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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팔레스타인 1,2>의 겉표지
 <아! 팔레스타인 1,2>의 겉표지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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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7월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에 비장한 표정으로 도착한 세 한국인이 있었다. 이들은 세계만방에 을사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냉담하기 그지없는 열강들의 반응이었다. 거기다가 일본의 방해까지 받아 결국 의도했던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 통탄을 이기지 못한 일행 중 한 사람은 귀국하지 못하고 끝내 순국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숙연함으로 다가오는 이준·이상설·이위종 선생의 이야기다.

<아! 팔레스타인>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서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읽는 도중 심심찮게 새어 나오던 한숨도 멈췄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나보다. 이윽고 열린 내 입에서는 아련하게 탄성이 터졌다.

"아!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은 한반도와 꼭 닮아 있었다. 마음 속 깊숙한 떨림의 진원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만국평화회의장 앞에서 울부짖던 열사를 외면했던 열강은 되지 말자. 같은 역사를 겪었던, 같은 아픔을 간직한, 같은 눈물을 흘렸던,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인간이라면 그러지 말자.  

여러분, 호소컨대 이 책을 반드시 읽으시라. 그리고 알기라도 하자. 지구 반대편에서 어떤 야만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어 사람들의 잠재의식을 파고들었는지. 그 추악한 왜곡의 반대편에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서글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음을 꼭 알기라도 하자.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이다.

팔레스타인의 낯선 거리에서 만화의 주인공 '진'을 만난 현지인은 커피를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나라에 가서 꼭 전해줘요. 당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요."

뒤바뀐 역사, 우리가 아는 역사, 아무것도 모르는 역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팔레스타인은 테러 국가이고 이스라엘은 그런 테러 국가들 틈바구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국가란 인식이 자리 잡고 있지 않는가? 혹독한 박해를 견디고 나라를 건국한 대단한 민족이라는 부가 설명이 덧붙으면서.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럴 수밖에.

이 점이 무서운 것이다. 진실은 묻혀버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원주민으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을 강탈한 방식을 따라하고 있다. 평화로웠던 땅을 무력으로 빼앗고, 온갖 방법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악랄하게 박해했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인 파리드 에사크는 지적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게 펼치는 정책이 지난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정권이 행했던 악명 높은 인종 차별 정책보다 더 잔혹하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에 다시 한 번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경찰조차도 이스라엘 군인처럼 민간인을 겨냥해 탱크나 전투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2권 70쪽)

그 근저에는 시오니즘이 깔려있다. 시오니즘이란 '박해와 학대를 받고 있는 유대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온(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뜻은 참 좋다. 그러나 종교적 광기로 발전해버린 시오니즘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야만적인 약탈과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수단이 목적을 뭉개버리는 아주 좋은 예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정복 전쟁을 '독립전쟁'이라고 불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고향에서 추방된 통한의 그날이 이스라엘에겐 자랑스러운 '독립기념일'이 되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나라를 빼앗긴 대재앙(나바크)의 날이 된 것이다.(1권 133쪽)

하소연할 곳이 없다, 있어도 없다

참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들은 어디가고, 우리의 머리에는 왜 정반대의 사실이 각인되어 있단 말인가? 여기에는 복잡한 정치관계가 얽혀있다. 우선 미국이 이스라엘의 든든한 후원자라는 사실이 작용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국익이란 관점에서 서로 떨어지기 힘들 만큼 확연한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거기다가 미국의 유대인들에게 밉보인 정치인은 사실상 정치 무대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아! 팔레스타인 2> 143쪽에 그려진 '아랍과 이스라엘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뇌구조.
 <아! 팔레스타인 2> 143쪽에 그려진 '아랍과 이스라엘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뇌구조.
ⓒ 원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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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슬람 국가들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 생각보다 강한 군사력을 소유한 이슬람 국가가 없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언젠가부터 이슬람 국가와 테러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서구 국가들에 비해 군사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중앙정부의 힘이 강하지 못하다. 이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꾀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들은 입으로만 이스라엘을 규탄할 수 있을 뿐,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렇게 방치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하마스였다. 우리에게 과격무장단체로 알려진 하마스는 사실 구호활동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지지를 이끌어낸 세력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하마스가 만든 교과서로 공부하며, 하마스가 세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하마스 최후의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마스의 창설자인 야신은 이렇게 답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 최고, 최후 목표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교인 모두가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2권 58쪽)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테러리스트라 일컫는 하마스의 지도자들의 직업이 교사(야신), 의사(란티시)인 반면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테러 단체 출신의 전쟁 영웅들이라는 점이다. 6일 전쟁을 이끈 모셰 다얀, 오슬로 협정의 주역인 이츠하크 라빈, 악명 높은 샤론 총리까지 모두 군인이면서 과거 유대인 테러 단체 '하가나' 출신이었다. 과거를 잣대로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가 알던 사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린아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국가가 있단 사실을,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고 안보(라고 쓰고 국익이라 읽는다)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하는 국가가 있단 사실을, 민주주의를 지독히 위한다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조세권을 박탈한 국가가 있단 사실을 말이다.

백기를 들고 걸어가는 여자를 쏘고, 응급 환자를 실은 구급차를 사격했으며, 야광 테이프를 붙인 의사를 조준 사격했다. 또한 구호품을 실은 배를 쫓아내고 구호품 창고를 불태웠다. 땅도, 하늘도, 바다도 막힌 채 고립된 가자는 그렇게 학살당했다. 그런 학살 행위를 국민의 94퍼센트가 지지하고 있는 국가가 있단 사실을, 국제적으로 사용을 금하고 있는 백린탄과 집속탄을 사용하는 국가가 있단 사실도 말이다.

백린탄과 집속탄
백린탄 : 일명 '살을 태우는 최악의 무기'로 알려져 있다. 인으로 만든 발화용 폭탄으로 백린탄은 공기가 있든 없든, 땅속이든 물속이든 파편 조각이 박히기만 하면 계속해서 타들어 간다. 공중에서 폭파된 폭탄은 무수히 많은 조각의 파편이 되어 떨어지면서 주변 생물체에 박혀 살을 파고 들어가 태운다.

집속탄 : 한 개의 어미 폭탄이 폭발하면 함께 탑재된 수많은 작은 폭탄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무기다. 살상 반경이 넓고 대상도 무차별적이다. 이스라엘이 사용한 집속탄은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하는데, 총 400만 발의 집속탄을 레바논에 투하했다.
- <아! 팔레스타인> 본문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반대편에는 이 모든 것을 받아내고 있는 슬픈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이 당했던 박해의 세월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동정한다. 슬픈 역사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당했던 홀로코스트를 똑같이 다른 민족에게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종교, 이념, 인종, 국경, 지역 모두 상관이 없는 문제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이라면 허울 좋은 껍데기를 초월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것이 있기 마련이다. 팔레스타인, 그 곳에도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신음하는 인간이 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있다.

저자는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다소 팔레스타인의 시각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과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찾아보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료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온통 이스라엘에 관한 자료뿐이다. 그간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제대로 된 책 하나 있었단 말인가. 이 책은 우리가 알아야 할 팔레스타인의 진실에 관한 '최소한'이다.

덧붙이는 글 | <아! 팔레스타인 1> 원혜진 지음, 여우고개 펴냄, 2013년 1월, 1만3000원
<아! 팔레스타인 2> 원혜진 지음, 여우고개 펴냄, 2013년 6월, 1만3000원



아! 팔레스타인 1 -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원혜진 지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여우고개(2013)


태그:#아! 팔레스타인, #원혜진, #여우고개,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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