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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숫자일까요? 아이큐 150이상만 가입할 수 있다는 멘사 회원도 풀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멘사 회원이 아닌 저는 금방 풀었습니다. 수학이 아니라 남북대화와 관련된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하면서 시작된 이명박 정부까지 각 정부별 남북회담 개최 횟수입니다'로 지난 43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상회담·장관급회담·체육회담·쌀회담·비료회담 등 606회의 회담이 이뤄졌고,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개발·대북 쌀 비료 지원·대남 수재물자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다져왔습니다. 평균을 내보니 1년에 열네 번은 남북이 만났습니다.

박정희 남북대화 111회... 김대중 87회보다 많아

눈길을 끄는 대목은 노무현 정부를 빼고 100회 이상 남북회담을 한 정부가 박정희 정권(111회)과 노태우 정부(164회)라는 점입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남북대화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수구 세력에 의해 '종북좌파'로 비판받는 김대중 정부보다 박정희 정권과 노태우 정부가 더 많은 남북대화를 했습니다. 물론 회담을 많이 가졌다고 한반도 평화를 바랐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암살하고, 판문점 도끼만행을 저질러도 박정희 정권은 대화의 끈만은 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남북 대화가 10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때보다 더 험악할 분위기입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말미암아 남북대화는 물건너갔다는 성급한 주장도 나옵입니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연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 '김정일에게 나라를 갖다 바쳤다'며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정세현의 통일토크> 표지
<정세현의 통일토크> 표지 ⓒ 서해문집
남북대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하지 말아야 할 발언을 이렇게 '당당하게' 하는 집권당은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안에서 현 한반도 상황을 제대로 이끌어갈 지혜와 혜안을 가진 고위공직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신들 스스로 지혜와 혜안이 없다면 남북대화를 이끌어왔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야합니다.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그들이 남긴 책도 지혜를 얻는 한 방법입니다.

북한이 안 변했다고? 이미 변했어

1977년 통일원에 들어간 이후 30년 동안 99회의 남북회담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여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펴낸 <정세현의 통일토크>(서해문집)가 바로 그 책입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1990년대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대남전략이나 통일정책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책이나 신문 등 문헌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북한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북한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공식입장(official statement)과 속내(real inatention)가 다르고, 앞모습과 뒷모습이 많이 달랐습니다."(본문 5쪽)

그러면서 그는 "이건 북한을 관찰하는 저의 이념적 입장이나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저의 관찰 대상인 북한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놀랍습니다. 북한 자체가 변했다고 합니다. 북한의 적화통일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정 전 장관 주장은 '빨갱이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발언'이라는 비난을 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책 부제 '남북관계 현장 30년 : 이론과 실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지난 30년 남북대화에 참여했던 사람(제29대 및 제30대 통일부 장관도 역임)으로서 오랜 경험과 판단에서 나온 논리이기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오히려 2013년 6월 현재 노무현 전 대통령을 NLL를 포기한 대통령, 김정일에게 나라를 갖다바친 '빨갱이'이라며 매도하는 새누리당과 극우세력이야 말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습니다.

출발은 바로 여기입니다. "북한에 틈새 시간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회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비전을 줘야 한다"며 "그러려면 회담을 자주 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6년 만에 찾아온 남북 대화 기회를 '직급' 때문에 파토낸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전쟁할 때도 대화... 강동6주 회복한 서희

두 나라가 전쟁을 해도 대화는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탁월한 외교가인 서희(942~998)가 바로 그 예입니다. 993년 거란은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는데도 거란이 소유하고 있는 고구려 땅을 차지'했고, '송나라를 섬긴다'는 이유를 들어 침략했습니다.

그러자 서희는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옛 터전을 이었으므로 고려라 이름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이다, 만일 지계(地界)로 논한다면 요나라의 동경(東京·지금의 랴오양)도 모두 우리 경내(境內)에 있는 셈이니 어찌 침식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며 "또 압록강 안팎도 우리 경내였는데 지금은 여진이 그곳에 도거(盜據)하여 완악하고 간사한 짓을 하므로 도로의 막히고 어려움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다, 조빙을 통하지 못한 것은 여진 때문이니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아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하면 감히 조빙을 닦지 않겠는가"라고 반박했습니다(<다음 백과사전> 참고).

거란은 서희 반박이 옳음을 인정하고 군사를 돌렸고, 고려가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을 개척하는 데도 동의했습니다. 강동6주가 고려 땅이 되는 계기가 됩니다. 서희는 거란이 우리를 침략했으니 무조건 무력으로 물리치는 것만 이기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습니다.

전쟁 와중에도 대화와 협상하는데 하물며 평시에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평화를 지향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물론 북한은 지난 여섯 달 동안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했습니다. 유엔 결의를 부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미군과 대규모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북한이 먼저 변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지만 정 전 장관은 "대북정책이든 외교정책이든 상대가 있는 정책은, 상황을 우리 쪽에 유리하게 변화시키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입안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변해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변하지 않은 측면이나 지속되고 있는 구태만 지적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변화했거나 변화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해 그것이 대세가 되고 전부가 되도록 만들어나갈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1부는 박정희 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까지 역대 정부 시기 남북관계를 통사(通史)적으로 정리했고, 2부는 이념과 시각 차이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거나 앞으로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주제를 정 전 장관 생각을 정리, 3부는 남북관계 현장에서 있었던 일화를 가볍게 정리했습니다.

박근혜 정권 대북정책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입니다. 이명박 정권 이후 지난 5년 동안 남북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들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6년 만에 찾아온 남북당국자 대화를 '격'을 이유삼아 차버렸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은 외교사에 있을 수 없는 일(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을 감행했습니다. 이제 더 떨어질 신뢰도 없습니다.

옛 북한이 아니라 '21세기 북한'과 대화해야

하지만 신뢰는 "너 먼저 변화해야 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나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안보 고위공직자는 30년 간 남북대화 현장을 누비고, 이론을 만든 선배인 정 전 장관이 던진 조언을 마음에 꼭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북한만 30년 넘게 바라보다 보니 이제 북한도 6·25 때 북한이 아니고 5·16 직후의 북한이 아니며, 1970년대 북한도 1990년대 북한도 지금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도 변합니다. 21세기에는 변화한 북한을 상대로 통일을 고민해야지, 아직도 위장 평화 공세나 하던 1950~70년대 북한에 대한 시각으로 미래의 통일을 얘기하면 어떻게 합니까? (중략) 남쪽 정부와 남쪽 국민들이 바뀐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북한이 훨씬 더 많이 바뀐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그는 이어 "북한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버려야 한다"며 "북한도 많이 변화했다, 그리고 북한을 더 많이 변화시켜야 한다는 게 통일 정책의 출발선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6·25 때나 1980년대 말까지의 대북관을 토대로 대북정책을 짜고 통일정책을 추진하면 과녁을 못 맞히는 궁수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정세현의 통일토크>(정세현 | 서해문집 | 2013.06. | 1만8000원)



정세현의 통일토크 - 남북관계 현장 30년: 이론과 실제

정세현 지음, 서해문집(2013)


#정세현#남북대화#한반도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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