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작가 잉바르 암비에르센이 쓴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는 사랑스런 소설이다.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며 가슴 졸이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흥미진진하다. 그렇다고 교훈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도 않고 뭔가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히 얻을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삶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삶이 겨우 간신히 앞일을 해결하면서 나아가는 험난한 항해라는 불행한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험난한 항해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다행스런 진실이다. 꼭 훌륭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친구는 될 수 있다는 멋진 사례를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은 전화걸기도 힘들어하는 사회 부적응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엘링은 전화걸기나 공중이 이용하는 장소에 발을 들여놓는 일상적 행동들도 실행하기 두려워하는 이른바 '사회부적응자'다. 대개 이런 인물이 등장하면 사회비판적인 소설이 되기 일쑤지만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는 훨씬 더 소박한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엘링은 사회부적응자이지만 보통 사람보다 훨씬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이런 면이 나중에 그를 '사우어크라우트 시인'이 되게 만든다.('사우어크라우트'는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발효시킨 서양식 김치다. 왜 그가 '김치 시인'이 되었는지는 책을 통해 확인해보는 게 훨씬 유익하다.)
초식남 엘링, 육식남 키엘엘링에게는 룸메이트인 키엘이 있다. 섬세한 감수성의 초식남인 엘링과 달리 키엘은 성욕과 식욕이 굉장히 왕성한 육식남이다. 사소한 일들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둘은 '피를 나눈 형제'로서 끈끈한 우정을 과시한다.
둘 사이의 우정은 신경림 시인이 쓴 <파장(罷場)>에 나오는 한 구절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를 떠오르게 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같이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평범한 삶의 진리를 이 둘은 때로는 희극적으로 때로는 가슴이 뭉클하게 보여준다.
사회부적응자이자 오슬로 시의 생활보조금 수혜자인 이 둘에게 어느 날 새로운 임무가 떨어진다. 이들의 집 앞에 어떤 여자가 술을 마신 채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이 여자의 이름은 레이둔. 엘링과 키엘은 바로 자기 위층에 사는 레이둔을 집에 잘 데려다준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키엘과 레이둔이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 둘의 사랑을 엘링이 도와주면서 소설은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우정이 있어 외롭지 않은 소외자들 눈여겨 봐야 할 또 한 명의 인물로는 엘링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주고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준 알폰소가 있다. 그와 엘링은 시낭송의 밤에서 만나서 나이를 떠난 친구가 된다.
이후 알폰소는 엘링과 키엘, 레이둔의 조력자로 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등장한다. 오슬로 시 공무원으로서 엘링과 키엘의 생활을 감독하는 프랑크에 따르면 알폰소는 도서관같이 꾸며진 집에서 먼지와 함께 먼지가 될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괴짜 노인이다.
<엘링, 천국에 가다>는 이렇게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며 우정을 쌓아가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들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아주 가벼운 심심풀이 읽을거리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옮긴이의 말에도 나와 있지만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사회부적응자인 엘링의 생각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어떤 때에는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성찰을 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314~316쪽에 걸쳐 나오는 장면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관한 진정으로 멋진 묘사이다. 절대 그 장면을 먼저 찾아서 읽지 마시고 참고 참아서 그 장면에 도달해서 감동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끝으로 이 소설에는 노르웨이이기 때문에, 최고의 복지수준의 국가가 배경이기 때문에 성립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그 배려한 사람들의 삶마저 훨씬 아름다워진다는 진실을 이 소설은 낮은 소리로 들려준다.
덧붙이는 글 | 잉바르 암비에른센, 한희진 옮김,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푸른숲, 2008.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