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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보 같은 짓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할지. 군대도 2년이면 제대하는데, 이놈의 계약직은 몇 년을 해도 끝이 안 보이니. 그냥 이렇게 버티다가 더 나이 들고 , 라인(작업) 타는 게 힘에 부치거나, 회사가 어려워져 비정규직을 해고라도 하면 그냥 끽소리도 못해 보고 쫓겨나는 거 아냐? 그래서 결심했다. 어차피 이래도 잘리고 저래도 잘릴 거 더 늦기 전에 한번 속 시원하게 말이라도 꺼내보자. 그래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지엠(옛 지엠대우) 창원공장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 최근 노동조합 소식지에 쓴 글이다. 최근 김아무개(33)씨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GM대우창원 비정규직지회 소식지에 "계약직인데 왜 나섰냐구요?"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한국지엠(GM, 옛 '지엠대우') 창원공장.
 한국지엠(GM, 옛 '지엠대우') 창원공장.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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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창원공장은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아 확정된 적이 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28일 한국지엠에 파견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700~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을 했다.

2005년 노조에서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에 진정한 뒤, 노동부가 검찰에 고발했던 사건으로, 8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은 2003년 12월 22일부터 2005년 1월 26일까지 한국지엠 창원공장 6개 사내하청 업체의 의장·차체·도장·엔진·생산관리·포장·물류 등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던 것이다.

불법파견 선고 뒤 한국지엠 사측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작업라인이 변경되었고, 지금은 불법파견이 없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지회는 "한국지엠 창원공장에는 8개의 1차 하청업체가 있고 2차 하청업체도 있으며,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1000여명 정도로 보고 있다"며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6~9개월 정도 계약기간을 반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노동법에는 2년 이상 계약이 유지되면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보고 있다. 금속노조 지회는 "비정규직들은 6~9개월 정도 계약하고, 계약이 끝나면 1주일에서 한 달 쉰 뒤에 다시 계약을 맺고 있다"며 "노동법을 피해가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5년4개월 동안 7번 계약해지와 8버 재입사

김아무개씨의 사례를 보면,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김씨는 현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가 한국지엠에서 일한 지는 2008년 2월부터였고, 5년4개월째다.

김씨는 이 기간 동안 7번의 계약해지와 8번의 재입사를 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그는 "말 그대로 7전8기"라며 "오랫동안 일하고 싶었지만, 9개월마다 내지 6개월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약만료는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다시 불러주겠다는 말에 위안을 삼았고, 휴가라 생각하고 시골에 다녀오기도 했다"며 "물론 잘렸다고 하면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공장이 공사가 들어가서 며칠 쉰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GM대우창원 비정규직지회가 최근에 낸 소식지에 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하청업체소속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5년 4개월 동안 계약해지와 재입사를 반복했던 과정 등에 대한 글을 실어 놓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GM대우창원 비정규직지회가 최근에 낸 소식지에 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하청업체소속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5년 4개월 동안 계약해지와 재입사를 반복했던 과정 등에 대한 글을 실어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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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그는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여러 작업장을 다녔다. 조립2과 도어라인에서 시작해서, 1과 의장 1직, 샤시 2직, 서브직, 2과 샤시 4직, 도레스업, IP라인 등이다. 그는 "계약이 끝날 때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옮겨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계약직 인생은 일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도 계약기간으로 만나고 헤어지게 만들었다"며 "친해질만 하면 한 달이 멀다하고 누군가 잘려 나가고 순식간에 신입이 그 자리를 채워버렸으며, 잘려나가는 씁쓸한 마음 달래며 웃어 보이는 동료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밥 한끼 같이 먹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으로 가입한 그는 "과연 싸운다고 되겠느냐며 많이 물어보는데, 물론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고, 세상에 공짜가 없듯 스스로 움직여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며 "우리가 비정규직이라서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뭉치지 못해서 힘이 없는 것은 아닐까,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고 많이 응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금속노조 지회는 소식지를 통해 "계약직의 경우 성과급은 6개월 기준으로, 명절 귀향여비와 휴가비는 4개월 기준으로 반토막이 난다"며 "그래서 계약기간이 짧아질수록 계약직들이 받을 수 있는 돈도 상당히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들은 "6개월 계약만료가 되는 계약직들은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며 "업체가 6개월 이상 연장 불가라는 꼼수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며칠 차이로 빈손으로 쫓겨날 판이기 때문이다. 계약직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이애한다면 6개월 이상 연장 불가하는 꼼수를 철회하고 계약해지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한국지엠, #지엠대우, #불법파견, #전국금속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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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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