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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1일 새벽 서울 효자동 청와대 입구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요구하며 밤샘시위를 벌인 시민, 학생들을 경찰이 살수차(물대포)를 동원해서 강제해산시키고 있다.
2008년 6월 1일 새벽 서울 효자동 청와대 입구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요구하며 밤샘시위를 벌인 시민, 학생들을 경찰이 살수차(물대포)를 동원해서 강제해산시키고 있다. ⓒ 권우성

2013년 터키 반정부 시위는 2008년 한국의 '촛불 시위'를 닮았다.

시작은 쇠고기 그리고 나무였다. 한국 시민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면서, 터키 시민들은 터키 도심에 남은 유일한 녹지 공간인 탁심 광장의 게지 공원을 지키기 위해 평화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의 강경진압이 시작되면서 시위의 양상은 바뀌었다. 하얀 헬멧을 쓰고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는 경찰, "불법시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목소리. 2008년, '촛불'의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쇠고기', '나무'로 시작한 시위... 춤추고 노래하고 발랄하게

 http://occupygezipics.tumblr.com에 올라온, 물대포를 맞고 있는 터키 반정부 시위대 모습.
http://occupygezipics.tumblr.com에 올라온, 물대포를 맞고 있는 터키 반정부 시위대 모습. ⓒ 텀블러

무리한 공권력 투입은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소아 정신과 의사인 투그바는 에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며 최루탄, 물대포, 고무탄으로 탁심 광장을 '정리'하던 지난 6월 11일(이하 현지시각), 처음으로 광장을 찾았다. 시위대와 만나겠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 에르도안 총리는 광장에 경찰을 투입했다.  

이후 투그바는 텐트를 치고 게지 공원을 지키고 있다. 그의 텐트에는 '아동학대'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그는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저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아이들을 위해 공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약자들을 대표해서 왔어요. 9살짜리 제 아이에게 여기 오겠다고 했더니,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가지 마요. 에르도안이 이해하지 않을 거예요.'"

학생들이 채우던 한국의 '촛불 광장'에도 유모차 부대, 넥타이 부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은 "우리 아이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부는 광장의 목소리에 귀를 막았다. 시민들의 우려를 단순한 괴담으로 치부했고, 끊임없이 배후세력을 의심했다. 시민들은 "우리가 우리의 배후"라고 소리쳤다. 깃발을 든 정치세력은 오히려 시민들의 질타를 받았다.

'형제의 나라' 터키 총리도 다르지 않았다. 10년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에르도안 총리는 시민들을 "약탈자들"이라고 폄하하면서, "내년에 있을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이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시위는 발랄했다. 시민발언대와 문화공연이 2008년 서울 광장을 채운 것처럼, 탁심 광장은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춤추고 노래하고 책 읽고. 아침이 밝으면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광장을 청소했다. 시위의 상징이 된, 물대포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빨간 드레스 여인'처럼 빨간색 의상을 입었고, 페트병을 개조한 방독면을 쓰고 최루가스를 맞았다.

2008년 한국인들이 아고라 광장 등 인터넷 게시판을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했다면, 2013년 터키인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텀블러 등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전세계와 시위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각종 이슈 뒤섞인 해방구 된 '광장'

 http://occupygezipics.tumblr.com에 올라온 터키 반정부 시위 현장 사진.
http://occupygezipics.tumblr.com에 올라온 터키 반정부 시위 현장 사진. ⓒ 텀블러

'쇠고기'로 시작한 한국의 '촛불'은 각종 이슈가 뒤섞인 해방구가 되었다. 의료 민영화 반대, 일제고사 폐지, 대운하 반대. 누구든 자유롭게 마이크를 잡았고, 손 팻말을 들었다. 이에 정부가 계속해서 '불통'으로 맞서자, 급기야 광장에서는 'MB 퇴진'이라는 구호까지 나오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이에 보수세력에서는 "촛불 시위가 순수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터키 탁심 광장은 2002년 이후 10년 넘게 집권 중인 에르도안 총리와 정의개발당에 대한 불만의 집결지가 되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가 2011년, 50% 가까운 지지율로 3선에 성공한 지 2년 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로 당선됐다면, 에르도안 총리는 터키 경제를 살린 공을 인정받아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시위 13일째인 12일, 시위대 측과 처음으로 간담회를 했다. 그리고 게지 공원 재개발을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간담회에 시위대의 핵심인 '탁심연대'는 배제되었다.

14일 새벽, 에르도안 총리는 탁심연대 측과도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재개발 적법성에 대한 판결이 끝날 때까지 재개발 계획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에르도안은 다시 한 번, 시위대가 광장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가디언>은 "5월 31일, 공원 녹지를 지키기 위해 텐트를 친 이들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에 반발하면서 시위가 시작된 이후, 이번 시위는 게지의 사랑스럽고 오래된 나무로부터 이동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시위대 4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위대의 절반이 넘는 58%가 에르도안과 그의 통치 방식에 반대해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류 판매 제한, 쿠르드족 반군과의 평화 협정, 시리아와의 우호적인 관계, 총리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개헌하고자 하는 것 등이 이슈다. '나무' 때문에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에 불과했다.

<가디언>은 "에르도안은 이번 시위의 개념을 본래의 원인에만 한정시키면서, 지난 2주간 이 공원이 어떻게 정의개발당 지난 10년에 반대하는 공간이 되었는가 하는 더 큰 이슈를 잠재우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경제만 살리면 그만? '새로운 소비자'들은 다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Recep Tayyip Erdogan) 터키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Recep Tayyip Erdogan) 터키 총리. ⓒ 권우성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터키 연구자 지야 머랄은 이번 시위를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충돌'이라고 보는 견해에 반대했다. 머랄은 "정의개발당의 경제정책은 특히 도시에서 기술에 대한 지식이 높은 새로운 소비자를 만들었다"면서 "이들의 높아지는 경제적, 사회적 자율성은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이 추구하는 사회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건 터키 후기 근대사회의 충돌이에요.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은 이슬람 정치의 오래된 스타일을 거부하면서 권력을 얻었어요. 그들은 경제적인 발전을 원했고 세계에 개방적이고 싶어 했어요. 2011년, 변화가 시작됐어요. 군부는 더 이상 힘이 없고, 소비는 늘어났고, EU는 그들의 문제로 정신이 없었죠. 정의개발당은 이전의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터키의 정체성을 '게이트 키핑'하면서 다원주의보다 다수결주의를 강조했어요.

과거 '게이트 키핑'이 세속적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했다면 오늘날에는 보수적이고 이슬람적인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정부는 주류 판매 제한 등 많은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을 반복했어요."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터키 수도인 이스탄불에서의 정부 지지율은 2011년 59%에서 2012년 30%로 크게 떨어졌다. 나머지 지역에서도 57%에서 48%로 하락세를 보였다.

정치평론가 이흐산 다기는 터키 사회의 충돌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에르도안은 지난 10년간 소득이 얼마나 늘었는지 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왜 사람들이 불평을 하느냐'고.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소비자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살지(buy), 어떻게 살지(live), 그리고 무엇을 마실지."

다기는 "이번 시위는 정치적 반란이 아니라 사회적 저항"이라고 정의하면서, "사람들은 에르도안의 권력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개발당과 에르도안에게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권력에 한계가 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뼈저린 반성" 후 '여론조작'... 에르도안은 어떨까

 http://occupygezipics.tumblr.com에 올라온 터키 반정부 시위 현장 사진.
http://occupygezipics.tumblr.com에 올라온 터키 반정부 시위 현장 사진. ⓒ 텀블러

15일 밤 에르도안 총리는 또 다시 광장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강제해산 '최후통첩' 2시간 만이다. 16일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고, 시위대는 도심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이날 에르도안 총리는 자신의 지지자 수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 시위대 해산은 총리로서의 "의무"였다고 말했다.

"그들(시위대)은 말한다. '총리, 당신은 너무 강경하다'고. 그리고 그들은 나를 '독재자'라고 부른다. 어떤 독재자가 공원을 점령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나."

2008년 5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가 국민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불법폭력시위'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공권력 투입이 이어졌고, 이후 '촛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6월 10일 '명박산성'은 '불통의 상징'이었다.

그 해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지만 다른 의미의 '반성'이었나보다. 2008년 촛불을 '종북좌파 세력의 선동'이라고 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취임 이후 '온라인 여론전'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원세훈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심복'이었다. 터키의 미래는, 한국과 다르기를 바란다.


#터키#촛불시위#탁심광장#게지공원#에르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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