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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을 12일 서울에서 열자"라고 북한에 제의하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을 12일 서울에서 열자"라고 북한에 제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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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남북당국회담이 열리고 있어야 했던 12일 오전,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회담 무산 관대책회의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진통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북한도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려면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 장관의 말은 북측이 회담을 무산시키면서 내좋은 주장은 '기존의 남북관계', 즉 과거이고, 당초 '격'문제의 시발점이었던 남측의 통일부장관과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회담이 돼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남북관계'라는 얘기다.

지난 6일 북측이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하자 정부는 곧바로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을 하자'고 응답했고, 북측도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 9·10일 실무접촉에서 남측이 제안한 건 '새로운 형태의 회담'이었고, 북측이 생각하고 있던 '장관급회'담이 아니라 '통일부장관-통전부장 회담'이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자는 건 남북관계의 기본 틀부터 바꾸자는 얘기인데, '장관급회담을 하자'고 한 지 불과 4일 만에 남측이 '새로운 관계'를 제시한 것인데, 이를 두고 정부가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담 며칠 전에 '새로운 회담' 요구한 자체가 부적절"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회담 개최를 바로 며칠 남겨두고 실무접촉에서 김양건 통전부장이 북측 수석대표로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측이 '장관급회담'을 제안하면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통전부 부부장이나 그에 상응하는 급의 인사를 장관급회담의 북측 단장으로 내세울 것이 분명한데, '장관급회담'을 제안할 때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오라고 명확하게 요구하지 않은 것도 전략적 미숙성을 드러낸 것"이라 평가했다.

정부의 '새로운 남북관계' 논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시절 통일부장관이었던 이재정 전 장관은 "장관급회담으로 하자고 했다가 명칭을 당국회담으로 바꾼 것부터 납득할 수가 없다"며 "그러면 과거에 21차례 열린 장관급회담이 다 격이 맞지 않는데도 억지로 한 잘못된 회담이었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 전 장관은 "남이든 북이든 다 각각 최고 통치자의 위임을 받아서 나오는 사람들이니 받아들여야 하는데, 과거의 장관급회담들이 격이 맞지 않아 잘못됐다는 정부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며 "남과 북이 통치체제가 전혀 달라 격을 수평적으로 맞출 수가 없는데, 그걸 따지고 드는 건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어거지"라고 비판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1992년 2월에 발효된 기본합의서 1장 1조가 '남북은 서로 상대방의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인데, 기본이 그거 아니냐"며 이번 남북 사이의 '격' 논쟁에 대해 "상대방의 제도에 대한 상호존중이 실질적으로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표단 명단을 맞교환할 때 남측 수석대표를 통일부장관으로 제시했더라면, 오히려 정부가 북한에 대표단의 급을 높여달라고 정정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아쉬워했다. 

"안하니만 못한 결과"..."상당기간 냉각기"

북한이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하며 그동안의 정부의 요구에 응한 기회를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의 기회로 만들려 했던 시도는 일단 불발로 끝났다. 실무접촉에서 일치된 의제였던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로 한껏 높아졌던 기대감은 또 언제 다시 가져도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최종건 교수는 "북측에서 먼저 안보경색을 풀자고 당국 간 대화를 제의했고, 남측이 '서울로 오라'고 해서 북측이 거기까지 응했던 아주 좋은 계기였는데 결국 결과가 안 하니만 못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이제는 김양건 통전부장이 나오지 않으면 남북 장관급회담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남측이 이미 통일부장관과의 회담 적임자로 통전부장을 제시했기 때문에, 북측이 이 요건을 맞춰주길 마냥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됐다는 얘기다.

이재정 전 장관도 "서로 책임공방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 상당기간 동안 냉각기가 있지 않겠냐"며 "정부는 한번 세운 원칙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김양건 통전부장이 나오지 않는다면 장관급회담을 하긴 어려운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이튿날인 12일 북한은 오전과 오후 남측의 판문점 통화시도에 응하지 않았다. 북한이 회담준비를 위해 재개했던 판문점 채널이 다시 막힌 것. 이를 두고 향후 남북관계가 이전보다 더 경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이 상태가 오래가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시적인 난기류"..."'보류'는 다시 나올 여지 남긴 것"

지난 11일 북측이 회담 무산을 통보하면서 '보류한다'는 표현을 쓴 게 주목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는 남북관계가 일시적인 난기류를 만났다고 본다"며 '보류'라는 표현에 대해선 "회담무산의 책임을 남측에 넘기기 위한 표현으로도 볼 수 있지만, 대화를 아예 중단하겠다는 게 아니라 계속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남측이 김양건 통전부장을 회담 상대로 고집하는 태도를 버리면 북측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장관도 '보류'에 주목했다. 국제사회의 압박 때문에 북한이 남북대화를 다시 활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 총장은 "북한이 남북대화를 북·미 대화의 디딤돌로 쓰려고 했는데,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화의 사인이 나오지 않으니 슬쩍 빠져나가려 한 것 같다"며 "그런 상황에서 '보류'란 말을 쓴 걸 보면 다시 나올 여지를 남긴 것 아니겠느냐"고 짚었다.

정동영 전 장관은 "이 문제를 푸는 데에 있어선 서로 한발씩 물러날 수밖에 없다. 남측은 통전부장이 와야 한다는 조건을 철회하고, 북측도 실질적으로 격에 맞는 인사를 내보내야 한다"면서 "정작 중요한 건 당장 발등의 불인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고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 주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의지가 있는가, 그럴 능력이 있느냐다"라고 말했다.


#남북회담#무산#새로운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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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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