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IT기업 CEO(최고경영자)의 하루는 역시 비쌌다. 지난 4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구글 CEO 래리 페이지에 이어 '소셜 네트워크' 대표격인 마크 저커버그(30) 페이스북 CEO가 한국에 왔다.
전날 오후 늦게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마크 저크버그는 18일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오후 삼성전자를 방문했다. 방한 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붙인 것부터 기자회견 등 언론 접촉을 삼간 채 청와대와 삼성전자를 잇따라 방문한 것까지 앞서 래리 페이지와 판박이다.
방문 일정 언론엔 '함구'... 청와대 이어 삼성전자 찾아
지난 4월 26일 당일치기로 한국에 온 래리 페이지 역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 대통령을 만난 뒤 바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박근혜 '창조경제'를 측면 지원하려고 글로벌 ICT 기업 CEO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작 삼성전자가 이처럼 세계적 CEO들의 방문 자체를 언론에 노출하길 꺼리는 것도 청와대에 대한 배려처럼 보일 정도다.
모바일을 통해 인터넷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구글로서는 국내는 물론 세계 모바일 단말기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과 협력이 불가피하다. 애플 등 경쟁자에 맞서야 하는 삼성도 이들의 협력이 절실하다.
앞서 래리 페이지는 짧은 일정에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탕정공장을 헬리콥터로 직접 둘러보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갤럭시S4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실제 지난 5월 15일 미국에서 개막한 구글 개발자컨퍼런스(I/O2013)에서는 삼성 갤럭시S4를 구글 레퍼런스폰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지난 4월 20일 산업통상자원부 초청으로 한국에 온 빌 게이츠는 2박 3일 동안 서울대와 국회에서 강연을 하는 등 활발한 대외 행보를 보였다. 현재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이자 에너지 벤처기업 테러파워 대표인 빌 게이츠는 차세대 원전 개발과 관련 한국 정부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말잔치에 그친 '창조경제' 회동... 페이스북은 삼성 협력에 더 무게
빌 게이츠 역시 청와대와 삼성전자를 방문하긴 했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CEO는 청와대보다는 삼성전자쪽에 더 무게를 실었다. 저커버그 역시 이날 오전 10시부터 30분 정도 진행된 청와대 면담에서 창조경제 협력과 국내 벤처 글로벌 진출 지원을 다짐했지만 구체적 '선물'을 주고받진 않았다.
이날 두 사람은 만 레빈 페이스북 공공정책 담당 부사장과 다니엘 로즈 파트너십 및 운영담당 부사장, 최순홍 청와대 미래전략수석, 조원동 경제수석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 '창조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첫 대면에서 "국민과 소통하고 많은 사람과 만나려고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페이스 투 페이스'로 만나니까 더 반갑다"며 "한국에서는 한창 젊을 때는 돌을 씹어도 소화가 잘 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일정이 굉장히 빡빡한 것 같다"고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이에 저커버그는 초대에 감사를 표하며 "젊은 나이 때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행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고 화답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페이스북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알려져 있다"며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 성공한 벤처를 만드는 생태계를 만들 계획을 발표했는데, 성공한 기업가로서 정부의 역할이나 좋은 의견이 있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했다.
이에 마크 저커버그는 한국이 페이스북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며 계속 투자해 나갈 계획이라며 한국의 창조경제 추진에 협력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 중소·벤처기업들이 페이스북의 소셜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창조경제에 부합하는 ICT 분야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으며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후 1시 40분께 다시 정장을 벗고 가벼운 후드 티셔츠 차림으로 삼성 서초사옥을 찾은 마크 저커버그는 이돈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 안내를 받아 접견실로 들어갔다. 저커버그는 이날 이재용 부회장이나 신종균 사장 등 삼성전자 고위층을 만난 뒤 오후 늦게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