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삼청동 맛집이라고 쓰겠다. 정확한 주소지는 소격동이지만, 이 식당은 말 그대로 '요즘 대세'인 삼청동 핫플레이스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으니까.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종로구는 동 하나의 규모가 매우 작다.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주거지가 밀집했던 곳이고,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동네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행정구역 상 삼청동은 총리공관 맞은편 언덕 일대를 가리키지만, 요즘은 정독도서관 진입로부터 감사원, 삼청공원에 이르는 카페 거리까지를 모두 삼청동이라 통칭한다.
'소격동 37번지'는 이 식당이 위치한 건물의 실제 주소이다. 지난해 10월에 문을 연 이곳은 그전까지는 주인 가족이 30년 넘게 살아온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옛날식 단독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거실 하나, 방 두 개가 배치된 아담한 주택 구조가 드러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서영(43) 사장의 방이었던 2층은 이제 세련미가 돋보이는 멋진 식당이 되었다. 음식에 대한 소문만 듣고 찾아갔는데, 공간의 아름다움에 한 번 더 놀랐다. 화분 몇 개와 벽에 걸린 그림이 장식의 전부인 절제된 공간. 그 아래 단정하게 놓인 정사각형 식탁들. 방마다 그곳에 꼭 어울릴 만한 그림들이 걸려있어, 마치 어느 화랑에 미술 감상을 하러 온 기분이 들었다.
"혼자 오셨을 때는 여기가 제일 좋다"며 이 사장이 안내해준 자리. 까만 격자창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과 한옥 마을 풍경이 꼭 한 폭의 그림이다. 한여름 대낮인데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방방마다 활짝 열린 창으로 산들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된 그림은 아는 화가에게서 대여 받은 것과 이 사장이 직접 그린 작품이 섞여 있다. 그녀는 영국 UAL(University of Arts, London 런던예술대학교) 출신의 화가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식당 인테리어를 화랑처럼 꾸민 까닭을 이해했다. 필자를 일반 손님으로 알았던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가 하면, 앉은 자리가 괜찮은지, 반찬은 넉넉한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준다.
음식이 나왔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시래기 비빔밥과 만두 지짐이. 서너 가지 밑반찬이 담긴 하얀 사기 접시들이 아름답고 정갈하다. 시래기와 표고버섯을 잘게 썰어 넣고 달걀지단을 올린 소박한 간장 비빔밥을 김에 싸서 김치와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매콤 달콤한 황태포 무침은 결이 촉촉했고, 윤기가 흐르는 무말랭이 무침은 생것처럼 아삭했다.
모두 이 사장의 어머니가 아래층 부엌에서 직접 만드신 것이다. 부드러운 두부살과 어우러진 명태 만두의 맛은 단연 최고. 어머니가 느끼한 것을 싫어하셔서 명태 만두라는 독특한 레시피가 탄생했다고 한다. 직접 빚은 쫀득한 피와 함께 씹히는 명태살은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었다. 음식은 하나같이 짜지 않고 맵지 않다. 대신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이 풍부하게 살아 올라왔다.
"저희 집 음식은 모두 우리 가족들이 평소에 늘 먹던 것들이에요. 저희 어머니는 조미료를 안 쓴다든지, 유기농을 써야 한다든지 이런 개념도 별로 없으세요. 그냥 싱싱한 재료를 골라 정성껏 요리하는 것뿐이죠. 엄마가 늘 만들어 쓰시는 다시 국물이 있는데 장아찌 할 때는 '뉴슈가'도 조금, 만두에는 맛소금도 조금 넣어요. 그래야 맛이 난다고 하시면서요(웃음). 채소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채소장수 아저씨가 갖다 주시고, 나물은 아버지가 3층 옥상에 일일이 널어 말리세요. 우리 집에서 먹는 반찬도 똑같은 재료로 만들지요." 그런 음식을 먹고 자란 이 사장은 어릴 때 잔병치레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것이 엄마 음식의 힘일까. 특별한 원칙이 없는 이 식당에 유일한 원칙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가족이 먹는 것과 손님에게 파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 이것이 이 식당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든 비결이다.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누리꾼 사이에 입소문을 탄 이곳은 일본의 유명 잡지를 비롯해 국내외 언론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조용히 운영하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방송 출연 등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고.
손님을 끌기 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집에서 만든 그대로인 음식들. 그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하는 진심어린 배려와 정성. 햇볕 쏟아지는 북악산을 바라보며 고즈넉이 음식을 씹고 있는데 문득,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대문을 들어선 칠순의 아버지가 딸인 이 사장을 보고 환하게 웃는다. 딸은 요즘 계절메뉴인 콩국수를 만드는데, 매일 아침 콩을 갈아주시는 아버지가 우리집 일등 공신이라며 아버지를 치켜세운다. 부녀간에 오가는 환한 미소를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이 집 음식이 왜 그렇게 맛이 있는지. 그것은 사랑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식량닷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