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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28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호 의지를 담은 여야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28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호 의지를 담은 여야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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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하 회의록) 대선 전 입수 의혹을 마주한 새누리당이 어지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28일 오전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상납 등 칠거지악(七去之惡)을 저질렀다"며 민주당의 회의록 대선 전 입수 의혹 제기를 "적반하장식 정치"라고 비난했다. 황우여 당대표는 그로부터 2시간 후 "정쟁을 중단하자"면서 '여야 NLL 수호 공동선언'을 제안했다. 황 대표는 기자회견 후 NLL 근접지역인 백령도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재차 안보를 강조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황 대표의 기자회견이 끝난지 3시간 후 새누리당 원내대변인들은 연달아 브리핑을 갖고 "민주당이 폭로한 '권영세 녹취록'은 특정 언론사 기자의 녹음파일을 절취한 것"이라며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정당임이 드러났다"고 공격했다.

자연스레 "'정쟁을 씻어내자'는 황 대표의 제안은 뭐였나"는 질문이 원내대변인들에게 쏟아졌다. 명확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절취 용의자로 떠오른 민주당 당직자는 해당 언론사 기자로부터 문제의 녹음파일을 제공받았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때리기'와 '정쟁 중단 제안', 그리고 '권영세 녹취록 역공'은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새누리당이 2012년 대선 당시 열람조차 힘든 기밀문서인 회의록을 불법 입수해 사실상 관권선거에 나섰다는 의혹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본질 흐리기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영선 위원장과 새누리당 권성동, 민주당 이춘석 간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영선 위원장과 새누리당 권성동, 민주당 이춘석 간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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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NLL 논란 역시 본질 흐리기에서 출발했다.

새누리당은 NLL 논란을 촉발시킨 건 민주당 소속인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라고 주장한다. 박 위원장은 지난 17일 법사위전체회의에서 "우리 당에 들어온 국정원으로부터의 제보에 따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지난 대선 전 NLL 포기발언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이것(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안 까는 척하면서 대신 검찰에게 까라면서 그 서류를 밀봉을 해서 갖다줬다"며 새누리당-국정원 NLL 공모설을 제기했다. 여당 정보위원들의 회의록 '단독' 열람부터 국정원의 일방적 공개 역시 이 때문에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시 법사위 전체회의 속기록을 살펴보면, NLL 문제를 처음 거론한 건 새누리당이었다. 법사위 간사를 맡고 있는 권성동 의원은 당시 전체회의에서 "단적으로 얘기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선 때 우리 편이 아니었다"며 "NLL 사건 회의록 공개하라고 우리가 그토록 요구하고, 직무유기로 고발까지 하고, 그 다음에 해임결의안까지 냈음에도 결국은 안 했다, 그것만 했으면 처음부터 쉽게 이길 수가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원 전 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한 것을 '논리적 비약'이라고 질타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결국 박영선 위원장의 '새누리당-국정원 공모설'은 권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나온 얘기인 셈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28일 국가정보원 불법 정치·선거개입 사건을 다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도 그간 국정원 사건을 적극 감싸온 의원들을 대거 선임하며 본질 흐리기 의도를 드러냈다. 새누리당은 특위 간사로 권성동 의원을, 위원으로는 이철우·김재원·정문헌·조명철·윤재옥·김태흠·김진태·이장우 의원을 선임했다.

지난 대선 전 회의록 공개 거부 등을 근거로 원세훈 전 원장을 비호했던 권 의원은 국정원 국정조사에 대해 "여야 전임 원내대표들이 국회법을 위반한 합의를 한 것"이라며 원천무효 주장을 편 바 있다. 정문헌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을 처음 제기했다.

김진태 의원은 국정원 사건 수사 실무 검사의 학생운동 전력을 들춰내며 원 전 원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치부했다. 정보위 소속인 조명철·윤재옥 의원은 회의록 단독 열람 당시 참여했던 인사다. 즉, '국정원 방패'들로만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이 채워진 셈이다.

엇박자

하지만 이 같은 새누리당의 전략은 계속해서 헛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헛점들이 당내에서 엇박자를 내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회의록 공개로 확인된 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을 "NLL 포기로 볼 수 없다"는 응답률이 "포기로 볼 수 있다"는 응답보다 높게 나오는 등 역풍이 예고된 상황에서 집안 단속부터 해야 할 처지에 놓인 셈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특위 위원 선임 문제를 두고도 엇갈린 답변을 했다. 강은희 원내대변인은 정문헌 의원의 특위 위원 선임을 두고 "NLL 관련 논란이 있는데 정 의원을 선임한 건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민주당에도 있는데"라고 답했다.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으로 새누리당에게 고발된 민주당의 김현·진선미 의원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정 의원을 특위 위원으로 선임한 것에 대한 문제지적에 일부 동의한 셈이었다.

그러나 강 원내대변인의 답변은 이날 오후 홍지만·김태흠 원내대변인에 의해 수정됐다. 김 원내대변인은 "정 의원은 NLL 포기 발언 논란과 관계가 있지만 국정원 사건과는 관련 없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의 기자회견도 뒷말을 낳았다. 본래 황 대표가 'NLL 국정조사'를 민주당에 정식 제안하려다 역풍을 우려한 당내 반발로 이미 했던 'NLL 수호 공동선언'을 재탕했다는 얘기다.

기자회견 전 정황도 이 같은 추측을 가능케 했다. 앞서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출입기자들에게 '일정 추가' 문자메시지를 돌렸다. 황 대표가 이날 오전 11시 당사에서 현안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황 대표가 이날 오후 예정된 백령도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앞두고 갑작스레 연 기자회견인만큼, 회의록 대선 전 입수 의혹과 NLL 논란에 대한 해법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다. 각 방송사들도 급하게 기자회견 시간에 맞춰 생중계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기자회견은 기약없이 미뤄졌다. 황 대표는 예정됐던 시간보다 35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기자회견이 늦게 시작된 까닭에 대해서는 "(백령도 현장 최고위원회의로) 헬기를 타는 곳으로 가서 말할까 하다가 대변인실에서 여기 (기자들이) 다 계시다고 해서, 문안을 만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늦었다"고 해명했다.

유출자 색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의원의 NLL 발언 발설자로 지목된 김재원 의원의 해명을 들으며 등을 토닥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의원의 NLL 발언 발설자로 지목된 김재원 의원의 해명을 들으며 등을 토닥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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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자의 백미는 김무성 의원의 '돌발 발언' 유출이다. 지난 대선 당시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 의원이 지난 26일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회의록 대선 전 입수 의혹을 사실상 시인하는 발언이 통째로 유출됐다. 지난 대선 전 회의록 공개시점 등을 논의한 권영세 주중대사 녹취록이 폭로된 가운데, 새누리당 스스로 불을 지른 꼴이었다.

게다가 이에 대한 유출자 색출 작업까지 밖으로 노출되면서 '친박 내 권력 암투설'까지 불거졌다.

유출 확인자 리스트에 오른 서병수 의원의 경우, 지난해 총선 공천 문제로 김 의원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서 의원이 내년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경쟁자인 유기준 최고위원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는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발언 유출을 확인해줬다는 얘기가 나온다. 유출 확인자 리스트의 또 다른 인물인 이혜훈 최고위원도 박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원박계'란 측면에서 '돌아온 친박 좌장'인 김 의원을 견제한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 같은 '설'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서 의원은 "언론에 난 기사를 가지고 기자들의 전화가 왔기에 (정정하는) 설명을 해줬다"며 "김 의원과는 얼마 전에 만나 지난 공천 당시에 생겼던 오해를 풀었고, 관계도 괜찮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최고위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세미나 준비 건으로 5시간 동안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난 28일 상임위 간사단 회의에서 "불필요한 언행으로 본질은 흐려지고 부차적인 문제로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지 않도록 신중한 언행을 당부드린다"며 당내 입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새누리당의 분열 양상은 끝나지 않았다. 당 지도부의 입단속에도 당내 일각에서는 당의 NLL 회의록 공세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5선의 남경필·정의화 의원이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고,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회의록 공개 등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드러냈다.

재선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기류는 감지된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지난 27일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는 정신 나간 짓"이라며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두고두고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건데 좀 지나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발언을 유출한 인사를 색출하는 작업을 두고도 당내 불신이 쌓이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지난 28일 트위터를 통해 "본인이 부인하는데 웬 색출소동이야"라고 당내상황을 비판했다.


태그:#김무성, #황우여, #권력암투, #NLL,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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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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