보도자료를 받아써서 넘기는 방식으로 이 자료들 다루는 것 같아 아쉽다"며 "공개된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이 낸 해명자료의 허점을 좀 더 취재해보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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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곤해보였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잘 자면서 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인터뷰 내내 수시로 안경을 벗고 충혈된 눈을 비볐다.

피곤한 게 당연할 테다.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는 요즘 이슈의 중심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지난 5월 22일부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세운 한국인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등 실명이 공개된 사람들은 이미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정부 당국은 비자금 은닉이나 역외 탈세 등 이들의 범법 행위 여부를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진행하는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의 유일한 한국 파트너로서 공동조사를 벌이는 중이다. 한국 언론과 정·재계가 이 비영리 독립언론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다.

앞서 5월에 확인된 한국인 명단은 245명, 이중 '공적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우선 공개하기로 한 명단은 20여 명이었다. 지금은 더 늘었다. 김 대표는 "추가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명단이 더 늘었다, 50여 명 정도를 우선 공개 대상자로 잡고 있다"며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들만 유일하게 명단을 가지고 있는데도, 김 대표는 '단독' 보도가 아닌 '공개 배포' 형식을 고집하고 있다. 보도자료와 더불어 원문 등 관련 자료까지 첨부한다.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는 과정에서 벌어졌을 범법 행위를 드러내려면 여러 언론사의 추가취재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다른 언론사의 추가 취재는 미미하다. 김 대표는 "다들 정부 부처 보도자료를 받아써서 넘기는 방식으로 이 자료들 다루는 것 같아 아쉽다"며 "공개된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이 낸 해명자료의 허점을 좀 더 취재해보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7일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회원'하고만 일하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뉴스타파>와 손잡은 이유

-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아래 ICIJ)는 왜 <뉴스타파>를 선택했을까. 미국, 영국, 일본의 경우 각각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아사히신문> 등의 주요 언론사와 공동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CIJ가 미국, 영국, 일본의 주요 언론사와 직접 손잡은 건 아니다, 각 언론사에 소속된 ICIJ 회원에게 공동조사를 부탁했다. ICIJ는 전 세계적으로 탐사보도 전문기자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ICIJ 회원인 기자가 있는 언론사가 자연스레 그 내용을 보도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ICIJ 회원이 없다. 그래서 이 단체가 최초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 참여한 한국 기자나 언론사도 당연히 없었다. 이후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뉴스타파>가 파트너로 선정됐다."

- ICIJ에 먼저 공동조사를 제안했나.
"4월 초 서구 지역에서 나온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첫 보도를 보고 바로 ICIJ 쪽에 같이 하자고 제안해봤다. 한국의 여러 언론사도 비슷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지만, 그쪽에서 고려한 파트너 선정 기준에 우리가 가장 적합했다.

ICIJ는 비영리·독립 탐사보도 전문기관이다. 모기관인 CPI(Center for Public Integrity)도 1989년에 설립된 탐사보도 전문매체다. ICIJ는 물론이거니와 모기관인 CPI도 기본적으로 비영리와 탐사보도가 목적이다. 시민·기구의 후원과 공익재단 기부로 운영된다. <뉴스타파>도 광고는 일절 안 받고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된다. 탐사보도 매체로서 가지고 있는 인력 전부를 투입해 취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조직의 유사성이 감안됐을 것이다."

- 공동조사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포트컬리스 트러스트넷사(PTN), 커먼웰스 트러스트사(CTL) 등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의 내부 정보를 ICIJ가 입수했을 당시에는 비정형 빅 데이터였다. 그쪽에서 1년 넘는 시간 동안 이 자료를 '분석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구축한 다음 우리가 참여했다.

저하고 회사 리서치팀이 같이 ICIJ 사무실이 있는 미국 워싱턴에 가서 한국인 명단을 추출했다. 아주 대규모의 데이터를 분류해 찾아내는 시스템이 있어서 그걸 활용했다. 5월 21일 1차 명단 발표 직전까지 이 시스템 통해서 추출한 게 245명이다. 귀국 후에도 취재하다가필요한 부분 있으면 ICIJ 쪽과 화상 통화나 전자메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추출 인원수가 245명보다 더 늘어나고 있다.

주소나 신원확인은 한국에서 취재인력을 전부 동원해 진행한다. 주소의 경우, 한국 주소를 쓴 사람은 찾기 쉽다. 물론 자료에 적힌 주소가 가짜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주소를 홍콩, 싱가포르로 기재했을 경우에는 누구인지 찾는 게 복잡하다. 그래도 현재 국내 주소를 기재하지 않는 한국인 86명 정도를 찾아냈다.

이름 확인 과정도 어렵다. 한국인으로 확인된 이름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인물과 동일한지 확인해야 한다. 전재국이란 이름을 자료에서 발견했더라도,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인지를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200명 넘는 명단을 이러한 과정에 따라 일일이 확인하는 중이다."

"전재국, 페이퍼 컴퍼니 세워 학비·생활비 예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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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 장남 전재국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나.
"전재국이란 이름을 5월 초께 자료에서 발견했다. 주소는 싱가포르로 적혀 있었다. 페이퍼 컴퍼니 설립 과정에서 본인이 상담을 받았던 법률사무소 주소로 추정된다. 이후 재국씨가 설립한 블루 아도니스 법인 명의를 근거로 여러 차원에서 검색해봤다. 이사회 결의서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서울 서초구 1628-1번지'라는 한국 주소 하나를 발견했다. 이 주소를 확인해보니 전씨 소유의 출판사인 '시공사' 본사 주소와 일치했다. 또 다른 문건에서 재국씨의 여권번호가 나왔다. 이같이 여러 흔적을 종합적으로 확인한 결과 전재국이란 사람이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 재국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시점이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은닉 문제가 불거진 시점과 일치한다. 이와 관련해 추가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내용이 있나.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은닉 문제와 재국씨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힘들 것 같다. 다만 우리는 여러 기록과 정황을 가지고 최대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재국씨는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서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계좌를 설립했다. 본인은 학비·생활비를 예치해뒀다고 해명했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 은행은 그런 돈을 예치할 만한 규모가 아니다. 그 은행에는 수천만 달러 이상 예치한 고객들이 많았다. 큰 손들을 상대로 영업한다는 것이다.

또 이사회 결의서를 보면, 재국씨는 블루 아도니스 관련 회계 관리와 기타 행정 업무 전체를 아랍은행에 위탁하겠다고 정했다. 이사가 자기뿐이니 본인 결정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C/O'라는 영어 약자가 등장한다. 'C/O'는 'care of'의 약자다. 법인이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서 이용하다보면 계좌 장부 등의 정보가 이사에게 전달될 수 있는데, 이를 일체 이사에게 보내지 말고 은행에서 보관하라고 명시한 게 이 약자의 뜻이다. 국내에 자료가 유출되는 것을 우려해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본다.

이런 서비스를 받으려면 계좌에 잔고가 500만 달러(55억 원) 이상은 있어야 한다. 재국씨가 거금을 맡겼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재국씨 등 실명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가 걸린 사람들이 순진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신을 숨기기 위해 차명 대리인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았을까.
"의아스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은밀하게 관리되는 기록들이 유출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페이퍼 컴퍼니 설립 대행업체 내부 정보가 워낙 은밀히 관리·보관되기 때문이다. 명단에는 대기업 재무관리 담당자도 있다. 이 사람들이 지식이 없어서 실명으로 설립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행업체를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차명 대리인을 세웠어도 자신의 신원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신원 노출을 고려해 차명대리인을 세우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놓은 사람이 있지만, 내부정보 자료에는 실소유주를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해 놨다. ICIJ가 내부정보 자료까지 전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누군지 드러날 수밖에 없다."

"KBS의 '한 인터넷 언론' 표현, 예상했다"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보도 후 향후 계획에 대해 "데이터저널리즘에 집중하고자 한다"며 "국민 세금으로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작동하는지,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등을 면밀히 감시할 것이다"고 말했다.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보도 후 향후 계획에 대해 "데이터저널리즘에 집중하고자 한다"며 "국민 세금으로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작동하는지,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등을 면밀히 감시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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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명단 발표 당시 "한국인 명단 중 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20명을 먼저 보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더 늘어났나.

"전체 명단 중, 페이퍼 컴퍼니 설립을 통해 역외 탈세 혹은 자금 은닉 등을 저질러 사회적 피해자를 양산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우선 공개 대상자로 삼는다. 이런 기준에 따라 현재 우선 공개 대상자는 50여 명 정도로 늘었다. 앞으로 취재를 계속 이어가면서 6월 한 달 동안 이러한 내용들을 보도할 것이다."

- 향후 공개될 명단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포함됐나.
"아무래도 기업하고 관계있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자금관리 측면에서 페이퍼컴퍼니 설립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앞으로 보도될 내용과 관련해서는 그만 물어봐라.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 KBS 등이 <뉴스타파>를 '한 인터넷 언론'으로만 밝혀 논란이 일었다. 기분이 어땠나.
"예상했다. KBS, MBC 등 거대 언론사가 작은 규모의 매체 출처를 다 밝히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매체 이름을 밝히더라. 사실 인터넷 언론이란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 콘텐츠는 RTV라는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보도되고 있다.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단독 보도로 치고 나갈 수도 있었는데 공개 배포 형식으로 취재내용을 공개하는 이유가 있나.
"공개배포 형식의 보도는 ICIJ의 모기관 CPI에서 이미 해오고 있다. CPI는 기자회견 통해 결과를 공유하고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보도한다. 우리가 <뉴스타파>를 설립할 때도 CPI 형식을 모델로 했다. 탐사보도는 주로 상당히 복잡한 내용의 장기 프로젝트 결과를 보도하므로 단순히 기사로 내보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관련 자료, 통계 등을 함께 전달하려면 공개배포 형식이 필요하다.

또한 단독 보도라고 생색내기 보다는, 정보를 공유해 다른 언론사들과 함께 추가취재를 해보고 싶었다. 원래 기사를 쓸 때 원문이나 증빙 서류는 공개를 잘 안 하는데, 우리는 개인정보 외에는 대부분 공개하고 있다."

- 기대한 대로 다른 언론사의 추가 취재가 잘 되고 있다고 보나.
"기대만큼 활발하지는 않다. 대부분 정부 부처 자료를 받아서 쓰고 지나가버리는 식으로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 건의 경우, ICIJ 공통자료 말고 저희들이 직접 한화그룹의 하와이 부동산거래 내역을 별도로 찾아 공개했다. 이 자료를 검색하는 데 비용도 꽤 들었다. 이렇게 해서 공개했는데도 추가 취재가 없으니 아쉽다.

황용덕 사장은 쿡아일랜드에 신탁회사를 설립한 다음, 하와이에 호화아파트 두 채를 매입·매매하면서 이윤을 챙겼다. 당시에는 법인 명의로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는 게 불법이었다. 한화 측에서는 황 사장을 차명 대리인으로 세워 매입했다고 밝혔는데, 이 자체도 불법일 소지가 크다. 또 황 사장이 한화재팬에 근무할 당시 지인에게 돈을 빌려 샀다고 해명했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러한 해명의 허점을 다른 언론들이 좀 더 취재해보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보도 후 계획이 궁금하다.
"계속 데이터저널리즘에 집중하고자 한다.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도 데이터저널리즘의 일환이다. 260GB의 방대한 자료는 전통 취재방식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자료를 일일이 열람하는 방식으로는 기자 100명을 투입해도 평생 못 본다. 그런 자료를 분석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의미 있는 패턴을 추출하는 게 데이터저널리즘의 영역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앞으로는 돈과 관련된 아이템을 취재하려고 한다. 정부 예산이나 정치후원금 등의 보도가 국내에는 굉장히 부족하다. 예산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도 한국 언론들이 잘 다루지 않는다. 국민 세금으로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작동하는지,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등을 면밀히 감시할 것이다."


태그:#뉴스타파, #김용진, #조세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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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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