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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1일자 1면 머리기사
조선일보 21일자 1면 머리기사 ⓒ 조선일보

"김정일의 NLL法 포기 제안..盧 前대통령 '예, 좋습니다'" - <조선일보> 6월 21일자 1면.

그들은 대반격을 시작했다. '국정원 부정선거'에 관련해, 대학가가 시국선언으로 술렁거리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만 아니라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온라인상에서 10만명이 넘었다. 이명박 정권 트라우마를 안긴 2008년 촛불집회가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들에게 팽배하자 '죽은 노무현'을 다시 끌어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20일 '단독'으로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봤다. 단독으로 열람한 후 이들은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위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한 의원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내가 봐도 NLL은 숨통이 막힌다. 이 문제만 나오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데 NLL을 변경하는 데 있어 위원장과 내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췌본에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자"고 하자 김정일이 "그것을 위해 쌍방이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NLL 관련)법을 포기하자고 발표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고,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예, 좋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고 여러 정보위원은 전했다.

정말 제목 하나는 잘 뽑는다. '"김정일의 NLL法 포기 제안..盧 前대통령 '예, 좋습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위원장에 끌려 다녔고, NLL를 갖다 바쳤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NLL포기' 주장은 '재탕'이다. 지난해 10월 8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윈회 국정감사에서 "노 전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2007년 10월 3일 3시 백화원초대소에서 단독회담을 했고, 회담 녹취록은 통전부가 비밀 합의사항이라며 우리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면서 "대화록에서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라며 구두 약속을 해줬다"고 말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두 달 동안 '우려 먹'었다. 그 중심에는 박근혜 당시 후보도 있었다.

알고보니 박 대통령, 노무현 'NLL 발언' 숱하게 써 먹어

"관련된 사람들이 관련된 사항에 대해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문제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당시에 관계된 사람들 아니겠느냐" - 2012.10. 12 월남전 참전 48주년 기념식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어떤 것보다도 진실이다. 진실이 무엇인가 그것만 밝혀지면 된다. (진실이 밝혀지면) 다 깨끗하게 끝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이 그것에 대해 진실을 얘기하면 이런저런 복잡한 논란이 다 필요없는 것"-10월, 19일 서울선대위 출범식
"수많은 우리 장병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NLL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이냐는 정당한 질문에 무조건 비난만 하고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녀 등하굣길조차 안심할 수 없고 NLL조차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안보가 튼튼하고 든든하게 믿을수 있는 나라로 바꿔보자고 이 자리에 오셨을 것이다." - 10월 24일 '선진화시민행동'(상임대표 서경석)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선진화 전진대회'에 참석한 자리
"NLL과 관련해서 지금도 북한은 우리 영토선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일 참여정부에서 북한의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얼마나 중대한 국가적 문제가 됐겠냐." -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

 2007년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배석했다
2007년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배석했다 ⓒ 노무현재단

당시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노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두 달 동안 노무현 NLL포기 발언을 끊임없이 우려 먹었다.

하지만 박 후보가 당선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갔다. 그리고 여섯 달 만에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새누리당 저의가 의심스러운 이유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 발언이 사실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 박 대통령이 "NLL 조차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안보가 튼튼하고 든든하게 믿을 수 있는 나라로 바꿔보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NLL 포기 발언 그렇게 문제였다면, 왜 이제사...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새누리당 저의가 의심스러운 이유다. 청와대는 이번 발췌본 공개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이 같은 중대한 사안을 청와대와 교감없이 국정원이 스스로 판단했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청와대는 국정원 부정선거 수사에 대해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지만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박대통령 책임져야"라는 발언을 두고 신문사에 전화를 했다. NLL 발언 발췌본 공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청와대 해명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NLL과 관련해서 지금도 북한은 우리 영토선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일 참여정부에서 북한의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얼마나 중대한 국가적 문제가 됐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아는지 모르겠다.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는 걸 <조선일보>도 인정할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7월 북한 경비정이 NLL 이남 5㎞ 지역까지 넘어왔을 때 같은 달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같은 달 17일 '[해상북방한계선 파문] '합의된 선' 없어 논란 무의미>' 제목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996년 7월 19일 <조선일보>는 <[해상북방한계선 파문] '합의된 선'없어 논란 무의미> 제목 기사에서 "바다의 경우는 남-북간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고 보도했다
1996년 7월 19일 <조선일보>는 <[해상북방한계선 파문] '합의된 선'없어 논란 무의미> 제목 기사에서 "바다의 경우는 남-북간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은 지상의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MDL)과 개념상으로나 법적으로나 의미가 다르다. 휴전선으로도 불리는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27일 남-북간에 정전협정 이 체결될 때 규정된 남북간의 지상경계선을 말한다. 때문에 서로간에 상대방 지역을 침범하면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그러나 바다의 경우는 남-북간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

더 흥미로운 점은 같은 기사에서 "그러나 바다의 경우는 남-북간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면서 "바다에 말뚝을 표시할 수도 없는 입장으로 각기 양측에서 관행적으로 인정해온 수역을 경계로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아주' 친절하게 NLL 확정된 경계선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그 다음 설명은 더 놀랍다.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은 휴전 한 달이 지난 1953년 8월 30일 사측이 최접경수역인 백령도 연평도 등 6개 도서군과 이를 마주하는 북한측 지역과의 중간지점 해상에 임의로 설정한 것이다. 때문에 서로간의 수역을 침범했을 경우 정전협정 위반사항이나 국제법상으로 제소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무력충돌을 우려해 양측이 '힘의균형'을 통해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이 국방장관이 'NLL침범이 정전협정 위반사항은 아니다'라는 답변은 맞는 것이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도 '북한 편'이라는 의심을 받기 충분하지 않은가.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보도한 내용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집권자에 따라 보도 내용이 오락가락하면 신뢰를 잃는 법이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개했다. 그것도 새누리당 의원들만 '단독'으로 불러놓고. 국정원이 이래도 되는가? 이들 모두 참 나쁘다.


#국정원#NLL#노무현#조선일보#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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