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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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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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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만 낸 거죠. 그나마 편의점 부당계약을 막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이라도 통과가 되어서 다행입니다."(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6월 임시국회가 회기 마지막 날인 2일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대거 통과시켰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부터 꾸준히 관련 법안 필요성에 대해 강조해온 시민사회 단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통과된 법안들이 6월 국회 이전에 논의되던 수준보다 후퇴했거나 실효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저지했다"고 평했다. 민주당의 소극적인 협상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야당이 꺼낸 7월 임시국회 개최 논의를 놓고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기대할 게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 구멍 '숭숭'... 실효성 논란

이날 통과된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은 5개. 우선 핵심 법안인 '일감몰아주기 방지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프랜차이즈법(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금산분리 강화법(금융지주회사법·은행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한 사업자가 하청업체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부당특약' 설정을 금지하는 내용의 '하도급법(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주택 및 상가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안'도 함께 처리됐다.

시민사회 단체들의 비판은 일감몰아주기 방지법에 집중됐다. 담당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안한 안보다도 후퇴한 수준이라는 게 이유다.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 국장은 "이 법의 개정 목적은 공정위로 하여금 재벌의 부당지원 등 사익편취 행위의 위법성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이 여전히 해소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벌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점도 개정안의 맹점으로 지목된다. 이번에 통과된 일감몰아주기 방지법은 재벌총수 일가가 일정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 간의 거래를 통해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식을 직접 보유한 계열사를 이용하지 않고 간접지분이 있는 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거래를 할 경우에는 규제가 불가능하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 조항'이 신설된 것도 문제다. 김 국장은 "이번에 신설된 23조의 2항에 따르면 기업의 효율성 증대, 보완성, 긴급성 등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우는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조항은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제제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명목상으로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참여연대 역시 이날 공식 논평을 내고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의 실효성을 문제삼았다. 이번 개정안은 재벌이 법망을 피해 일감 몰아주기를 할 만한 '구멍'이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국회는 본회의 통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논의가 마무리됐다고 착각하지 말고 개정 취지에 부합하는 개혁안을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월 국회에서 적극적 보완 필요해"

'상가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안'도 실효성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 법은 상가 건물주들이 재개발, 재건축 등을 빌미로 거액의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 가게를 연 임차인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정됐다.

개정된 내용에 다르면 상가 임차인은 5년 동안 해당 점포에 대한 계약갱신요구권을 가진다. 상가 건물주는 임차인에게 계약 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에 대해 사전에 고지해야 하며 임대차 계약 갱신 거절은 건물의 노후·안전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나 기타 다른 법에 의해 철거·재건축이 필요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성영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팀장은 개정안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월세 증가율 제한이 빠져있다는 점을 꼽았다. 법안 내용을 보면 임차상인에게 최소 5년 간 계약갱신 요구권을 준 것처럼 보이지만 월세 증가율 상한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주가 계약 연장을 안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월세를 대폭 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건물주가 바뀌게 되었을 경우 기존 임차 계약이 효력을 잃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 팀장은 "임차상인이 예상치 못하게 일찍 쫓겨나는 상당수의 사례는 건물주가 교체됐을 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은 계약갱신요구권은 5년을 보장했지만 새로운 임대인에게 기존 계약의 효력이 이전될 수 있도록 하는 대항력을 보장하지 않았다"면서 "9월 정기국회에서 적극적인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전략부재...'갑을관계법', '대주주 적격성 심사법' 논의도 못 해"

진보진영 인사들은 예상보다 저조한 6월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 성적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 이외에 야당인 민주당에 대해서도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전통적으로 재벌과 대기업 편을 들어왔던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법안 방해는 예견됐던 것이지만 그에 비해 민주당이 제대로 대응을 못 했다는 지적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법안을 꾸준히 방해했고 민주당도 효과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면서 "가맹사업법 말고는 그냥 '무더기'로 통과된 셈"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안 처장은 "전국의 중소 상공인들과 노동자들이 주시하고 있다"면서 "국회에서는 7월 임시국회를 열어서 대선 공약대로 경제민주화 입법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한기 국장은 "여당도 문제지만 함께 개정 작업을 했던 민주당이 협상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야당이 '7월 임시국회' 얘기를 하고 있는데 4월, 6월에 했던 행태들을 보면 기대할 게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경제민주화 입법 성적이 저조한 첫번째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을 꼽았다.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새 정부 국정운영 핵심 기조 중 하나로 정해놓고도 경제민주화 과잉입법론을 꺼내는 등 정치권에 잘못된 신호를 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주당 역시 6월 국회에 뭘 통과시키겠다는 전략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에서는 6월에 처리할 핵심 법안으로 '대리점 갑을관계법'을 꼽았었는데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비은행권 금융사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법안 역시 담당 상임위인 정무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태그:#6월 국회, #경제민주화, #일감 몰아주기, #갑을관계법, #가맹사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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