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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주물산업단지 입주 저지를 위한 주민대책위 소속 주민들이 다산주물산업단지(경북 고령군) 현장확인에 나섰다.
 예산주물산업단지 입주 저지를 위한 주민대책위 소속 주민들이 다산주물산업단지(경북 고령군) 현장확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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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지방산업단지 안내도
 다산지방산업단지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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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사람 잡겄네. 이게 무슨 냄새여"

주민들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 마디씩 했다. 공단에서 풍겨오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렸다. 주민 100여 명이 다산주물산업단지에 도착한 건 지난 20일 오후 2시쯤이었다. 왕복 500여 킬로미터. 오전 9시께 출발해 중간에 점심밥만 챙겨먹었을 뿐인데 훌쩍 반나절이 흘렸다. 충남 예산군 고덕면과 당진시 면천면에 사는 일부 주민들은 수년 째 주물공단과 법원과 충남도를 오가고 있다.

인천에 있는 경인주물공단조합 등 22개 기업의 예산군 고덕면 일원으로 이주하기로 하면서부터 주민들에게 농사일 못지않게 주물단지를 막는 일도 중요한 일과가 됐다. 이날 주민들은 대규모 주물공단 중 가장 환경설비를 잘 갖춰놨다는 다산주물단지를 직접 둘러보기로 하고 또다시 하루를 길바닥에 투자했다.

1995년 준공한 다산주물단지(경북 고령군)는 대구광역시내 각 지역에 산재한 주물업체를 한 곳으로 모아 협업단지를 조성, 집단화했다. 현재 70여 개의 주물업체가 밀집해 있는 다산주물산업단지는 주변의 약 20만 평을 추가 매입해 2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공단 측은 대기환경법 강화 등으로 환경설비를 잘 갖춰놔 공해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주민들은 주물산업단지에 들어서자 무작정 차를 세웠다. 처음부터 수십만 평 공단 중 어느 현장을 가보자는 목적이 없었다. 아무 곳이나 자연스럽게 둘러보자는 취지였다.

"아이구 골치야…, 냄새 땜시 머리가 다 아파…."

공해 문제 없다더니... 큰 비와도 씻기지 않는 분진 찌꺼기

다산주물산업단지(경북 고령군)내 한 현장. 도로에 폐고철이 방치돼 있다.
 다산주물산업단지(경북 고령군)내 한 현장. 도로에 폐고철이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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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의 한 주민이 다산주물산업단지(경북 고령군)를 돌아보다 도로바닥에 쌓여 있는 분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충남 예산의 한 주민이 다산주물산업단지(경북 고령군)를 돌아보다 도로바닥에 쌓여 있는 분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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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민이 코를 막으며 골머리를 흔들었다. 공단 내 큰길을 따라 걷던 주민들은 몇 걸음 가지 않아 발걸음을 멈췄다. 인도 옆에 허리 높이로 자란 잡초 때문이었다. 풀잎마다 검은 분진이 엉겨 붙어 찌들어 있었다. 인도 바닥에도 검은 때로 얼룩져 있다.

"어제 제법 큰 비가 왔는디도 그대로구먼, 을매나 지독하길래…."

일행들은 발길 닿는 대로 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붉은 쇳가루가 날리는 고철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살짝 손을 대자 쇠비듬이 쏟아져 내렸다. 돌담은 붉거나 검은 분진으로 물들어 있다. 골목에 서 있는 흰색 승용차 표면에 손을 대자 검은 분진이 묻어났다.

작업장에서 날아온 것으로 보이는 찌꺼기가 쌓여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공장 틈새마다 연기가 새어나왔다. 유달리 냄새도 역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공장 관리자로 보이는 직원이 황급히 뛰어와 손바닥으로 렌즈를 막았다.

"왜 못 찍게 하죠? 사업장 안을 찍는 것도 아닌데."

그는 대답 대신 노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단 일부를 40여 분 정도 둘러본 것만으로도 주민들은 혀를 찼다.

다산주물단지 한 현장. 간이 창문안으로 작업장 불빛이 보인다.
 다산주물단지 한 현장. 간이 창문안으로 작업장 불빛이 보인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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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주물산업단지내 한 작업장 관리자가 연기가 새나오는 사업장 모습을 찍으려 하자 카메라 렌즈를 가로막고 있다.
 다산주물산업단지내 한 작업장 관리자가 연기가 새나오는 사업장 모습을 찍으려 하자 카메라 렌즈를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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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공단 인근 주민들 "결국은 속았다"

버스가 움직였다. 공단을 벗어나 5분 정도 달리던 버스가 인근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큰 정자나무아래 마을 주민 몇 명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렸다. 주물단지와 약 1.5km 떨어진 성산면 무계리다. 겉보기에는 정겹기만 한 산골시골마을이다. 20여 가구가 사는 조그마한 마을에 느닷없이 대형 버스 석 대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자 마을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예고 없이 만난 주민들 간 즉석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마을의 이장인 A씨가 주민들 앞에 섰다. 그는 '주물공단 부근 생활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즉석 제안에 "양심껏 사실 그대로 말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25년 전 주물단지 공사가 시작됐다. 당시도 이장이었다. 주물 산업이 뭔지 알아보기 위해 주민들과 여러분들처럼 관광버스타고 견학 많이 다녔다. 사업자들은 깨끗하게 가꿔놓은 샘플만 보여줬다. 그러면서 최첨단으로 하니까 주민 피해는 조금도 없다고 공언했다. (그래서 주물공단이 들어섰는데) 결국은 속았다."

한 주민이 다산주물단지 도로 옆 은행나무 가로수 잎에 엉겨붙어 있는 분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 주민이 다산주물단지 도로 옆 은행나무 가로수 잎에 엉겨붙어 있는 분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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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주물단지 도로 옆 풀잎에 엉겨붙어 있는 분진
 다산주물단지 도로 옆 풀잎에 엉겨붙어 있는 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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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상 어떤 피해가 있나.
"주물공단을 가동하기 시작한 지 약  20년이 지났다. 지금은 남풍이 부는데 가을부터 겨울에는 북풍이 분다. 그러면 역한 냄새가 말도 못한다. 북풍하고 상관없이 날씨가 흐려 기압이 낮을 때면 뒷산에 연기 같은 게 뿌옇게 띠가 형성된다. 비가 오면 처마가 (공단에서 날아온 쇳가루와 폐주물사로) 멀겋다. 지붕색깔도 달라진다. 북풍이 불 때면 머리가 아파서 들에서 일을 못한다. 이 자리에 있어도 골이 띵하다. 옷은 빨아도 누리끼리해진다. 그냥 입고 산다. 비닐하우스 위에도 까만 분진이 쌓인다. 기가 차다 . 결론을 말하겠다. 주물공장 옆에 살면 정말 괴롭고 어렵다."

- 행정기관에 신고는 해봤나?
"아무 소용없다. 행정기관에서 와봐야 측정치를 내보이며 기준치 이하라 괜찮다고만 한다. 머리가 아파 들일을 못하고 창문을 못 여는데도 수치상 아무 문제가 없단다. 만약 기준치 이상으로 나온다하더라도 어느 사업장에서 공해를 내품었는지 찾아낼 수 없단다. 사업자들은 주로 밤이나 휴일에 공해를 내품는데 행정기관은 휴일과 밤에는 안 나오려고 한다. 결국 행정기관에서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 지역 경제나 주민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면은 없나.
"여기 일하는 사람들 중 지역 출신은 1%도 안 된다. 나머지는 대구시내에서 출퇴근한다. 여기는 외국인 근로자들만 몇 명 잔다. 설령 지역주민들을 고용한다하더라도 솔직히 깨끗한 좋은 일자리는 주민에게는 단 한 자리도 안준다. 험한 일만 돌아온다. 한 마디로 이익 보는 건 없고 손해 보는 것만 있다."

- 충남에서 온 주민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막으라 마라 하지 않겠다. 다만 살면서 (주물공단 때문에) 너무 괴로움 많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대충 반대하다 져서 우리처럼 살 것인지, 잘 싸워서 생활 환경을 지킬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충남에 들어오려는 주물공단 사업자들의) 사업을 방해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주민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칠십이 넘게 산 마을이지만 여건만 되면 당장 떠나고 싶어예! 사람 살 곳이 못 돼예!"

현장 둘러본 주민들 "도지사에게 따지러 가자"

다산주무단지 인근마을에 사는 한 주민이 예고 없이 찾아간 충남 예산과 당진주민들에게 주물단지의 피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산주무단지 인근마을에 사는 한 주민이 예고 없이 찾아간 충남 예산과 당진주민들에게 주물단지의 피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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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주물단지 인근 마을 풍경. 멀리 보이는 산 너머가 다산주물단지다.
 단산주물단지 인근 마을 풍경. 멀리 보이는 산 너머가 다산주물단지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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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주민들의 마지막 일정은 충남도청이었다. 물론 예정된 일정이 아니었다. 현장을 둘러본 주민들이 도지사에게 항의라도 한번 해야지 그냥은 못 가겠다고 결기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충남도가 지난 2011년 7월 시골마을(예산군 고덕면 상몽리 일원)에 15만 평(48만m², 사업주 예산신소재산업단지주식회사) 규모의 주물공장을 인허가하자 승인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 현재 2심 계류 중이다

주민들은 이날 늦게 까지 도청 앞에서 도지사 면담을 요구하다 오후 8시 반께서야 집으로 향했다. 충남도는 다음 주(6월 마지막 주) 중 도지사 면담을 약속했다.


태그:#예산주물단지, #에산신소재산업단지, #충남도, #충남도지사, #다산주물산업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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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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